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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창고_게임/게임 내러티브

[고찰] MMORPG 시나리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MMORPG 시나리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by Dreamrugi


1. 고찰이 시작된 이유

  최근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인력 부족으로 잠시 시나리오 초안을 쓸 기회를 얻은 적이 있습니다. 평소에 시나리오에 관심은 많았지만 실제로 써본 적은 없어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이것저것 써보던 와중에,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의문들이 떠올랐습니다. 이전의 고찰들과 연계된 것, 평소 의문을 가지고 있던 것, 다른 개발자들이 입이 닳도록 말했지만 와닿지 않았던 것들이었는데, 그 의문들을 하나로 묶어서 정리해보자 한 가지 질문으로 압축되었습니다.


"MMORPG에서 개발사가 플레이어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기존, 현재의 시나리오 컨텐츠의 방향은 옳은가?"


 현재 제 개인적으로는 "옳다 그르다를 떠나서 바람직하진 않다"라고 결론을 내린 상태인데, 지금부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 로스트 아크 대표 이미지

     가장 최근에 오픈한 대형 MMORPG 로스트 아크 역시 개발사가 일방적으로 플레이어에게 제공하는 형태의 시나리오 컨텐츠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이런 방식이 MMORPG에 적합한 방식일까요? MMORPG에서의 시나리오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요?



2. 왜 바람직하지 않은가?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생각한 것에는 그만한 근거가 있겠죠! 이번 항목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2가지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가. MMORPG의 본질에 대한 이슈

  MMORPG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겠습니다. 왜 바람직하지 않은지를 알아보려면 먼저 MMORPG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RPG는 다른 고찰을 통해 "허구적 세계에서 다른 역할을 한번 경험해보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여기에 MMO(Massive Multi Online)이라는 단어가 붙게 되면서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라는 것이 추가됩니다. 즉, MMORPG는 "다수의 사람들과 허구적 세계에서 다른 역할을 한번 경험해보는 것"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기존의 일방향성 제공 형태의 시나리오는 다수가 함께하는 형태로 발전되어 오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은 주인공 1인을 기준으로 전개되죠.  현대의 많은 MMORPG들의 시나리오 컨텐츠들이 제한적으로만 다수와 함께하는 경험을 살리고 있습니다. 90% 이상의 컨텐츠 진행을 1인 기준으로 전개하다가 대규모 보스전과 같은 형태만 함께 하도록 하는 것이죠. 이 방향이 틀렸다고는 볼 수 없으나(역할 체험을 함께하곤 있으니), 컨텐츠의 비중이 개인에게 많이 치중되어 있다는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MMORPG의 가장 큰 강점이 다함께 함으로써 발생하는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이라면, 시나리오 컨텐츠도 그에 맞게 상호작용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 되어야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파이널 판타지 14의 시나리오는 개인 컨텐츠라는 기준으로 보면 감동적인 것임은 틀림없지만 그 과정에 함께 던전을 도는 것 외에는 어떤 상호작용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즉 장르적 특성을 제대로 살리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 파이널 판타지 14 대표 이미지

 감동적인 이야기로 매 확장팩마다 호평을 받고 있는 파이널 판타지 14. 하지만 그 시나리오를 진행하면서 플레이어 간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발생하진 않는다는 점에서 MMO의 강점을 잘 살리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진 않을까요?


  나. 컨텐츠 소비 속도와 작업량

  이번에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개발비용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인건비입니다. 인건비를 생각할 때 같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 컨텐츠의 작업량 대비 효율(매출이나 컨텐츠 소모 속도)입니다. 예를 들어서 던전 2개가 있다고 했을 때 A던전은 1명이 1주일 동안 만들며 던전을 1달 만에 졸업하고, B던전은 모두 동일하되 2명이 작업해야 하는 분량이라면, B던전은 A던전에 비해서 작업 효율이 절반이라는 이야기가 되고, 이는 1인분의 인건비의 낭비로 이어진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으로 봤을 때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형태의 시나리오 컨텐츠는 어느 정도의 작업 효율을 가지고 있을까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최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인 시나리오 컨텐츠를 만들 때 들어가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여러 명의 시나리오 라이터가 붙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거기에 등장할 많은 인물들과 퀘스트를 만들어야 하며 컷신이 있으면 애니메이션 팀도 붙은 뒤 성우를 섭외해서 녹음도 진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떨까요? 일단 시나리오 컨텐츠는 애초에 시나리오를 보지 않는 플레이어들에게는 사실상 없는 컨텐츠라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시나리오를 보는 플레이어들에겐 어떨까요? 일단 아무리 많은 분량을 만들어도 순식간에 소모됩니다. 아무리 긴 장편 소설도 한 달 내에 읽는 것과 마찬가지이죠. 그렇다고 시나리오 진행에 제한건다면(예를 들어 레벨 제한), 수시로 끊기는 전개 때문에 몰입도가 크게 저하됩니다. 그런데 심지어 비즈니스 모델도 딱히 없기 때문에 매출도 발생시키지 않죠.



3. 방향성을 찾아볼 수 있는 사례들

  정리하면 현재 MMORPG들의 일방적 제공 방식의 시나리오 컨텐츠들은 MMO라는 장르적 특성을 잘 살리지 못하고 있으며, 최악으로 평가받는 개발 효율 때문에 소홀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MMORPG의 시나리오는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만들어져야 하는 걸까요? 저는 3가지 게임에서 그 방향을 찾아보았습니다.


가. 고전 장르 : 던전 앤 드래곤

  대부분의 RPG의 부모라고 평가 받고 있는 보드 게임 "던전 앤 드래곤"은 사실, 기반 세계관은 치밀하게 짜여져 있지만 이렇다 할 만한 메인 시나리오가 있는 게임은 아니었습니다. 게임 마스터(GM)라는 역할을 담당하는 1명의 플레이어가 직접 어떤 서사를 만들어 내고, 그에 맞춰서 게임이 전개되는 방식이었죠. 때문에 개발자들이 따로 컨텐츠를 제공하지 않아도 플레이어들은 자체적으로 무한에 가까운 컨텐츠를 만들어 냈습니다.


※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

이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은 다함께 모여 던전 앤 드래곤을 즐겨 플레이합니다. 이때 주인공 중 하나가 매번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GM으로써 플레이 시나리오를 고심하여 짜내고 그걸 바탕으로 친구들과 게임을 하죠. 던전 앤 드래곤이라는 보드 게임은 규칙과 상호작용 거리를 제공했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 엄청난 컨텐츠 수명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나. RVR 장르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MMORPG 중에서도 역대 최고의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 받고 있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이 게임은 사실 시나리오를 일방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게임에 가깝지만, 그 내면을 잘 살펴보면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RvR이라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메인 시나리오 자체가 플레이어 간의 분쟁을 기반으로 쓰여졌으며, 특히 격전의 아제로스 확장팩을 보면 다방면의 시나리오, 컨텐츠에서 플레이어가 서로 분쟁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매우 큰 틀에서 보면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시나리오로 게임이 진행되고 있지만 그 안에 있는 세세한 것들이 상호작용을 유도함으로써 플레이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도록 하고 있는 것이죠.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격전의 아제로스 "습격" 대표 이미지

습격 컨텐츠는 그 근본은 군단 확장팩에서의 군단 침공과 유사하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양 진영의 플레이어들을 한 곳에 집중시키고 컨텐츠 시나리오도 양 진영의 군대가 충돌하도록 구성하여 의도적으로 플레이어들이 상호작용하도록 유도합니다.


다. 리니지 PC

  리니지2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이야기는 바츠 해방전쟁입니다. 구체적으로 이 사건이 어떤 것이었는지가 중요하기 보다는 개발사가 어떤 직접적인 유도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의 결과로써 역사책에 써질 법한 거대한 사건이 발생하고 전개되었으며 끝을 맺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MMORPG의 시나리오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날 수 있었던 다양한 이유 중에는 분명히 그런 혼란스러운 세계를 제공했던 세계관, 시스템, 컨텐츠가 영향을 끼쳤을거라 생각합니다. 모든 방면에서 플레이어로 하여금 이런 혼란한 정세에서 살아남기 위해 동료를 모은 뒤 힘을 모으라고 말해주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죠.


※ 리니지2 바츠 해방전쟁 당시의 내복단

  개발사는 단지 독점할 수 있는 시스템과 컨텐츠를 제공했을 뿐이지만 그 규칙 안에서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이 발생했고, 그 결과 개발사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려고 해도 만들기 어려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4. 정리

   이제까지 알아본 문제들이나 바람직한 사례들을 토대로 살펴보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커뮤니티 활성화"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게임의 세계관, 시나리오는 단순히 개발사가 플레이어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컨텐츠가 아니라, MMORPG 장르의 "함께"라는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보조장치로써 만들어져야 하며, 플레이어 간의 커뮤니티가 활성화됨으로써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도록 해서 무한에 가까운 컨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이라는 것이죠.

  사실 이런 시나리오 컨텐츠의 구성이 플레이어들에게 익숙한 형태는 아닙니다. 이미 오랜 경험을 통해서 일방적으로 제공되는 컨텐츠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기획자가 해야 할 일은 익숙하지 않으니 이 구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구성을 플레이어에게 익숙하게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일 겁니다.


마지막으로 MMORPG의 시나리오가 가야 할 방향성을 두 줄로 정리하며 이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 MMORPG의 강점은 "함께"라는 것이기 때문에 시나리오도 플레이어가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 플레이어 간의 커뮤니티로 인해 발생하는 그들만의 이야기로 무한에 가까운 컨텐츠를 생산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 사실 모든 MMORPG가 담고 있는 컨텐츠들이 추구해야 하는 올바른 방향은 보드 게임과 같진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