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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창고_게임/게임 내러티브

[연구] 기억 향상을 통한 내러티브 강화

기억 향상을 통한 내러티브 강화

by Dreamrugi


1. 무엇을 위한 것인가

  누군가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줬을 때 그 사람이 울고 웃고 감동받기 위해선 무엇이 선행되어야 할까요? 이야기의 재미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듣는 사람이 그것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멋진 이야기라 한들 정작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겠죠. 이런 이유로 재미와 감동은 듣는 사람이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듣는 사람이 내러티브를 기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심리학에 기반한 기억 향상법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 효과적인 기억의 과정을 나타낸 Neo Smartpen 출처의 도표 .반복적인 복습이 있어야 장기기억이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2. 기존 게임 사례

  심리학에 기반한 기억 향상 사례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아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기도 하지만 이렇게 디테일하게 내러티브를 강화하려 하는 개발사가 거의 없기도 합니다(시나리오 / 퀘스트 담당에서 신경써야 할텐데, 보통은 시나리오 담당자는 시나리오만, 퀘스트 담당자는 퀘스트만 만들기 때문에 이를 모두 포괄해서 리딩하여 하나로 묶으려는 사람이 없는 한은 이뤄지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세심하게 신경쓸 수 있을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잘 없기도 하고 그런 포지션은 모든 파트에 간섭해야 하기 때문에 리더급이 그런 의지가 없다면 안되겠죠?).

  

  이런 와중에 세심한 부분을 신경 쓴 게임이 있습니다. 바로 CD Project RedWitcher 3입니다. 이 게임은 내러티브 강화를 위해 다방면에 신경 쓴 게임이기도 하지만, 특히 처음에 이 게임을 접했을 때 "와 내러티브를 위해 이런 방법을 쓸 수도 있구나"라고 느꼈던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로딩화면'이죠. 이 게임에서는 게임을 실행할 때마다 그 지역에서 진행 중인 메인 시나리오의 지난 줄거리를 간략한 일러스트와 함께 나레이션으로 알려줍니다. 아마 이 게임의 개발자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분명 우리 게임을 한 동안 못 하다가 다시 하는 플레이어들이 있을거야,  그런 사람들을 위해 지난 이야기를 설명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또한 그들이 의도했던 의도치 않았던 간에 게임을 실행할 때마다 출력되는 이 스토리 간략 안내는 되뇌기 및 간격두기 효과를 발생시켜 효과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 Witcher 3의 로딩화면 : 현재 진행중인 지역의 이야기를 일러스트와 나레이션으로 설명해준다.

  플레이어들에게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오랜만에 게임을 잡으면 내용이 기억이 안난다"라는 것인데 이 부분을 멋지게 해결해냈습니다.



3. 실제로 적용해보기

  이제 이런 효과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방법을 하나씩 구체화해보고자 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중요한 것은 게임에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인물, 사건 등)를 보다 효과적으로 기억할 수 있게 하여 내러티브를 강화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가. 묘사 : 이미지를 그릴 수 있게 묘사 혹은 이미지를 같이 제시

  흔히 텍스트 위주로 서사를 전달하는 게임들에서 자주 범하는 실수가 바로 '중요한 사물을 이름만 언급'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심리학에서의 기억을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이고 시각화할 수 있는 것들을 더 잘 기억한다." 이런 실수가 빈번히 발생하는 이유는 그간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았을 때 크게 2가지가 있습니다.

 

- 대상이 머릿 속에는 그려지고 있으나 전달을 위해 실수로 묘사해야 한다는 것을 잊는다.

- 인물들과 달리 사물은 디테일하게 설정이나 이미지를 잡지 않고 등한시 한다.

 

내러티브 담당자는 플레이어가 기억해야 하는 대상을 묘사할 때는 자신의 머릿 속에 그리고 있는 이미지를 최대한 구체화하여 표현하거나, 만약 그런 이미지를 그리고 있지 않았다면 스스로 그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베스트셀러 소설 '반지의 제왕'을 예로 들면, 저자 J.R.R 톨킨은 원래 식물에 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하며, 그가 쓴 소설들을 보면 각 지역의 식생에 대한 묘사가 대단히 구체적으로 묘사됩니다.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에 앞서 독자가 극의 배경인 지역을 머릿 속에 그릴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간단한 문장의 예시를 들어보며 이 항목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아래 두 문장 중 무엇이 더 이해되고 기억에 오래 남을까요? 답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


- 로제라는 이름의 여자는 정원에서 잃어버린 반지를 찾고 있었다.

- 금빛 머리칼에 빨간 머리띠를 두르고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듯한 하얀 실크의 원피스를 입은, 로제라는 이름의 여자는 자신의 머리띠 색을 닮은 장미가 만발한 정원에서 잃어버린 사파이어 반지를 찾고 있었다.


※ 추가사항 : 게임, 영상물이기 때문에 다른 점

대부분의 게임들은 텍스트보다는 영상이나 플레이 위주로 서사가 구성됩니다. 따라서 텍스트로 서술했어야 할 묘사들을  '영상'이나 '플레이'로 풀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게임이 텍스트 위주의 루즈한 플레이로 전개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죠.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로제라는 여성에 대한 묘사를 예로 든다면, 외형을 묘사하는 '금빛 머리칼에 ~ 원피스를 입은' 부분을 컷신을 통해 영상으로 풀어내며, '머리띠 색을 ~  찾고 있었다' 부분은 컷신 종료 후 인게임에서 로제라는 캐릭터가 장미 정원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장면을 연출한 후, 사파이어 반지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대화나 퀘스트 과제를 통해 풀어내야 할 겁니다.


※ 블레이드 앤 소울의 남소유 소개 컷신

컷신을 보면 남소유가 몹시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신체 하나하나를 집중 묘사하면서 주변의 남성 캐릭터가 헤롱헤롱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만약 텍스트로 구성된 내러티브였다면 "그녀의 머리카락은 ~ 걸음걸이는 ~ 그녀가 나타나면 남자들이~" 라는 식으로 묘사되었을 겁니다. 


나. 부호화 가이드 : 정보를 청크 단위로 묶어서 제공

  기억의 과정을 보면 단기기억에 들어온 정보는 그곳에서 부호화되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고 합니다. 이 부호화는 추후에 정보를 인출할 때 인출단서가 되기도 하죠. 따라서 서사를 구성할 때 습득한 정보를 쉽게 부호화할 수 있도록 가이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반 문학과 달리 게임은 모든 플레이어의 목적이 스토리 탐독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죠. 

  이를 위해 우선 정보들을 '청크(덩어리)' 단위로 묶을 필요가 있습니다. 다르게 말하자면 '계층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상위 계층에 있는 정보일수록 '부호' 그 자체가 되어 부호화가 한층 더 쉬워지며, 서로가 인출 단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와우를 예로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호드에는 다양한 종족과 수장들이 등장합니다. 이를테면 실바나스 윈드러너를 소개한다고 했을 때, 그녀를 '벤시 실바나스' 정도로 묘사하는 것과 '현 호드의 대족장 벤시 실바나스'로 묘사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처럼 묘사한다면 실바나스를 '벤시'에 연관해서 부호화 할 것이고, 후자처럼 묘사한다면 '호드의 대족장'이라고 부호활할 겁니다.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지금 혹은 앞으로 전개될 서사에서 실바나스를 무엇에 초점에 맞춰 묘사하고 싶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만약 호드의 대족장으로 부호화한다고 한다면 아래처럼 부호화 될 수 있을 겁니다.


- 부호(상위 계층1) : 호드

- 부호(상위 계층2) : 대족장

- 정보(하위 계층) : 실바나스, 가로쉬, 스랄

      

- 벤시 실바나스는 부대를 이끌고 얼라이언스를 공격했다. 과거에 가로쉬가 그랬듯이.

- 호드의 대족장 실바나스는 부대를 이끌고 얼라이언스를 공격했다. 과거에 가로쉬가 그랬듯이.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등장하는 다양한 종족의 수장들

이들 각자가 다양한 직업이나 성별 등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임 속 많은 내러티브에서 "@@ 종족의 족장 @@" 식으로 묘사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들이 플레이어에게 기억될 때 직업 같은 것으로 부호화하기 보다는 종족이나 진영에 맞춰 부호화하는 것이죠. 또한 쓰랄의 경우는 대족장의 지위를 가로쉬에게 넘겨준 뒤부터 본명인 '고엘'이나 '세계 주술사'로 묘사되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플레이어 기억 속의 쓰랄을 진영이라는 범주에서 주술사라는 범주로 넘어가게 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 깊은 처리 유도 : 정보가 담고 있는 본질을 안내

  흔히 공부를 할 때 답만 외우지 말고 그 이유나 과정을 기억하라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이 말은 근거없는 이야기가 아니며 실제로 심리학에서 '깊은 처리'라고 하여 의미적으로 이해하고 있을 때 더 쉽게 기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게임 내러티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이름을 언급하는 정도의 선에서 끝난다면 플레이어의 장기기억에 기억되기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개발을 하다보면 잘 적용되지 않는 것을 보곤 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 2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깊은 처리를 유도할 생각을 하지 못해 설명을 간략화 한 경우

- 의미적 설명을 추가하려 해도 깊은 처리를 이해하지 못한 누군가 대사 축소를 요구하는 경우


경험상 전자보다는 후자의 경우가 더 많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텍스트가 너무 길어지면 읽기 싫어지고 재미가 없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 보다는 '텍스트가 길어져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을 고려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깊은 처리도, 위에서 언급한 세부 묘사도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죠. 깊은 처리를 유도한 것과 유도하지 않은, 와우에서 차용한 두 가지 대사 예제를 들면서 이번 항목을 정리하겠습니다. :)


- 우리가 이번에 찾을 것은 카즈고로스의 망치라네.

- 우리가 이번에 찾을 것은 카즈고로스의 망치라네. 티탄 카즈고로스가 그것으로 세계를 다듬었다고 하지.


※ 데스티니1이 출시되었을 때 그 게임의 부실한 내러티브를 꼬집기 위해 만들어진 이미지.

위 영어의 내용은 "설명할 시간이 없어 왜냐면 설명한 시간이 없기 때문이야" 라는 뜻인데, 보통 게임 개발할 때 '텍스트 분량이 많아서 읽기 싫다'라는 의견이 나오면 덩달아 나오는 이야기가 '굳이 왜 해야 하는지 일일히 다 설명할 필요가 있냐, 목적만 알려주자'라는 이야기입니다.그래서 데스티니1이 퀘스트의 모든 목적을 '설명할 시간이 없다'라는 식으로 처리해버렸습니다.

Pixel 책의 데스티니 개발 일화를 보면, 지속된 무리한 요구에 시나리오 라이터들 모두 떠나갔고 나중에 시나리오 비전공자들인 회사 내 상급자들이 그것을 이어받아서 직접 내러티브를 구성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서사를 '설명할 시간이 없다'라는 식으로 처리해버렸고, 결국 게임이 출시되었을 때 이 부분이 플레이어들에게 엄청난 질타를 받으며 조롱거리가 되었죠. (그리고 이후 번지는 모든 대사와 음성 녹음을 다시 만드는 비용을 감수하면서 까지 이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개발자들은 본인이 스토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스토리를 원래 안 보는 플레이어들은 텍스트가 길든 짧든 어쨋든 읽지 않습니다. 반대로 스토리를 보는 사람들은 텍스트가 길든 짧든 읽으려 노력합니다. 따라서 안 보는 사람들을 위해 내러티브 텍스트들의 살을 도려낼 필요가 없습니다. 내러티브 텍스트가 누굴 위한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라. 되뇌기 유도 : 자주 언급하되 대명사, 서술형 보다는 고유한 이름으로 언급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되뇌기분산학습이 필요하다가 언급된 바 있습니다. 즉 기억해야 하는 것들은 그만큼 플레이어들에게 자주 노출, 언급해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블리자드의 불타는 군단 확장팩에 대한 포스트모템 내용을 인용하자면, 불타는 군단의 주 악당이 일리단 스톰레이지 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확장팩 내에서는 일리단이 대사에서 가끔 언급될 뿐 실제로는 거의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이때문에 불타는 군단 내내 일리단의 존재는 잊혀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다음 확장팩인 리치왕의 분노에서는 퀘스트, 던전 등 곳곳에서 리치왕을 만날 수 있게 구성하였고 그의 존재를 플레이어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보통 글을 쓸 때 대명사를 많이 사용하곤 하는데, 되뇌기를 위해서는 그보다는 고유한 이름들을 언급해주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대명사는 문맥을 파악하여 대상을 유추해야 되기 때문에 직관적이지 않고 잘못된 대상으로 인지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와우에서 바로크 사울팽의 아들, 드라노쉬와 그가 전사한 분노의 관문 전투를 기억시키고 싶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리고 게임 내에서 이에 대해 이야기할 때, 다음 두 가지 문장과 같이 이야기한다고 해보겠습니다.


- 그의 아들이 노스랜드의 전투에서 전사했지

- 그의 아들 드라노쉬가 노스랜드에 있는 분노의 관문 전투에서 전사했지


  전자의 경우는 기억해야 할 대상들이 대명사로 언급되었기 때문에, 되뇌기를 유도하고 싶어도 플레이어가 드라노쉬와 분노의 관문 전투를 유추해내지 못했다면 소용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후자는 대상이 명확하기 때문에 되뇌기 하기도 부호화하기도 수월하겠죠.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리치왕의 분노의 다양한 퀘스트에서 등장했던 리치왕

불타는 성전의 일리단과 달리 리치왕은 다양한 퀘스트에서 등장하여 '지금 리치왕과 싸우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마. 자기 참조 효과 활용 : 자신과 연관된 것이라 느끼게 하기

  자신과 관련된 것이면 더 잘 눈치채고 기억한다는 것은 굳이 심리학을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학교 수업시간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만약 선생님이 '철수, 듣고 있어?'라고 특정 학생을 언급한다면 어떨까요? 철수는 칵테일 효과에 의해 정신이 번쩍드는 것 뿐만 아니라 추후에도 이 수업이 자신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여(질문할지도 모르니) 수업 내용을 기억하려 노력하게 될 겁니다.


  마찬가지로 게임에서 꼭 기억했으면 하는 것을 서술하기 전에 플레이어들을 언급한다면 앞으로 할 이야기가 자신과 연관되어 있거나 혹은 자신이 들어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여 더 주의 깊게 내용을 듣게 될 겁니다. 실제로 자기 참조 효과를 알았던 몰랐던 이미 많은 게임들이 플레이어의 이름을 언급하는 기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저 '느낌이 좋으니까' 이름을 언급하는 것보다는 '명확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죠? 아래 두 가지 예제를 기억하면 됩니다.


- 졸지 말고 칠판에 집중해라!

- 철수! 졸지 말고 칠판에 집중해라!


바. 자기검증의 유도 : 되뇌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장기기억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자기검증'은 되뇌기를 유도하되 학습자가 스스로 학습했던 '내용을 인출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이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이야기하면 질문'하라는 것이죠. 사용할만한 방법은 2가지입니다. '선택지로 질문하기'와 '뜸들이기'입니다.


  선택지로 질문하기는 내러티브형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화 선택지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 동안 게임들에선 대화 선택지를 일상 대화를 듣거나, 기능을 선택하거나, 시나리오 분기를 위한 선택을 하거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곤 했습니다. 이제 여기에 자기검증을 가미하는 것이죠.

예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Witcher 3에서 이름을 외우기 가장 어려운 인물 중 하나는 닐프가드의 황제 에미르 바 엠레이스이죠. 자기검증을 유도하지 않는다면 에미르를 언급할 때 대사에서 "에미르 바 엠레이스 황제가 북부 왕국을 노린다더군"이라고 말할 겁니다. 하지만 이름을 기억하기를 원한다면 "닐프가드의 황제, 그 에...에미... 기억이 안 나는군! 이봐 게롤트! 이름이 뭐였지?" 라며 이름 맞추기 형태의 대화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럼 앞서 제시된 인출단서들과 선택지를 가지고 자기검증 형태의 되뇌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주의할 것은 너무 잦은 대화 선택지의 사용은 플레이 흐름을 끊을 뿐만 아니라 시나리오를 보고 싶지 않은 플레이어에게는 정말 귀찮은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귀찮게 하지 않으면서 시나리오를 보는 플레이어가 자기검증을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한데, 여기서 사용해볼 수 있는 것이 바로 '뜸들이기'입니다. 설명은 뭔가 거창하게 했지만 사용법은 대단히 단순합니다. 앞서 살펴봤던 선택지로 질문하기에서 질문을 빼고 답을 알려주는 것이죠. 바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위의 예시를 한 번 차용해서 살펴보도록 하죠. "닐프가드의 황제, 그 에...에미... 기억이 안 나는군! 이봐 게롤트! 이름이 뭐였지?" 라는 대사가 나온 시점에서 플레이어는 머릿 속을 탐험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대화를 다음 페이지로 넘기면 이런 대사가 나오죠. "아! 기억났네! 에미르 바 엠레이스 황제!". 뜸들이기와 정답 사이를 페이지로 나누어서 기억 속을 탐험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죠!


4. 마치며

  예전에 한 동료 기획자가 시나리오 관련 회의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재밌게 볼 수 있는 인프라는 하나도 제공하지도 않고 플레이어가 재밌게 보기를 원하느냐"


  제게는 시나리오 담당도 아니었던 그분이 해주신 이 말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많은 개발자들이 놓치고 있던 사실. '시나리오는 개발자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를 위한 것이다'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컨텐츠 기획자들은 그 동안의 작업들이 '플레이어들이 관심있으면 기억하겠지 뭐'라고 생각하고 내러티브 강화를 등한시 했던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고 앞으로는 플레이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제작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작업을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 관심있으면 플레이어가 알아서 보고 기억하고 하겠지라고 생각하면 위와 같은 사태가 벌어질 겁니다.

'어차피 정보는 주어졌으니 끝났다'라고 개발자 스스로 자기합리화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쉽게 기억하게 할 수 있을까'라고 접근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