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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서재/[자작] 블레이드 코드

[블레이드 코드] Act.1-2장 피타고라스 - 6화

올리버는 정신없이 노엘을 쫓았다. 그녀에게 똑바로 뛰어가는 몸과 달리 머릿속은 혼란했다.

 

‘거짓? 거짓이라고? 어떤 부분이? 왜? 왜 그렇게 생각했지?
아니야, 난. 난, 아니야. 아니야.’

 

소년은 왜 그렇게까지 자신이 그녀를 쫓아야 하는지 몰랐다.

 

‘쫓아가서 그 다음은?
뭘 어떻게 하려고? 따져? 따질 거야? 무엇을?’

 

의문의 실마리를 쫓고 쫓자 소년은 미로의 끝에서 첫 번째 답을 발견했다.

 

‘아니, 아니야. 난 지금 화난 게 아니야. 저 소녀가, 노엘이 싫은 게 아니야.’

 

놀랍게도 소년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었다.

 

두근 두근 두근

 

달리는 소년의 심장은 거칠게 뛰었다. 하지만 그것은 숨이 차오르는 것 치고는 너무 크고 흥분해 있었다. 지금 이 소년. 올리버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상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과도 명백히 달랐다.

 

올리버는 노엘이 사라진 방향을 샅샅이 둘러봤다.

 

‘어디로 간 거야, 노엘. 도대체 어디로…’

 

꽤 오래 뛰었는데도 불구하고 소녀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었다.

 

‘너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단 말이야. 어디야… 대체 어디…’

“아!”

 

그때 소년은 멀리 옥상 위에 있는 소녀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녀는 쫓아오는 것을 느꼈는지 금세 멀어지고 말았다. 소년은 그런 그녀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도망가는 거야? 손을 내밀겠다고 했잖아. 그런데 어째서?’

 

올리버는 이대로 계속 뒤를 쫓기만 해서는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녀의 신체 능력은 일반인의 범주를 벗어난 듯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따라잡을 수 있지.”

 

소년은 소녀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생각… 생각해!’

 

그러다가 소년은 소녀가 사라진 쪽으로 향하는 도로의 표지판을 발견했다.

 

블로섬 레지던스

 

“…이거야!”

 

소년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블로섬 시티. 이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광활한 도시의 구조를 모두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통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수 년 동안 도시를 홀로 배회한 이 소년, 올리버는 가능했다. 하지만 그가 그것을 원했던 적은 없다.

 

소년은 혹시라도 소녀를 놓칠까 쉬지 않고 뛰고 또 뛰었다. 그러자 이윽고 어느 큰 빌딩 앞에 도착했다.

 

시티 시큐리티 센터
블로섬 레지던스 지구

 

“헉… 헉… 여기야.”

 

시티 시큐리티 센터. 먼 과거에 도시의 안전을 책임졌던 장소.

소년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익숙한 듯 건물의 어떤 장소로 서둘러 뛰어갔다.

 

벌컥

 

“헉… 헉… 다, 다행이다…”

 

소년이 들어선 방은 어두컴컴하고 온통 모니터로 가득 찬 방이었다. 이곳은 바로 시티 모니터링 룸. 도시의 숨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고 있는 비상 전력이 이곳 감시 카메라들 역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설은 오래됐고 전력은 부족해서 화면이 고르지 못하고 소리는 많이 찢어졌다.

 

드르륵 털썩

 

소년은 급히 의자를 빼서 조작기 앞에 앉았다. 그리고 익숙하게 홀로그램 인터페이스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책상에는 정신없이 낙서가 되어 있는 종이더미들이 쌓여 있었는데, 힐끔 쳐다보고 표정을 찡그리더니 옆으로 툭 치워버렸다.

 

띡 띠띡 띡띡띡 띠띡

 

“제발… 제발 작동해야 돼… 제발…”

 

지이잉… 띠링

 

“됐다!”

 

감시 카메라 화면들이 홀로그램으로 눈 앞에 펼쳐지자 소년은 아까 봤던 이름을 찾으며 중얼거렸다.

 

“블로섬 레지던스 블로섬 레지던스 블로섬… 찾았다!”

 

소년은 나머지 화면들을 모두 날려버린 뒤 눈을 부릅뜨고 소녀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소년의 머릿속에선 끊임없이 소녀가 남기고 간 의문이 휘몰아쳤다.

 

‘마음 속 목소리? 진심을 외면해?
대체 내가 무엇을 외면했다는 거야. 무엇을!’

 

답답함과 조급함에 소년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그때 화면 하나에서 소년의 눈길이 멈췄다. 그리고는 모든 혼란과 고통이 일순간 멈추고 고도의 집중력이 발휘됐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어느 주택 근처에 소녀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을 본 소년은 그곳을 향하려 서둘러 일어서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노엘. 여기… 지지직 군요.”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 올리버는 다시 화면을 돌아봤다. 노엘의 앞에 무언가 천천히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화면이 고르지 않아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소년은 그것을 알아봤다.

 

“가이드봇.”

 

꿀꺽

 

소년은 천천히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선뜻 소녀에게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가이드봇은 소녀를 발견하더니 이리저리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것은 분명 즐거움에서 비롯된 움직임이 아니었다. 소녀는 그 앞에서 가만히 서있었다. 소년은 천천히 볼륨을 높여보았다.

 

“그 소년… 지직 찾았… 지지직 피타고… 지직

 

올리버는 노엘이 말한 소년이 자신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네?”

“늦… 지직 않… 지직 어요”

“아직… 포…지직 하지 못했… 지직

“절 아시… 지지직

“코빈… 지직 포기… 지지직 그만... 지직 가시죠.”

 

익숙한 이름이 언급되자 소년의 표정이 꿈틀거렸다. 코빈. 자신에게 희망이 없다고 말했던 차가운 남자. 저 가이드봇을 조종하는 남자도 그를 아는 모양이었다. 정황상 그 역시 블레이드 앙상블이라는 곳의 소속이리라 생각했다.

 

“그는 틀… 지직 어요”

“틀… 지직 다구요?”

“네”

“다른 누구… 지직 마탄… 지직 가?”

 

마탄. 처음 듣는 단어였다. 소년은 그 단어가 코빈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네”

“당신도… 지지직 인지… 잘 알… 지직 습니까?”

“알… 지직 어요”

“마탄… 지직 수. 마… 사수입니… 지직
블레이… 지직 …상블의 지지직 …있는 자들.
너무… 지직 뛰어… 지지직 지지직 도움… 지직 …없는 지지직

“알고 있… 지직

 

소리가 찢어져 대화가 잘 들리지 않자 점점 소년의 답답함이 더해갔다. 하지만 뭔가 둘 사이에 언쟁이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지직 그것도… 실적… 지지지직 틀렸… 지지직 …겁니까?”

“제가… 지직 올리버… 지지직… 어요.”

 

자신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자 소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불쾌했다.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 낯선 이방인들. 그들이 자신이 없는 곳에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로 언쟁을 하고 있었다.

 

참다 못한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제 소년의 머릿속은 아까 보다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그 가이드봇은 누구지?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던 거야? 내 이름은 갑자기 왜 나와?’

 

그러다 문득 소년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저 가이드봇 때문에 그렇게 급히 떠난 거야?
왜? 그와 내가 만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어느새 소년은 소녀와 가이드봇이 대화를 나누던 곳 근처에 도착했다.

 

블로섬 레지던스의 한 주택가. 과거에 도시 중산층이 주로 살았던 주택가였으나 이제는 모래만 날리고 있는 곳. 아마 소녀는 그동안 이 근처에서 야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스읍, 하아…”

 

목적지에 도착하자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된 소년. 잠깐은 직접 찾아온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굳게 먹고 조심스럽게 감시 카메라가 비췄던 장소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때.

 

“그럼 대체 왜!”

 

분노, 아니 답답함에 외친 남자의 목소리. 성대가 아닌 스피커를 통해 전달된 그 소리는 아까 화면 너머로 들었던 가이드봇 남자의 목소리였다.

소년은 그의 목소리가 코빈만큼은 아니지만 딱딱하고 매우 사무적인 톤이라고 생각했으며, 가이드봇 너머에 있을 그의 모습을 상상하자 벌써부터 정을 붙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올리버는 숨을 죽이고 대화를 자세히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전 그저… 믿고 싶을 뿐이에요.”

“믿음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아요!”

“하지만…”

“하아… 노엘, 당신이 말한대로 희망이, 아주 조금의 희망이 남아 있다고 합시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마탄의 사수도 포기한 사례입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알고 있어요. 그래도...”

“알고 있다면 이제 그만 포기하세요!
그 소년을 위해 하는 모든 것이 낭비라는 말입니다!
시간, 능력, 인력, 위험 그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피타고라스…! 응…?”

 

노엘이 가이드봇 너머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말에 반박하려던 그때.

 

쾅!

 

“!!”

“누구냐!”

 

노엘이 무언가를 느끼고 뒤를 돌아보려는 찰나. 뒤에서 큰 무언가 큰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와 피타고라스가 소리가 난 곳을 바라봤을 때 처음 발견한 것은 방금 전까지 멀쩡했으나 지금은 처참히 무너져 내린 담장. 그리고.

 

“올리버…?”

“올리버? 저 소년이 말입니까?”

 

피타고라스의 가이드봇은 카메라 렌즈를 위잉위잉거리며 소년을 관찰했다. 산산조각이 난 담장과 그 옆에 서있는 보기 안타까울 정도로 깡마른 소년. 그 모습은 이 남자가 가정하고 있던 것을 확신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둘 다 꺼져.”

“올리버…”

“관심도 도움도 평가도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까. 당장 꺼지라고.”

“…들었나요? 노엘. 본인이 저렇게 말하는군요.”

“이 도시에 다시는 나타나지 마. 그렇지 않으면… 죽여버릴 거야.“

 

살벌한 경고를 마친 소년은 뒤돌아 어딘가로 달려갔다. 달려가는 그의 속도는 얼핏 보기에도 절박함에 노엘을 쫓던 때보다도 초인적으로 빨랐다.

 

“올리버! 잠깐 기다려!”

 

타탓

 

“멈춰요, 노엘! 또 어디로 가려는 겁니까!”

“피타고라스! 전 정말 괜찮아요.
그러니 언니와 함께 베이스 캠프로 먼저 돌아가세요!”

“노엘! 돌아오세요! 젠장 돌아오라고!”

 

피타고라스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노엘은 올리버를 쫓아 사라지고 말았다. 가이드봇은 그대로 멈춘 채 노엘과 올리버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의도된 조작이 아니었다.

 

 

이곳은 블로섬 시티에서 수십 키로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는 사막 바위지대의 동굴. 어두컴컴한 굴 안에서 한 남자가 홀로그램 인터페이스에 둘러 쌓인 채 바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앞머리를 뒤로 넘긴 검은 머리에 네모난 안경을 낀 각진 얼굴. 앉아있는데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훤칠한 키. 가늘어 보이지만 갖은 고생으로 인해 단련된 탄탄한 몸. 혹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 단정하게 정리된, 흡사 정장 차림처럼 보이는 세라믹 수트.

 

피타고라스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지금 가이드봇의 조작에서 손을 떼고 한 손으로 이마를 어루만지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아… 어쩌다가 상황이 이렇게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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