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란 무엇인가?
by Dreamrugi
1. 시작하기 전에
18년 초부터 게임에서의 내러티브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고 어느덧 1년이 지났습니다. 최근 철학 관련 공부를 병행하고 있는데 그러면서 너무나도 근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내러티브narrative, 즉 서사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간의 공부가 제대로 된 것일리가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게임 내터리브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전통 문학에서의 서사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 '서사학 강의'라는 책을 사서 읽어 보았습니다. 책은 산 지가 꽤 되었는데 퇴근 후 조금씩 읽느라 완독하고 메모하고 정리까지 하는데에 몇 달의 시간이 걸려 버렸네요!
이제부터 전통적인 서사학에 하나씩 정리해보고, 게임에서의 서사narrative는 전통적 서사학과는 무엇이 다른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연구해보려 합니다. (이 책은 문학학도를 위한 책이라서 너무 어렵게 쓰여져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게임 내러티브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 내용만 담고자 합니다.)
※ 내용을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어려웠던 너란 책...!
2. 서사의 정의
가장 먼저 내러티브narrative, 즉 서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단순히 정의하면 '사건의 재현' 혹은 '사건의 연속'이라 하고 있습니다. 어떤 글의 모둠들이 단순히 글자 집단에서 벗어나 서사라는 것을 띄기 위해서는 사건이나 행위들이 연속적이거나 일관성을 띄어야 한다는 것이죠. 인류는 본능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간을 인지하고 그것을 서사화(시간의 질서가 사건, 사고를 기반으로 정리되는 것)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라보는 것이 서사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했지만 그것이 의문을 남길 때(서사적 교란 상태, 흔히 말하는 서스펜스) 완벽한 서사화를 위해서 어떻게든 그 빈 곳을 알아내고 싶어한다는 것이죠. (뒤에서 서사의 재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중요하게 다뤄지는 대목입니다.)
서사narrative라는 단어는 알다gnarus와 말하다narro에서 파생된 말로, 단순히 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해서도 사용되는 것입니다.
- 서사narrative는 사건의 재현 혹은 연속이다.
- 서사는 사건이나 행위들이 연속적이거나 일관성을 띄어야 한다.
- 서사는 말하기 위한 것 뿐만 아니라 알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 가령 아이들에게 어떤 환상적인 동화(서사)를 이야기해준다고 생각해봅시다.
단순히 아이들에게 말해주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듣고 이해하여 '알아야' 한다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3. 전통적 서사의 구성
서사가 무엇인지 그 정의를 간단히 알아보았으니 이제 무엇으로 구성되는지 알아볼 순서입니다. 앞선 항목에서 서사는 사건의 재현 혹은 연속이라 했습니다. 즉 반드시 사건event과 사건을 일으키거나 사건으로부터 촉발되는 행위action가 필요합니다. 또한 사건이 일관성 있게 연속적이면 스토리story (사건, 사건들의 연속)를 가지게 되며 그것이 전달될 때는 서사담화narrative discourse(전달되는 형태, 재현)의 형태를 띄게 되죠.
이때 스토리와 서사담화는 몹시 혼동되는 개념일 수 있는데, 둘 사이의 차이를 간단히 정리하면 스토리는 시간의 순서에 따라 절대적인 시간의 길이를 가지고 흘러가는 것이고, 서사담화는 전달되는 형태이기 때문에 시간이 역행되거나 확장 혹은 축약될 수 있습니다.
보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영화 메멘토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영화는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점차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는 형태로 전개됩니다. 이는 시간이 역행하고 있는 것이죠. 따라서 영화의 전개 자체는 스토리가 아니라 서사담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영화 전체를 사건의 발단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시간 순서대로 정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것을 스토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각종 콘텐츠에서 보는 것은 서사담화(재현)이고 그것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스토리(사건의 시간적 순서)를 인지하는 것이죠.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스토리의 모든 사건이 서사담화에서 언급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영화나 게임의 세계관 속의 사건이 영화에서 모두 노출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스토리와 서사담화의 개념은 앞으로 하게 될 서사학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므로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이 글의 카테고리가 스토리 연구가 아닌 내러티브 연구가 되어야 하는 중요한 대목이죠.
스토리와 서사담화의 차이에 대해 알았으니 이번에는 사건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이 책에서는 사건은 크게 2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바로 구성적 사건과 보충적 사건이죠.
구성적 사건은 스토리 전체를 앞으로 진행시키면서 동시에 다른 사건을 이끄는, 스토리 그 자체를 이루는 필수적 사건입니다. 반면에 보충적 사건은 서사의 의미나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부가적으로 추가되는 사건이죠. 즉 보충적 사건이 모두 제거되고 구성적 사건만 남아있어도 스토리 그 자체로써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바로 보충적 사건은 없어도 되는 것인가, 보충적 사건이 구성적 사건보다 더 중요도가 낮은 하위 개념인가에 관한 의문이죠.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입니다. 이 책에서는 두 종류의 사건은 추구하는 목적이 다른 것 뿐이라 서로가 동등한 관계이며 스토리의 서사성과 의미 및 감동 중에 무엇을 우선으로 두느냐의 차이 밖에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강철의 연금술사 브라더후드 애니메이션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대표적인 구성적 사건이라고 하면 크세르크세스의 멸망, 이슈발전, 엘릭 형제의 인체연성 등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전체 스토리에서 빠질 수 없고 모든 스토리를 이끄는 대단히 핵심적인 사건들이죠. 그렇다면 보충적 사건은 무엇이 있을까요? 인물의 성격이나 관계를 조명했던 사건들을 떠올려 보면 됩니다. 이를테면 엘릭 형제에게 연금술에 대한 회의감을 불러 일으켰던 쇼 터커 사건, 머스탱 대령이 호문클루스에 대한 극도의 혐오를 갖게 되는 매스 휴즈 사건 등이 있습니다. 예시들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강철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구성적 사건들 모두 중요하지만 보충적 사건들 역시 감동이나 의미, 인물의 변화 등을 위해서 없어선 안 되는 요소입니다.
- 서사는 직접 전달되진 않지만 절대적인 시간 순서로 전개되는 스토리story와
폭넓은 유연성을 가지고 직접 전달되는 서사담화narrative discourse로 나뉜다.
- 서사의 사건은 구성적 사건과 보충적 사건으로 구성된다.
- 스토리를 전개시키는 구성적 사건과 감동, 의미를 전달하는 보충적 사건은 서로 동등한 관계이며 필수불가결하다.
※ 환상적인 내러티브 전개로 호평을 받았던 God of War 4 입니다.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가 살고 있는 집에 발두르가 찾아온 사건(상단 이미지)은 주적을 드러내는 없어선 안 되는 필수적인 사건이죠.
하지만 예를 들어 크레토스가 아트레우스에게 자신의 손을 주먹으로 쳐보라고 하는 사건(하단 이미지)은 그 자체가 통째로 빠져도 전체적인 전개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크레토스가 아트레우스를 얼마나 나약한 존재로 보는지에 대해 드러내는 장면으로써 부자지간을 드러낸다는 의미로써는 이 장면 역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불가결하면서 발두르 대면 사건과 동등한 사건이라고 봐야 하는 겁니다.
4. 서사의 다양한 전달법
서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간단히 알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하면 서사를 재미있게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보면 될까요? 앞서 정의 부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서사는 말하기 위한 것 뿐만이 아니라 알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하였습니다. 즉 우리는 서사의 재미를 확보하기 이전에 어떻게 전달해야 독자가 서사를 쉽게 잘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서사에서 전달 방법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바로 서술자입니다. 우리가 흔히 1인칭 서술자, 3인칭 서술자, 전지적 작가 시점 등으로 이야기하는 바로 그것이죠. 거의 모든 문학에서 서사 내용의 대부분이 이들을 통해 전달됩니다. 그래서 문학 작품을 쓰는 사람들은 서술자를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연구한다고 합니다. 서술자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가하면 그가 보고 있는 내용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술자의 감정을 개입시켜서 비틀어 전달하기도 합니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는 모든 사실을 알고 있지만 서사의 재미를 위해서 재미있는 부분만 걸러내서 전달해주기도 합니다. 다만 영화나 연극에서는 서술자가 없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게임도 마찬가지이죠.
서사 안에 또다른 서사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그 안에서 다른 사람에게 다시 또 새로운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이것을 서사학에서는 액자 서사framing narrative라고 부르며 이것을 통해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하나의 큰 서사로 묶일 수 있습니다.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로 게임 속 인물이 어떤 사건이나 이야기를 다른 인물에게 이야기하고 있다면 그 순간은 게임이 액자 서사로써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보통은 어떤 책이 있다고 했을 때 그 책 안에 써져 있는 본문 내용만을 서사로 볼 것입니다. 하지만 서사학에서는 곁텍스트paratext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곁텍스트는 서사 경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곁가지처럼 뻗어 있는 모든 자료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통적 문학책에서는 책의 표지나 포스터 같은 것들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곁텍스트도 서사의 일종이기 때문에 서사성, 즉 서사적 일관성을 가져야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게임에서의 서사에 대해 연구하는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이 곁텍스트라는 것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전달법이라 생각됩니다.
※ God of War 4의 포스터
게임이 출시되기 전에 이 한 장의 이미지가 전작을 했던 플레이어에게 많은 서사적 경험을 전달했습니다.
크레토스는 원래 무기는 어디에 두고 도끼를 들고 있는 것인가? 옆에 있는 아이와는 무슨 관계인가? 그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마지막으론 수사학을 통한 전달 수단 강화가 있습니다. 수사학이란 단어는 상당히 생소한 단어일 수 있는데, 이 학문은 문장의 정확한 전달이나 설득을 위한 수단을 고찰하는 학문이라 합니다. 서사학 강의 책에서 언급하는 전달 수단 강화법은 총 3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인과관계 설정, 표준화 그리고 마스터플롯입니다.
먼저 인과관계 설정은 원인과 그것에 따른 결과를 보여주는 형태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사물의 기원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무엇인가 일이 발생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하는 것이죠. 이런 면에서 필연적으로 시간적 선형성을 가지고 있는 서사에게 인과관계 설정은 매우 적합하면서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서사학 강의에서는 인과관계를 설정할 때 잘 쓰면 약이 되고 잘못 쓰면 독이 되는 심리학 현상을 소개하고 있는데 바로 '앞에 발생한 일이 원인이다'라는 함정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결과의 바로 앞에 있는 것이 원인이라고 판단한다고 합니다. 이런 현상을 잘 이용하면 독자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제공하여 서사에서 놀라움을 줄 수 있을 것이지만, 반대로 의도치 않은 부분에서 독자들이 결과와 원인을 엮어 버린다면 그 서사는 개연성 문제 제기를 피해갈 수 없게 될 겁니다.
표준화는 두서 없이 나열되어 있는 사건들에 서사적 일관성과 연속성을 부여하는 작업을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잘 하면 서사성이 뚜렷하게 되며 그럼 설득력과 타당성이 생긴다는 것이죠. 서사성을 띄면 왜 더 잘 전달될 수 있는지는 앞에서 끊임없이 설명했기 때문에 추가적은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마지막은 마스터플롯입니다. 대중적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마스터플롯이라는 단어는, 서서학 강의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반복되며 우리의 가치나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스토리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마스터플롯은 수사학적으로 강력할 뿐만이 아니라 쉽게 믿어질 수 있습니다. 마치 끊임없이 주입되어 세뇌된 것처럼 아무런 의심도 가지지 않고 믿어버리는 것이지요. 구체적으로 마스터플롯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면 등장인물의 유형이나 작품의 장르와 연결해보면 쉽습니다. 전래동화 콩쥐팥쥐를 예를 들어보면 성격이 몹시 고약한 계모와 계모로 인해 고통받는 콩쥐가 묶여서 하나의 마스터플롯을 구성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스터플롯이 민족이나 지역 문화마다 독특한 형태를 띄고 있기 때문에 모든 마스터플롯이 전 세계에 통용될 거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어느 국가에서는 계모라는 존재가 매우 자비로운 존재로 마스터플롯이 형성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 전통적으로 서사는 주로 서술자를 통해 전달되었다. 서술자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어떤 인격체로 다양한 시점과 입장을 가지고 전달한다.
- 서사가 다른 서사를 품고 있는 경우를 액자서사라고 하며, 이를통해 여러 이야기가 하나의 서사로 묶여 전달될 수 있다.
- 곁텍스트는 서사 경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곁가지처럼 뻗은 모든 자료를 의미한다.
- 인간은 본능적으로 기원을 끊임없이 모색하기 때문에 인과관계를 설정하면 전달 수단을 강화할 수 있다.
- 사건들에 서사적 일관성과 연속성을 부여하는 표준화 작업을 거치면 서사성이 뚜렷해진다.
- 마스터플롯은 가치와 정체성에 연관되어 강력한 효과를 지니나 지역이나 문화적 특수성이 강하다.
※ 위에서부터 영화 로건, 게임 The Last of Us, 게임 God of War 4
이 3가지 콘텐츠는 모두 무뚝뚝하고 감정표현이 서툰 남성 어른과 어린 아이와의 만남, 갈등, 화해, 관계의 발전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5. 서사에서 오는 재미
그렇다면 이런 서사의 재미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우리는 서사들을 읽으면서 왜 재미를 느낄까요? 이 부분은 정의 부분에서 언급했던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간을 인지하고 그것을 서사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언급했었습니다. 그런 경향을 가지는 이유로 서사학 강의에서는 인간이 본능적으로 정상성을 회복하고 불안정 요소를 확립하여 안정화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역삼각형보다는 삼각형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잘 쌓여진 젠가 장난감 더미에 삐뚤어진 블럭이 하나 있으면 고치지 않고선 참을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죠.
이 사실을 잘 기억해두고 이제부터 설명할 개념들을 보면 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서사에는 틈이라 불리우는 수많은 전달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존재합니다. 서사 속 세계 역시 우리가 사는 세계처럼 매우 커다랗고 그 깊이의 끝을 알 수 없는 세계일 뿐만 아니라 한정된 서사의 분량에서 모든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서사를 읽을 때 끊임없이 마주치는 틈들로 인해서 무수히 많은 서사적 결핍을 느끼고 되고 앞서 언급했던 안정화를 하려는 욕구 때문에 어떻게든 이 틈을 메우려 시도하게 됩니다. 이 과정을 서사학에서는 더읽기overread와 덜읽기underread라고 부릅니다. 더읽기란 틈을 메우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사와 직접적인 연관성을 찾을 수 없는 것들을 덧붙여 이해하는 것을 의미하며, 덜읽기란 서사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기억하기 어렵거나 덜 중요해보이는 것을 잊어버리고 배제하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서사를 읽을 때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해서든 안정화를 시켜서 서사를 완벽히 이해하고 해석하고 싶은 것이죠.
틈을 만들어서 더읽기와 덜읽기를 할 수만 있으면 서사에 재미가 저절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저자들은 이것들을 도구로써 이용해서 본격적으로 서사의 재미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이런 것들을 이용해서 얻을 수 있는 재미가 바로 서스펜스suspense와 종결closure, 놀라움surprise, 그리고 깨달음enlightenment입니다.
사람들은 결과를 알기 전에 경험하는 불안정과 긴장 상태를 즐기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공포 영화나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저자들은 서사를 쓸 때 의도적으로 틈을 만든 뒤 일부로 그 틈을 메우는 것을 지연시키곤 하는데, 이때 빨리 틈이 메워지기를 바라는 욕망이극에 달하게 됩니다. 이런 종결의 결핍 증상을 서스팬스라고 합니다. 쉽게 예를 들면 단편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등이 매 화의 끝을 극적인 장면에서 마무리 짓는 것들이 바로 서스팬스를 이용한 것입니다.
서스팬스가 발생하면 독자들은 어떤 종결을 맞이하게 될 것인지 기대를 하게 됩니다. 이때 일반적으로 예측 가능한 범위의 종결을 맞이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안정성을 갖게됨에 따른 재미를 얻게 되지만 만약 그들의 기대를 져버리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종결을 제시한다면 그때 놀라움이라는 재미가 발생합니다. 이것은 서스팬스가 개념적으로는 적어도 종결이 하나가 아닌 여러 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때문에 서사를 쓸 때는 가능한 모든 종류의 종결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대단히 유연해야 합니다.
서스팬스와 종결, 놀라움이 주어진 틈에 대한 기대로 유발되는 재미라면, 틈으로 인해 발생한 의문점이 해결되어 발생하는 재미인 깨달음도 있습니다. 독자는 서사를 읽으며 수많은 의문(여기는 어디인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이들은 누구인가?)을 가지게 되고 거기에 스스로 답을 추측한 뒤 답을 확인하여 정답을 맞추거나 혹은 답이 틀렸음을 확인합니다. 이러한 질문들은 서사에서 하나만 주어지는게 아니라 끊임없이 주어집니다.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질문과 놀라움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표적인 장르로 미스테리 장르, 추리 소설 등을 떠올리면 됩니다.
(20190407 추가)
위와 같은 서사의 재미를 주기 위해서는 가장 많이 활용되는 것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사와 관한 전문가든 비전문가든 모두가 공감하는 서사의 핵심 구성 요소라고 하면 역시 서사 속 갈등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서사 속의 갈등은 수많은 틈과 의문을 만들어내는 요소로 갈등의 종결이 곧 서사의 종결을 의미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책에서는 갈등을 아곤agon이라 표현하는데, 이 아곤은 인물과 인물 간의 갈등으로 국한되지 않고 가치와 가치, 사회와 사회 등으로 폭넓은 범위를 가질 수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어떤 서사를 이야기할 때 갈등이 무엇인지와 그 해결 과정 및 결말을 많이 이야기한다는 것은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을 겁니다. :-)
- 서사에는 어쩔 수 없이 혹은 의도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틈이 존재한다.
- 인간은 본능적으로 안정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틈을 메우고 완성된 종결을 위해 더읽기와 덜읽기를 수행한다.
- 사람들은 안정화 되기 전의 불안정한 상태를 즐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을 서스펜스라고 하며,
이를 위해 틈을 의도적으로 만들고 종결을 지연시키기도 한다.
- 종결 그 자체만으로도 안정화라는 재미를 주지만, 기대를 져버리거나 예상치 못한 종결을 제시하면 놀라움이라는 재미를 줄 수도 있다.
- 틈을 통해서 의문점을 제시하고 그것의 해답을 제시하는 형태의 깨달음의 재미도 있다.
※ God of War 4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의 관계
그들의 갈등이 어떤 결말을 맺게 되는 것일까라는 서스펜스적 재미를 줍니다.
※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는 유언을 이뤄주기 위해서 가장 높은 산을 향한 여행을 떠납니다.
여기서 플레이어는 '가장 높은 산은 어디인가?, 그녀는 왜 이들을 가장 높은 산으로 보냈는가?'와 같은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게임의 엔딩에서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얻게 되어 놀라움 또는 깨달음의 재미를 얻게 됩니다.
6. 서사의 역할
앞서 마스터플롯에서 언급되었듯이 서사는 어떤 가치나 정체성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서사학 강의에서도 서사가 담고 있는 진실과 사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서사가 비록 허구일지라도 그것이 담고 있는 진실(의미에 관한)은 현실세상의 진실과 같은 힘을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과거에는 서사들이 독자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듯한 형태를 많이 띄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전래동화들이 권선징악과 같은 형태로 선을 권하고 악을 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현대에서는 이 양상이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열린 결말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서사들입니다. 이런 서사들은 끝에 어떤 명확한 종결을 제시하지 않고 마무리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말을 독자들이 짓도록 하는 것이죠. 이런 형태를 띄게 되는 이유는 앞서 틈을 이야기할 때 언급한 것처럼 틈 자체가 대단히 많은 경우의 수의 종결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서사에서 종결을 내는 것이 그 가능성을 위협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서사의 역할이 질문의 해결보다는 정확한 문제 설정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서사학 강의에서는 질문의 해결과 문제 설정 중 무엇이 옳고 그르다라는 식의 언급은 하지 않고 있으며, 둘 다 고민해봐야 하는 이슈라고 이야기하고 책을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이것은 게임에서도 상당히 심도깊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므로 다음 글들에서 게임에 적합한 서사학에 대해 연구할 때 다시 한 번 고찰해보려 합니다. 이번 글은 서사학 강의에서 마지막으로 던진 고민 포인트를 언급하면서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 서사가 이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위해 질문만을 던지는 태도로 계속 의심하게 한다면, 깊은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 좋은 독해라는 것이 균형이라는 것을 위해 도덕 관념과 반대 관념까지도 염두해야 한다면, 강한 신념을 창조하고 유지하는 일과는 반대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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