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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창고_게임/레벨 디자인

소울라이크 장르와 고리형 레벨

1. 소울라이크 장르

  최근 패키지 게임에서 가장 높은 관심을 받는 장르 중 하나는 바로 프롬 소프트웨어에서 개발한 다크 소울에서 파생된 장르, 소울라이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장르는 높은 난이도 때문에 인지도에 비해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플레이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힘든 과정만큼 높은 성취감 때문에 액션 게임 플레이어 사이에서 가장 유행하는 장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장르는 꽤 독특한 레벨 구조를 가지고 있기도 한데, 이번 글에서는 이 소울라이크 장르의 레벨이 가지는 특징과 그것의 장단점에 대해 분석을 해보려 합니다.

 

프롬 소프트웨어의 다크 소울에서 시작된 장르, '소울라이크(Souls-like)'

 

  우선 게임에서 레벨은, 그것이 들어가게 될 게임의 장르에 최적화되어 만들어지는 것이 기본이므로, 분석을 시작하기 전에 소울라이크가 어떤 경험을 제공하는 장르인지 알아보기 위해, 이 장르의 시초인 다크 소울의 특징을 간단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크 소울은 액션 게임이지만 그것만의 독특한 특징을 가진 게임입니다. 액션 게임은 보통 스타일리시 또는 묵직함을 선택하는 행보를 보이곤 하는데, 다크 소울은 묵직함을 선택하는 것을 넘어서 그것을 극대화한 게임입니다. 이 게임은 전체적으로 대단히 느린 템포로 플레이가 진행되는데, 캐릭터의 공격 및 이동속도뿐만이 아니라 아이템 사용까지도 느리며, 사운드와 배경의 분위기는 보는 사람마저 움츠러들 정도로 매우 무겁고 음침합니다. 

이러면 게임이 상당히 지루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다크 소울은 행동으로 얻는 결과를 매우 극단적으로 크게 만들어서 강렬한 자극과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비유하자면, 공포 영화가 전체적으로 느리고 묵직한 고요함을 가져가다가, 귀신이 등장할 때면 전에 없던 강렬한 자극을 선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크 소울 역시 BGM 조차 거의 없어서 평소에는 캐릭터의 발소리밖에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하지만, 사물을 부수는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도 격렬하게 큰 사운드를 제공합니다.

정리하자면, 평소에는 모든 게 느리면서 묵직하여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지만, 필요할 때는 과할 정도로 명확하고 확실한 피드백을 제공하여 극단적인 자극을 제공하는 게임인 것입니다.

 

 

2. 고리형 레벨

  그렇다면, 다크 소울로 대표되는 소울라이크 장르 레벨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 게임 레벨을 고리형 레벨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액션 게임 플레이어들은 탐험보다 전투에서 얻는 재미를 원하기 때문에, 길을 찾는 수고를 굳이 만들지 않기 위해, 액션 게임은 보통 레벨을 일자형으로 구성합니다. 그러나 고리형 레벨은 레벨의 구조가 마치 쇠사슬 고리가 연속으로 연결된 것처럼, 레벨의 끝이 처음 시작 지점으로 되돌아옵니다. 예를 들면, 안전 지대에 첫 번째와 두 번째 레벨로 가는 문이 모두 있으며, 첫 번째 레벨의 끝에서 두 번째 레벨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지름길이 열리는 개념입니다.
쉬운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어떤 이유 때문에 2층에서 멈춰 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플레이어는 1층의 비상구를 통해 2층으로 간 뒤, 그곳에 멈춰있는 엘리베이터를 다시 가동해야 합니다. 엘리베이터가 가동되고 나면, 플레이어는 빠르게 1층의 안전 지대로 돌아올 수 있으며, 다음부터는 1층 비상구를 거치지 않고도 쉽게 2층으로 갈 수 있게 됩니다.

 

프롬 소프트웨어의 블러드 본. 좌측의 문은 1번째 레벨을 돌고 들어오는 길이다.

 

  이 고리형 레벨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Z 축(높이)를 적극 활용하여 레벨의 상하 이동이 매우 빈번하다는 것입니다. 고리형 레벨은 동선이 뻗어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 구조를 가지므로, 일자형 레벨에 비해 안전지대 근처에 차지하는 면적이 많아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입니다. 하지만, 높이 차이를 활용하면 마치 아파트처럼 동일 면적 내에서 위아래로 레벨을 유연하게 늘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높이를 적극 활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개활지가 적고 길과 방으로 이루어진 구조를 띈다는 것입니다. 고리형 레벨은 플레이어를 다시 시작 지점 근처로 이끌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갈림길이 등장하면 가던 길을 계속 따라가는 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시작 지점을 향해 방향을 틀도록 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동선을 유도해야 하는데, 개활지는 너무 많은 경우의 수가 있어 유도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레벨을 개활지로 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길과 방이라는 왕도를 두고 그것을 선택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위치 및 방향 감각을 잃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앞선 이유들의 결과라고 할 수 있는데, 레벨이 개활지가 아니라 닫혀 있는 방과 길의 구조를 띄기 때문에, 방향이나 위치를 참고할만한 랜드마크를 제공하기 어려우며, 높이까지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마음속의 지도를 위아래로 이어지는 복잡한 3차원으로 그려야 해서, 매우 뛰어난 공간 감각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인지하기 쉽지 않습니다.

 

높이 활용이나 원활한 동선 유도를 위해 사방이 닫힌 구조를 많이 사용한다.

 

3. 소울라이크 장르와 고리형 레벨

  마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이 보이는 듯한 고리형 레벨, 그렇다면 이것이 소울라이크 장르와 만나면 어떨까요?

  저는 최대 장점은 긴장감의 극대화라고 생각합니다. 고리형 레벨은 위치 및 방향 감각을 잃기 쉽다고 했는데, 이렇게 시야가 좁고 짧아지면 우리는 불안감에 사로잡힙니다. 얼마나 더 나아가야, 얼마나 적을 더 무찔러야 안전해질지 알 수 없는데, 첫 번째 죽음은 보상을 떨어뜨리고 두 번째 죽음에는 그것이 없어진다는 불이익은 불안감을 더욱 가중시킵니다. 그리고 이것은 소울라이크 장르에서 아주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만듭니다. 이 장르의 특징은 묵직함과 고요함의 긴장감 속에서 강렬한 자극을 선사하는 것인데, 전투뿐만이 아니라 레벨 자체가 긴장감을 조성하면서 경험이 더 극대화되는 것입니다.

 

바로 옆에서 무엇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그렇다면 단점은 어떨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단점 역시 위치 및 방향 감각을 잃기 쉽다는 것입니다. 방금까지 장점으로 말했으면서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것인지 생각하실 수도 있으나, 시너지 효과를 만든다고 하더라도 게임 레벨에서 길을 잃기 쉽다는 것은 여전히 매우 치명적인 단점입니다.
소울라이크 장르라고 하면 떠오르는 수많은 단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어렵고 매니악한 게임입니다. 기본적으로 전투도 몹시 어려운데 길마저 찾기 어렵다는 점은, 이 장르를 한층 더 익숙해지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나마 전투는 학습하기 쉽고 명확한 피드백을 제공하지만, 어려운 길은 익숙해지기 어렵고 피드백도 명확하지 않아, 플레이어가 쉽게 좌절하여 게임을 떠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동선은, 그것은 전투와 달리 플레이어의 학습으로 극복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리형 레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단점을 명확히 인지하고 플레이어가 길을 잃지 않도록 잘 안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태여 위치 및 방향 감각을 잃도록 하지 않아도 이 레벨은 이미 충분히 그 역할을 하므로, 레벨 기획자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플레이어가 좌절하지 않고 게임을 계속 진행할 수 있도록, 길을 잃기 쉬운 지점에 명확히 안내자가 될 수 있는 객체나 프랍을 배치하고, 기억에 잘 남을 수 있는 장소나 환경을 구성하거나, 전투와 이벤트로 동선을 유도하는 등의 적절한 안내를 기획해야 합니다. 

 

레벨 중간중간의 특징적 오브젝트는 좋은 길 안내자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