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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창고/게임 내러티브

캐릭터 설정 방법론

1. 시작하기 전에

  지금까지 몇 개의 프로젝트를 거치며 많은 주니어 및 신입 게임 설정 기획자 분들을 만나왔습니다. 특히 몇 년 전부터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서브컬처 캐릭터 수집형 게임이 대세를 이루다보니, 캐릭터 설정 기획자를 모집하는 회사와 지원자 모두 많아졌다는 것을 체감했습니다. 아직 이 장르가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던 2018년 당시와 비교해보니 새삼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주니어 및 신입 분들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있노라면 이런 생각이 자주 듭니다.

 

"이 분도 포인트를 잘못 잡고 계시구나."

"이 분도 개발자는 아니시구나."

 

포트폴리오를 보고 이 생각이 드는 순간 서류 탈락으로 진행하는데 10명 중 6명은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남은 4명 중에서 2명은 포트폴리오에서는 가능성이 보였지만 면접에서 탈락하시고는 합니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는 포인트를 정확히 대답한 1명과 대답은 완벽하지 못했지만 무의식 중에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분들이 채용됩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앞서 말한 포인트에 집중하여 캐릭터 설정 방법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방법론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기획은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처럼 생각하는 방향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캐릭터의 존재의의

  캐릭터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이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캐릭터라는 말은 무슨 의미이며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요? 게임 콘텐츠에서 그들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캐릭터 Character는 사전적 의미로 책이나 영화 등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이라는 뜻입니다. 등장인물은 왜 필요할까요?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콘텐츠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구성하는 것들은 그것의 목적을 위해 있기 때문입니다. 책과 영화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지만 게임과 가장 많은 면이 닿아 있는 소설이나 공상 영화 콘텐츠의 경우, 콘텐츠 소비자에게 서사적 재미를 주는 것이 목적입니다. 서사적 재미는 어떻게 해야 줄 수 있는 것일까요? 서사는 사건과 행위로 구성되며 이것들은 저절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유발하는 주체가 필요합니다. 주체는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자연현상이 될 수도 있고 식물이나 동물 혹은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책, 영화에서 캐릭터는 서사를 이끌어가며 재미를 전달한다.

 

 

3. 게임 캐릭터

  이것이 과연 게임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요? 책이나 영화와 달리 게임은 서사적 재미만을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퍼즐 게임은 복잡한 퍼즐을 고민 끝에 클리어했을 때 느껴지는 희열을 추구하며, MMORPG는 온라인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협력하며 그속에서 나와 우리를 확인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액션 RPG는 다양한 전투 행동을 통한 전투의 재미를 추구합니다. 물론 시네마틱한 경험을 추가하며 개발하는 게임들 역시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까요? 

영화나 책은 보통 본다, 읽는다, 감상한다와 같은 관찰자의 시점으로 말하지만, 우리는 게임에 이런 말을 붙이지 않습니다. 게임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게임 플레이를 한다고 표현합니다. 앞서 예시로 들었던 여러 게임의 경험을 우리는 그 게임의 게임 플레이는 이렇다 저렇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게임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은 재미있는 게임 플레이를 제공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게임 캐릭터는 플레이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게임 캐릭터는 게임 플레이의 재미를 위해 존재한다.

 

 

4. 캐릭터 설정 방법론

※ 주의
캐릭터 해석 방식은 어떤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 철학자 숫자만큼 있는 것처럼 다양합니다.

이것은 필자의 방식일 뿐이며 정답인 것은 아닙니다.

 

가. 고정관념 깨기

  캐릭터의 존재의의를 알았으니 목적에 맞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기만 하면 됩니다. 잠깐, 그런데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캐릭터를 매력있게 만드는 것일까요? 이 질문은 아마 게임 설정 및 시나리오 기획자 면접의 단골 질문일 것이며, 저 역시 항상 질문하는 항목입니다. 이 질문을 하면 주니어 및 신입 분들의 대부분이 캐릭터의 매력적인 스토리라고 답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얼핏 듣기로는 정답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콘텐츠에서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진 캐릭터를 만나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언컨데 이 정답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아마 납득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여러분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의 스토리를 여러분이 가장 싫어하는 캐릭터의 다른 모든 것을 유지한 채 스토리만 서로 뒤바꿔 보겠습니다. 어떤가요? 여전히 두 캐릭터는 가장 좋아하는, 가장 싫어하는 캐릭터의 자리를 지키고 있나요? 아마 대부분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고자 하는 이야기는 스토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스토리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차차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스토리가 제일 중요하다면 실사화 작품의 캐스팅 논란은 있을 수 없다.

 

 

나. 캐릭터의 매력을 만드는 요소

그럼 캐릭터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캐릭터 설정을 이야기할 때 이것이 콘텐츠 소비자에게 어떤 감성 또는 감정을 일으키길 원하는 지에 집중합니다. 제 생각에 캐릭터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은 그 캐릭터에게서 어떤 감정을 느꼈다는 것이라고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애정 같은 긍정적 감정(예를 들어 서브컬쳐 게임 캐릭터)일 수도 있고 공포 같은 부정적 감정(예를 들어 액션 게임의 몬스터)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감정은 어디서 자극되는 것일까요?

 

저는 게임이 현실을 모방하는 만큼 그곳 역시 또 하나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게임 캐릭터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법칙이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타인에 대한 감정을 보통 어디에서 느낄까요? 많은 사람이 타인과 가까워질지 여부를 판단할 때 두 가지를 중요하게 볼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첫 인상(외모와 외견)성격입니다. 일단 여기에서 마음에 들어야만 우리는 그 사람과 지속적인 관계를 가질 것인지 결정합니다. 그 후 그 사람과 함께 한 시간들(스토리)이 쌓여서 사이가 더 돈독해지며, 그 사람의 속에 감춰져 있었던 과거사(과거 설정)를 들었을 때 더 깊은 관계가 되고는 합니다. 이 시점에 들어서면 우리는 더 이상 그 사람의 외모나 성격은 의식하지 않게 됩니다.

저는 이 법칙이 게임 캐릭터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게임 캐릭터의 매력을 판단할 때 그들의 첫 인상과 성격으로 먼저 판단하고, 그 후 그들의 스토리를 접함으로써 더욱 애정이 깊어집니다. 우리가 어떤 캐릭터의 매력을 이야기할 때 주로 스토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미 인상이나 성격을 의식하는 단계가 지나서 의식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산 서브컬처 니케, 블루 아카이브는 캐릭터의 스토리를 거의 설명하지 않는다.

 

 

다. 통일성 있게 만들기

그런데 이렇게 해도 결과물이 키메라처럼 조화롭지 않은 캐릭터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첫 인상이나 성격은 어느 것 하나가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이 그 사람을 정의합니다. 말버릇, 행동버릇, 호불호, 옷을 입는 스타일, 몸의 관리상태, 건강상태, 옷 매무새, 주변 인간관계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패키지처럼 그 사람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하나만 어긋나도 우리는 우리가 알던 사람을 저 사람이 저럴리가 없다며 다른 사람으로 치부하고는 합니다.

우리가 캐릭터를 만들 때 구성요소 하나하나를 매력에만 집중하면 어느새 거기에 매몰되어 전체를 못 보게 됩니다. 그러니 전하고자 하는 감성과 감정을 결정했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마다 이것이 의도했던 것과 다르진 않은지 끝없이 검토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캐릭터에게 담겨있는 모든 설정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구성된 패키지처럼 보여야 합니다.

 

적은 말 수, 거친 외모, 희끗한 머리까지 이 모든 것이 '게롤트'를 만든다.

 

 

라. 설득력 있게 만들기

우여곡절 끝에 우리가 생각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의외의 대답이 돌아옵니다.

 

"이게 왜 매력적인가요? 저는 매력이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매력을 느낀다는 감정 자체가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해서 그것을 다른 사람도 매력적으로 느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많은 사람이 매력적으로 느끼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까요?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시장 조사(혹은 레퍼런스 조사)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수많은 캐릭터 중에서 인기 있는 것을 대중적이라고 말하고, 소수만 좋아하는 것을 매니악하다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만든 캐릭터가 많은 사람이 좋아할 것이라는 설득력을 가지려면, 유사한 인기 캐릭터를 많이 찾아보고 그들의 장점을 차용해야 합니다. 그럼 비록 상대방이 캐릭터를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책,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을 막론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경험하면서 레퍼런스를 수집하여 적극적으로 차용해야 합니다. 

 

관심을 가지고 여러 콘텐츠를 살펴보면 법칙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마. 결론

지금까지 각 항목별로 설명했던 것을 우선순위 순서로 요약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첫째, 캐릭터가 전하고자 하는 감성, 감정

● 둘째, 설득력과 객관성을 더해줄 수 있는 레퍼런스 조사

● 셋째, 전하려는 감성과 감정에 어울리는 첫 인상(외모, 외견)

● 넷째, 전하려는 감성과 감정에 어울리는 성격

● 다섯, 깊이를 더해줄 수 있는 스토리


여기에 맞춰 캐릭터를 설정했다면 그것이 문서에서도 드러날 것이며, 나아가 면접에서든 실무에서든 누군가 여러분이 만든 캐릭터가 왜 매력적인지 질문을 했을 때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캐릭터는 사람들에게 @ 감정을 유발하여 매력을 어필합니다.
 유사한 인기 캐릭터로는 @ 만큼 인기를 끌었던 @ 작품의 @ 캐릭터, @ 작품의 @ 캐릭터가 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 과 @ 을 통해서 @ 감정을 유발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제 캐릭터 역시 @ 감정을 유발하기 위해 @ 과 @ 과 같은 외모와 @ 의 복장, @의 포인트를 넣었습니다.
 또한 @ 한 성격과 @과 같은 설정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상이나 성격은 이 캐릭터의 스토리의 @ 사건들을 통해서 형성됐거나 극대화됩니다."

 

 

바. 확장하기

이 법칙은 긍정적인 감정을 유발하는 캐릭터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적용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넓습니다. 확장하고자 한다면 주인공 캐릭터 뿐만이 아니라 중요도가 높고 낮은 NPC부터 시작해서 일반 몬스터와 보스 몬스터에게까지 모두 적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코믹한 캐릭터부터 시작해서 밉상 캐릭터,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는 악역 캐릭터에게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왜 해야 하며 어떻게 적용하면 되는지 포인트만 이해했다면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 년 이상 꾸준히 콘텐츠에 등장하는 드래곤이 여전히 인기가 많은 이유는?

 

 

5. 마치며

  이 글의 초안을 작성했을 때는 이것을 적용해서 캐릭터 분석 예시와 새로운 캐릭터를 설정해보는 것까지 담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관리자 역할을 하며 이것이 좋지 않은 습관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직 메타인지 습관에 익숙하지 않은 상대에게 정답을 제시해버리면, 그 사람이 거기에 갇혀서 생각을 넓히지 못하고, 점점 정답을 받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물론 일정이 급하고 결과가 반드시 잘 나와야 하는 경우에는 정답을 즉시 제시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공부하고 연구할 때에는, 시간을 길게 들여서라도 스스로 고민하고 이해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이 글을 포함한 블로그의 여러 글에서는 너무 디테일한 예시를 드는 것을 지양하고 화두만 던지는 형태로 진행해보려 합니다.

 

만약 주니어 혹은 신입분들께서 이 글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모르겠다면 평소에 좋아했던 캐릭터들에게 위의 법칙에 입각하여 분석 및 역기획을 해보기를 추천합니다. 또한 좋아하는 것만 분석하면 확장 응용을 못하게 되므로 싫었거나 공포를 느꼈던 몬스터에도 적용해보시기를 바라며, 나아가 아쉬웠던 캐릭터들에도 적용해보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매력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도 고민해보기를 권장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궁극적인 화두 2개를 던지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이 캐릭터는 보는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기를 바라고 만들어졌는가? 그것은 여러 의미로 매력적인가?"

"그것이 매력적이라면 그것을 그렇게 만들어주는 캐릭터의 요소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