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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코드] Act.1-2장 피타고라스 - 10화 사아아… 피타고라스는 시티 시큐리티 센터를 떠나서 상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전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긴장을 풀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무색할 만큼 그 어디에서도 생명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바람을 따라 조용히 흐르는 모래의 발소리뿐. ‘도시 전체가 종말로 향하는 거대한 모래시계가 된 것 같군.’ 모래알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건물들의 앙상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얼마 안 가서 이 시계는 끝을 맞이할 것이다. ‘…아.’ 그 무엇에도 큰 관심을 주지 않고 걷고 있던 피타고라스가 돌연 멈춰 섰다. ‘오랜만인 걸.’ 익숙한 무엇인가를 발견한 그의 두 눈동자에는 아름답게 핀 분홍 잎사귀들이 담겨 있었다. 홀로그램 따위가 어설프게 흉내를 낸 것이 아닌 진짜 벚꽃. 그러나 어째서인지 그것은 그의 안경..
[블레이드 코드] Act.1-2장 피타고라스 - 9화 시티 시큐리티 센터 블로섬 레지던스 지구 저벅… 저벅… 저벅… 이곳에 낯익은 이방인 하나가 걸어 들어왔다. 안경을 쓰고 딱딱한 인상을 하고 있는 그는 신중하게 주변의 흔적을 살펴봤다. 이윽고 그의 시선은 한 곳에 멈춰 섰다. ‘발자국.’ 그것은 고운 모래 카펫을 거침없이 헤집어 놓고 있었고 어딘가로 곧장 향하고 있었다. 저벅… 저벅… 저벅… 남자는 조심스럽게 발자국을 따라갔다. 상당히 오래 전에 버려진 도시이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가 경계심을 늦추는 일은 결코 없다. 발자국은 건물 안으로 이어지더니 망설임 없이 계단으로 향해 층계를 올라갔다. 저벅… 남자의 발걸음이 갑자기 멈췄다. 발자국이 어느 한 층에서 계단을 벗어나 복도로 이어진 것이다. 그것은 이어서 곧장 어느 방안으로 이어졌다. 방의 입구에는..
[블레이드 코드] Act.1-2장 피타고라스 - 8화 F 섹터 블로섬 시티 외곽에 위치한 블로섬 레지던스의 한 버려진 주택. 저벅 저벅 저벅 그곳으로 키가 훤칠한 남자 하나가 두건으로 얼굴을 둘둘 감은 채 들어왔다. 스르륵 탁탁 탁탁 남자가 두건을 풀고 얼굴과 안경에 붙은 모래를 털어냈다. 두건 때문에 헝클어진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네모난 안경을 바르게 고쳐 쓰는 남자. 피타고라스는 마침내 가이드봇을 통해 노엘과 대화를 나눴던 장소에 도착했다. “후우…” 그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미간에 드리워진 깊은 골짜기까지 숨길 수는 없었다. 다행히 무사히 도착하기는 했지만 그의 여정이 쉬웠을 리 없었다. 멸망의 날 이후, 세상은 이제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이모션 플레이어가 아니라면 홀로 여행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곳이었다. 더군다나 피타고라스와 ..
[블레이드 코드] Act.1-2장 피타고라스 - 7화 피타고라스는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렸다. “하아…” 정적. 주변에는 그의 무거운 호흡 소리만 들렸다. 잠시 후 그는 다시 눈을 떴다. “좋아.” 띡, 즈응… 돌연 그는 가이드봇 조작 홀로그램 인터페이스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적당한 바위 하나를 발견하여 그곳으로 다가갔다. 탁탁 털썩 “후우…” 그는 바위 표면을 가볍게 털고 그 위에 앉아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자세를 바르게 고친 뒤 팔짱을 낀 채 다시 눈을 감았다. 이것은 생각을 정리해야 할 때면 으레 하는 그의 독특한 습관이었다.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자.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 피타고라스는 이 난관을 열고 나갈 열쇠를 찾기 위해서 천천히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며칠 전, 블로섬 시티 인근의 이름조차 잊혀진 ..
[블레이드 코드] Act.1-2장 피타고라스 - 6화 올리버는 정신없이 노엘을 쫓았다. 그녀에게 똑바로 뛰어가는 몸과 달리 머릿속은 혼란했다. ‘거짓? 거짓이라고? 어떤 부분이? 왜? 왜 그렇게 생각했지? 아니야, 난. 난, 아니야. 아니야.’ 소년은 왜 그렇게까지 자신이 그녀를 쫓아야 하는지 몰랐다. ‘쫓아가서 그 다음은? 뭘 어떻게 하려고? 따져? 따질 거야? 무엇을?’ 의문의 실마리를 쫓고 쫓자 소년은 미로의 끝에서 첫 번째 답을 발견했다. ‘아니, 아니야. 난 지금 화난 게 아니야. 저 소녀가, 노엘이 싫은 게 아니야.’ 놀랍게도 소년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었다. 두근 두근 두근 달리는 소년의 심장은 거칠게 뛰었다. 하지만 그것은 숨이 차오르는 것 치고는 너무 크고 흥분해 있었다. 지금 이 소년. 올리버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상..
[블레이드 코드] Act.1-1장 말없는 소녀 - 5화 ‘아….’ 애타게 찾았던 소녀가 눈 앞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올리버는 입을 열지 못했다. ‘뭐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생전 처음보는 데저트 타이거의 습격만으로도 충격이었다. 그런데 그런 괴수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것은 다름이 아니라. ‘지금… 저 소녀가 날 구해준 거야?’ 처음 그녀를 봤을 때는 누구든 그녀를 지켜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 괴수의 죽음을 확인한 소녀는 고개를 돌려 소년을 바라봤다. 그녀의 푸른 눈은 방금 전까지 사람을 손쉽게 찢어발길 것 같은 괴수와 대면했는데도 처음 본 그날처럼 평온하고 고요했다. ‘너는 대체….’ 소년은 그녀를 찾으려고 했던 것은 까맣게 잊고 이 신비로운 소녀를 넋을 놓고 쳐다봤다. 그러나 소년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블레이드 코드] Act.1-1장 말없는 소녀 - 4화 부스럭 부스럭 “하아… 젠장할” 그날 밤, 올리버는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두 번째 달도 뜨지 않은 날이라서 잠들기 더할 나위 없이 좋았으나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왜, 뭣 때문에 못 잠드는 건데. 왜…” 답답함에 혼잣말을 중얼거렸지만 사실 소년은 질문의 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됐어. 아니, 아니야. 헛된 기대를 품어 봤자…’ 밤은 점점 더 깊어 가는데 소년의 머릿속은 오만가지 생각이 더욱 가득차기 시작했다. 의미 없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졌다. ‘만약 쫓아버리지 않았다면…’ 소년은 이제는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온갖 상황을 상상했다. 그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 “이제 제발 그만 좀…” 끝없이 이어진 질문과 ..
[블레이드 코드] Act.1-1장 말없는 소녀 - 3화 올리버는 눈을 의심했다. ‘소녀… 소녀가 있어.’ 오래 전에 버려진 이 황량한 도시에. 그것도 자연 재해뿐만이 아니라 세계가 멸망한 뒤 등장한 괴물들까지 득시글거리는 세상에서 소녀 혼자라니. ‘아니야. 잘못 봤겠지.’ 소년은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싶어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소녀는 선명하게 보였다. ‘꿈이 아니야. 정말로 사람이…’ 소년은 눈을 비비고 이 납득되지 않는 상황을 자세히 살펴봤다. 버려진 의자 위에 앉아 있는 순백색 단발머리의 소녀. 나이는 10대 후반 정도 같았다. 다소 고생을 많이 했는지 피부가 거칠어 보였지만, 핏기가 느껴지지 않는 백옥 피부는 여전히 고왔다. 감은 두 눈 때문에 도드라진 속눈썹은 유별나게 길어서 그녀를 성숙해 보이게 했다. 소녀는 허리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