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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창고/게임 철학

게임 개발은 서비스업이다

1. 시작하기 전에

  처음 모바일 게임을 접했을 때는 거의 과금을 하지 않다가 이제는 꽤 많은 과금을 하게 되면서 들기 시작한 생각이 있습니다. 것은 '내가 이 돈을 게임이 아니라 백화점에서 썼다면 VIP가 돼서 갖가지 혜택을 받았을 텐데, 게임은 왜 이렇게 유저를 챙겨주지 않지'라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것은 개발 의식이 시장 변화를 못 따라가서 발생한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 중심에는 게임이 서비스업과 같이 변화했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번 글에서는 이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2. 상품으로써 게임

  사람마다 게임을 보는 시각이 모두 다른 것처럼 개발자 역시 생각이 많이 다릅니다. 그저 게임 개발이 좋은 사람, 많은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 유저의 피드백을 받는 것이 좋은 사람, 자아 실현을 하고자 하는 사람, 예술적인 게임을 만들고 싶은 사람 등 무수히 많은 유형이 있습니다.

하지만 개발자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적어도 회사에서 만드는 게임은 하나의 상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회사 어느 조직에서 온보딩을 하든 언제나 게임은 상품이라는 마인드를 팀원들에게 주문하곤 합니다. 콘텐츠 상품으로써 게임은 게임끼리만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애니메이션, 소설, 유튜브 콘텐츠와도 경쟁해야 합니다. 또한, 회사에 소속된 게임 개발자는 개발자가 좋아하는 게임이 아니라 유저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게임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상품입니다.

 

 

3. 유저의 시각 = 소비자의 시각

  이렇게 생각하면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게임 유저 역시 소비자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소비자 만족도라는 개념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매일 점심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가 수많은 식당 사이를 떠돌아다닙니다. 그 수많은 식당, 비슷한 메뉴 중 우리는 보통 자주 가는 단골 식당을 정해서 다니고는 합니다. 또한, 생활 가전제품, 이어폰, 핸드폰 하나를 구매해도 우리는 여러 회사의 상품을 이것저것 따져가면서 구매합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에는 여러가지 조건들이 있을 것입다. 퀄러티, 가격, 유지비, 청결함... 그러나 만약 상품의 퀄러티와 가격이 같다면 우리는 보통 서비스(친절함, A/S)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아무리 맛집이라고 해도 직원이 불친절하거나, 주문을 잘못 받거나, 음식이 늦게 나온다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기 마련입니다. 가전제품을 구매할 때 아무리 해외 브랜드가 좋은 게 있다고 해도 삼성을 찾게 되는 이유는 삼성 서비스 센터의 영향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전자제품을 고를 때 A/S의 편리함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서비스의 중요성은 콘텐츠에서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웹툰, 웹소설은 독자의 반응을 살피며 출판 도서도 오탈자 수정 및 책 퀄러티 개선을 위해서 끊임없이 개정판을 내놓습니다. 수많은 유튜버가 댓글이나 실시간 채팅을 살펴보며 구독자들이 불편해하는 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시리즈 영화는 전작의 혹평을 받아들여 후속작에서 개선하려 노력합니다. 소비자는 상품에 불만이 있거나 문제가 있을 때 가능한 모든 창구를 통해서 불만을 표출하고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그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한 번 잃어버린 신뢰는 쉽게 회복할 수 없으며 떠난 손님을 다시 데려오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이런 서비스 법칙이 게임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은 유저들이 매일 접속(방문)하여 콘텐츠를 소비하니, 매일 같이 매장에 손님을 받는 여타 서비스업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유저는 자신이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의 서비스질을 다른 게임 및 여가 콘텐츠들과 비교하여 판단할 것이고, 그것이 불만족스럽다면 주저없이 다른 게임으로 이동할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게임 개발 역시 서비스업의 형태를 갖게 되었다고 판단합니다. 그러므로 게임 개발자는 더는 그저 개발자의 시각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게임을 대신 서비스해주고 고객 응대를 대행해주는 퍼블리셔가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유저(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내놓고 문제를 수정하는 것은 개발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2022년 스팀 출시 게임 수 1만 1891개. 게임만 잘 만든다고 해서 이 홍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4. 좋은 서비스의 사례 : 운영적 관점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서비스업의 마인드를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 것일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 제가 여러 게임을 해오면서 개인적으로 느꼈던 점들을 한번 나열해보겠습니다. 우선은 게임의 운영에 관련된 부분입니다.

 

가. CS 대응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불만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는다면 다시 그곳을 방문하지 않고는 합니다. 이처럼 서비스 업종에서 CS(고객 만족) 대응은 고객의 재방문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CS가 얼마나 빠르게 정확히 처리되느냐는 소비자의 신뢰에 영향을 끼칩니다. 불만이 생기더라도 빠르고 만족스럽게 처리된다면 소비자는 상품에 문제가 있더라도 그들이 다시 방문할 가능성은 높아질 것입니다.

 

지만 불행히도 개발팀의 일상은 매일이 시간 싸움입니다. 새로운 업데이트를 준비하느라 일에 매몰되다보면 유저들이 지금 게임에 불만이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CS가 들어왔다고 해도 우선순위가 밀리기도 합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당장의 불만을 처리하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내놓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곤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형태는 장기적으로 유저의 신뢰를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방치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CS 대응을 위한 처리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습니다. 이전에 재직했던 모 회사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이 회사는 게임 하나를 5년 이상 장기 서비스하며 좋은 평을 받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개발실 내에 서비스 전담팀을 배치했으며, 버그가 일정 갯수 이상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기준을 세운 뒤, 기준을 넘어서려고 하면 버그 처리를 우선하고, 개발자가 주기적으로 돌아가면서 버그 전담 처리해서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비유하자면 개발팀은 삼성 서비스 센터 출장 직원의 역할을 겸해야 합니다.

 

나. 유저 만족도 조사

  우리가 각종 서비스를 경험하고 나면 으레 마주하는 것이 바로 만족도 조사입니다. 상품으로써 게임은 소비자(유저)들을 위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만들었고 그것을 전달했다면 그것으로 끝인 것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선물을 하더라도 상대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확인한 뒤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처럼, 우리가 내놓은 게임에 유저가 만족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게임사, 퍼블리셔들은 설문조사로 유저 만족도를 조사하고는 합니다. 대표적으로 호요버스의 게임이 그러한데 이 회사의 게임인 원신은 매 버전업마다 이전 버전의 만족도에 대해서 설문조사를 진행합니다. 새로운 이벤트는 재미있었는지, 어떤 점이 불만이었는지, 보상은 적절했는지, 플레이 시간은 적절했는지, 난이도는 어렵지 않았는지, 새로 출시된 캐릭터의 외형은 마음에 드는지 등 다양한 의견을 수집합니다. 물론 설문조사가 으레 그렇듯 신뢰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사 결과와 실제 게임 지표를 비교 분석하는 과정은 반드시 거쳐야 할 것입니다.

 

호요버스는 원신, 스타레일 등 모든 자사 게임에 정기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합니다.

 

다. 대면 대응

  때로는 CS 대응이나 유저 만족도 조사만으로는 유저의 니즈를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실제로 그들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일을 할 때 느끼듯이 문서만 주고 받는 것과 대화하는 것은 신뢰성과 상호이해에 압도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부 게임들은 정기적으로 유저와 얼굴을 보고 소통할 수 있는 이벤트를 개최합니다. 과거부터 많은 게임이 오프라인 유저 간담회를 진행해왔으며, 최근에는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방송 플랫폼이 활성화되면서 스트리밍 방송 형태로 많이 전환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파이널 판타지 14가 진행하는 레터라이브나 호요버스 게임이 주요 버전마다 진행하는 개발자 토크쇼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때 라이브 방송을 하든 녹화 방송을 하든 게임에 대한 유저의 정제되지 않은 반응을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CS 목록이나 설문조사 결과를 문서로만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파이널 판타지 14의 레터라이브

 

라. 업데이트 운영

  게임 업데이트는 비유하자면 편의점에서 신상품을 출시하여 기존 고객은 유지하고 신규 고객은 새로 방문하게 유도하는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게임의 업데이트, 곧 신상품은 무엇을 내놓아야 소비자인 유저들이 만족할까요? 서비스를 잘 운영하고 있다면 앞선 방법들을 통해서 니즈를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제 그것을 토대로 고객이 원하는 것을 업데이트를 내놓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의외로 생각보다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게임 업계에는 유저 동향 위주 업데이트 운영과 지표 기반 업데이트 운영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업데이트 운영은 유저 지표(데이터)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측, 그리고 지표 위주로 운영하면 게임이 재미없어진다는 측. 물론 게임도 사업이므로 지표를 보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며, 고객의 소리를 듣지 않고 상품을 만든다는 것 역시 말이 안 됩니다. 그래서 항상 이 두 의견은 물러섬 없이 첨예하게 맞서고는 합니다.

 

이것에 대한 저의 대답은 흑백이 아닌 회색 영역, 즉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는 것입니다. 

업데이트 운영을 지표에만 의존하면 데이터에 속을 수 있습니다. 지표상 많은 유저가 플레이한 콘텐츠가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그럼 마치 그 콘텐츠가 인기가 많았다고 생각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 콘텐츠의 보상이 너무 매력적이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왜냐하면 플레이 경험이 나빴더라도 지표가 좋게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상을 얻는 과정이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유발했다거나, 유저의 평균 플레이타임을 상회하는 시간을 요구했다거나, 콘텐츠 자체가 지루했다거나 하는 문제를 모두 무시하고 오직 보상 하나 때문에 지표가 잘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험들은 지표만으로는 알 수가 없는 영역입니다. 

반대로 유저의 동향에만 의존하면 방향을 잃고 동향에 휘둘릴 수 있습니다. 유저는 순수한 소비자의 마인드로 그때그때의 경험, 다른 게임에서 했던 경험, 일상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날 것의 의견을 제안합니다. 그중에는 게임에 도움이 되는 소중한 의견들도 있겠지만 게임의 근간을 고려하지 않은 의견 역시 있을 것입니다. 만약 게임의 지표를 고려하지 않고 의견대로 업데이트를 운영하게 된다면 게임은 아이덴티티와 사업성을 잃고, 결국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으며 자선사업처럼 운영되어 결국 사업성 악화로 서비스를 종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발자는 게임 지표와 유저 동향을 비교하여 유저들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업데이트를 진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책임지고 결정하는 것이 프로젝트 디렉터, 기획팀의 몫입니다.

 

지금 유저, 게임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해 준비하는 것이 기획팀의 역할입니다.

 

 

5. 좋은 서비스의 사례 : 브랜딩 관점

  앞선 항목들이 게임을 중심으로 본 사례들이었다면 이번에는 게임 외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콘텐츠 상품으로써 게임은 소비자(유저)에게 브랜딩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는 많은 콘텐츠가 소비자들에게 좋은 브랜드로 인식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아왔습니다. 영화는 시사회를 개최하여 감독 및 배우와의 인터뷰를 제공하기도 하고 각국의 팬들을 방문합니다. 아이돌은 다양한 굿즈를 출시할 뿐만이 아니라 팬미팅이나 사인회를 개최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디지털 콘텐츠가 아닌 소설조차도 인기가 많아지면 작가 사인회를 개최하여 작품뿐만이 아니라 작가의 브랜드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처럼 어떤 콘텐츠 상품이 소비자에게 좋은 상품, 대단한 상품, 가까이에 있는 대중적인 상품으로 보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게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가. 굿즈

  영화나 아이돌의 팬이 그들이 사랑하는 콘텐츠에 대한 애정을 더욱 쏟아붓기 위해 굿즈를 사모으는 것처럼, 게임 유저들 역시 그들이 좋아하는 게임에 역시 애정을 쏟고 싶어 합니다. 따라서 게임 역시 그런 팬층을 위해서 그들이 애정을 쏟을 수 있는 게임 외적 상품을 준비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게임 굿즈가 그렇게 다양하지 않았던 한국도 2020년도에 들어서 모바일 게임에 서브컬처 게임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다양한 형태의 굿즈가 풀리는 모양새입니다. 옛날에는 일부 피규어나 사운드 트랙 CD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최근에는 달력, 쿠션, 마우스 패드, 수첩, 아크릴 스탠드, 핸드폰 케이스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해졌습니다. 또한 단순히 온라인에서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팝업 스토어를 열어서 직접 유저와 대면하면서 이벤트 형식으로 판매하기도 시작했습니다.

 

정기적으로 팝업 스토어를 개최하는 호요버스

 

나. 팬 페스티벌

  팬 페스티벌은 게임사가 유저를 위해 개최하는 일종의 감사제라고 생각합니다. 소중한 여가 시간과 돈을 기꺼이 자사 게임을 위해 써주는 유저들의 사랑에 퍼블리셔, 게임사가 보답하는 것입니다. 아이돌로 비유하자면 팬 사인회나 팬 미팅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펜 페스티벌은 꽤 오래 전부터 오프라인의 형태로 진행해왔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특히 넥슨이 선두주자라고 생각합니다. 던파 페스티벌, 마비노기 판타지파티, 메이플 팬페스타 등 넥슨은 오래 전부터 자사 게임을 이용해주는 팬들을 위한 감사 행사를 꾸준히 진행해온 것으로 유명하며, 이들 게임이 10년 넘는 시간동안 꾸준히 사랑을 받는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라 추측합니다. 물론 최신 게임에서도 바람직한 사례는 여럿 찾아볼 수 있습니다. 호요버스의 원신 팬 페스티벌 여름 축제가 그러하며 니케의 니케 메이드 카페가 그렇고 블루 아카이브 역시 페스티벌을 개최한 바 있습니다.

 

팬 페스티벌이 반드시 오프라인의 형태를 취해야 하는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예를 들면 주요 시즌이나 시기에 맞춰서 게임 내에 다양한 이벤트 및 이벤트 콘텐츠를 개최한다거나, 웹 이벤트를 통해서 정기적으로 굿즈를 지급한다거나, 유저 참여형 이벤트(웹툰, 창작 소설, 공유 등)를 진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게임사/퍼블리셔가 유저를 생각하며 그들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년 유저를 초대하여 개최하는 던파 페스티벌

 

다. 애니메이션화

  인기 IP의 게임이 애니메이션화되는 경우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게임 애니메이션화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말해서 상업적으로 흥행한 사례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게임들은 애니메이션화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랑블루 판타지가 그랬고, 프린세스 커넥트, 드래곤 퀘스트, 블루 아카이브, 원신까지. 왜 그런 것일까요?

 

저는 애니메이션화는 게임 IP 브랜딩의 결정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애니메이션화를 진행하는 수많은 게임사들, 그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들 역시 애니메이션화가 다른 상업 애니메이션만큼 성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을 지속적으로 만드는 것은 온전히 팬들을 위한 선물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애니메이션풍이나 서브컬처 종류의 게임에 주로 해당하는 이야기이겠지만, 이쪽 장르를 좋아하는 유저들이 보통 게임을 하면서 동시에 애니메이션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유저들에게 있어서 자신이 하고 있는 혹은 사랑하는 게임이 애니메이션화된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 성공했다, 대단하다, 잘 나간다는 감성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애니메이션화는 수익을 노린 원소스 멀티유즈와는 다르게 상업적인 시선으로만 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라. 회사 브랜딩

  브랜딩은 개발사와 퍼블리셔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에 대한 유저의 신뢰는 그들이 내놓는 게임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회사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씌워지기 시작하면 유저는 그 회사, 게임이 무엇을 하든 부정적인 시선을 가집니다. 반대로 브랜딩이 성공하면 유저들은 그들이 설사 실수를 한다고 하더라도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좋지 않은 예로, 서브컬처 게임을 한국에 출시했던 몇 개의 중국 게임사 및 퍼블리셔는,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빠르게 서비스를 접는 모습을 자주 보여줘서 유저들 사이에 그곳 게임은 과금을 해선 안된다는 인식이 잡힌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다수의 한국 게임사 역시 유저들이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브랜딩이 잘된 회사는 어느 곳이 있을까요? 중국 게임사로는 단연 호요버스를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의 최신 후속작인 젠레스 존 제로에 집중된 관심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일본 게임사로는 사이 게임즈를 들 수 있을 듯 합니다. 일본의 서브컬처 게임 회사라면 역시 사이 게임즈라는 말이 칭찬처럼 따라 붙습니다. 같은 선상의 한국 게임사로는 블루 아카이브의 MX 스튜디오를 들 수 있겠습니다. 또한 서브컬처 외적으로는 펄어비스를 들 수 있겠습니다. 역시 한국을 컨셉트로 한 게임/콘텐츠로 한국 게임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유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브랜딩이 잘 된 회사와 안 된 회사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게임 장르와 플랫폼일까요? 호요버스는 원래 붕괴3rd 이전부터 작은 모바일 게임만 만들던 모바일 게임 전문 회사였으며, 그들은 여전히 모바일 플레이 경험을 베이스로 하고 있습니다. 사이 게임즈 역시 마찬가지로, 그랑블루 판타지, 프린세스 커넥트, 우마무스메는 모바일 플랫폼 기반 게임입니다. 그렇다면 BM 때문일까요? 호요버스와 사이 게임즈의 게임들은 모두 캐릭터 뽑기가 기본인 게임입니다. 심지어 두 회사의 게임 모두 웬만한 한국 뽑기 게임보다 과금 요구 수준이 높습니다.

저는 결국 브랜딩 차이는 앞서 나열했던 모든 항목들에 의해 결정됐다고 생각합니다. CS, 유저 만족도 조사, 커뮤니케이션, 대면 대응, 업데이트 운영, 굿즈, 팬 페스티벌, 애니메이션화, 회사 브랜딩. 이 중 무엇 하나를 잘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들 회사가 서비스적 관점으로 해왔던 모든 것들이 꾸준히 쌓여서 지금의 이미지를 만든 것입니다.

 

한 유저가 사이 게임즈에 '돈 쓰는 보람이 있다'고 한 적이 있는데 정말 와닿는 한 마디였습니다.

 

 

5. 마치며

   게임 서비스를 잘 하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아니, 분명히 어렵습니다. 게임사 혼자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니며 퍼블리셔만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조직 내 어느 한 팀, 누구 한 사람이 잘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잘 하려고 한다고 해서 잘 되는 영역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잘 해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게임을 만들어서 출시하고 콘텐츠만 꾸준히 내면 된다는 생각만으로는 더는 살아남기 어려운 것이 요즘 게임 시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롱런하는 게임들이나 소비자인 유저에게 칭찬받는 게임과 회사들은 이것을 매우 잘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특히 제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해주었던 현대 신세계 그룹 정용진 부사장님의 2023년 신년사를 첨부하면서 이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고객에 미쳐라' 이것은 게임 업계에도 해당되는 말임이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