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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창고/레벨 디자인

상호작용을 유도하는 MMO의 레벨

1. 시작하기 전에

  MMORPG 레벨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기획자는 없을 것입니다. 대규모 다중 접속(Massive Mulit Online)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장르에서 플레이어가 다른 이의 존재를 느끼고 유대 관계를 맺도록 유도하는 것은 게임의 본질과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본질을 레벨에서는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요? 자주 보아야 정든다는 말처럼, 게임에서도 자주 만나야 정들 수 있습니다. 그럼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서로를 자주 만날 수 있도록 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호작용이 발생하는 레벨은 어떤 것일까요?

 

2. 실생활에서 배우기

  가상 무대에서 캐릭터를 가지고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MMORPG는, 여러 게임 장르 중에서도 특히 실생활과 가까운 장르입니다. 즉, 우리가 실생활을 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면 플레이어를 게임 내에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모이게 하기 쉬울 것입니다. 한국의 수도, 서울을 생각하면 즉시 떠오르는 사람이 밀집되는 장소는 어디가 있을까요? 저는 역삼, 강남, 용산, 교대 지역들을 선택해 봤습니다. 

 

역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바로 수많은 회사입니다. 많은 기업이 위치한 이곳은, 평일 아침과 저녁 사이에 많은 사람이 밀집되며, 사람들은 같은 회사에 종사하는 사람과 유대를 쌓습니다. 이러한 유형 장소는, 설명하자면 생계와 같은 어떤 근원적인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강제성에 의해 을 하는 장소입니다.
강남은 젊음과 열기의 중심으로, 일과 같은 강제적인 제약이 얽매이지 않는 여가 시간에 많은 사람이 밀집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사람들은 이곳을 방문하여 각자의 취향에 따라 옹기종기 모여 휴식 즐거움 영위합니다.
용산에서 유명한 것은 전사 상가로, 많은 사람이 전자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서 이곳을 방문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전자 제품이라는 필요를 해소하기 위해 방문하는 장소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교대, 정확히는 이곳을 중심으로 근처의 터미널을 살펴보겠습니다. 이곳은 터미널이라는 두 곳의 교통 요지와 지하철 환승역까지 있는 교통 중심지 중 하나로, 이런 장소를 HUB라고 부릅니다. 목적지로 향하는 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이곳은, 평일과 휴일을 막론하고 언제나 북적입니다. 다만, 머물러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다른 곳에 비해 밀집도 대비 상호작용 빈도는 낮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실생활에서 사람이 밀집되는 장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므로, MMORPG의 레벨 역시 합리적인 이유를 바탕으로 구성해야 사람이 밀집될 것입니다. 이 단락을 마무리하면서 앞서 알게 된 4가지 사실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보겠습니다.

 

- WORK(일) : 생계 등에 직결되어 있는 강제성이 있는 일이 있는 곳
- FUN(즐길거리) : 일에 종속되지 않았을 때, 즐길거리가 있는 곳
- NEEDS(필요) : 일에 종속되지 않았을 때, 다양한 필요를 해소할 수 있는 곳
- HUB(교통) : 목적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필히 거쳐야 하는 곳

 

사람이 밀집되는 곳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3. 게임 레벨에서의 적용

  이번에는 위의 각 항목들이 게임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스퀘어 에닉스에서 개발하여 서비스 중인 MMORPG, 파이널 판타지 14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MMORPG에서 일은 보통 캐릭터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는 사냥터 퀘스트 장소와 같은 곳에 밀집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게임 세계 전체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을 뿐만이 아니라, 캐릭터의 성장에 따라 버려지는 곳이 많기 때문에 밀집도가 유지되기 쉽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플레이어를 특정 시간, 장소에 모이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파이널 판타지 14는 이것을 돌발 임무, 마물 수배와 같은 이벤트 형태의 콘텐츠로 해결하려 시도했습니다.

 

파이널 판타지 14의 마물 사냥

 

게임은 플레이어가 그들끼리 즐겁게 놀 수 있는 다양한 인프라를 제공하곤 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길드입니다. 특히 파이널 판타지 14의 길드 시스템 중 하우징은 눈여겨볼 만한 요소입니다. 어떤 집단이 소속감을 가지고 결집하는 데에 터전의 존재 유무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때 이 장소의 소유 감각은 매우 중요한데, 이것은 그저 장소가 있다고 해서 생기지 않습니다. 이 감각을 주려면 공간에 대한 통제권, 자율권을 제공해야 하며, 파이널 판타지 14는 그것을 인테리어, BGM 변경과 같은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통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자유 부대 하우징 구성 전과 후

 

기획자는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필요하게 될 다양한 필요를 구성합니다. 예를 들면, 전투를 할 때 체력 포션을 필요하게 만들 거나, 전투를 지속하면 장비의 내구도가 감소하여 수리를 해야 하는 것과 같은 방식입니다. 필요를 만들고 나면 그것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 장소를 함께 제공하는데, 이것은 보통 마을에서 제공되고, 이것은 플레이어가 마을에 밀집되게 하는 효과를 만들며, 파이널 판타지 14 역시 많은 도시와 마을이 있고 그곳에서 필요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기능을 제공합니다.

플레이어가 마을을 방문했다가 다시 원래 목적지로 돌아갈 때는 동선이 발생합니다. 이때 거미줄처럼 사방에 펼쳐진 이 동선을 한 지점으로 잘 엮어주면 HUB가 생기도록 유도할 수 있는데, 파이널 판타지 14는 데존, 텔레포라는 교통수단과 이 수단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에테라이트라는 지점을 만듦으로써 게임 내에 HUB를 만들었습니다.

 

그리다니아 도시의 에테라이트

 

4. 모바일 게임에서의 변화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많은 게임이 PC에서 모바일로 이동하면서 MMORPG 역시 변화를 겪었습니다. 모바일 디바이스의 조작 한계와 짧은 플레이 타임이라는 플랫폼의 특성은, 모든 것을 터무니없이 간소화되도록 만들었습니다. 필요의 해소 방식 교통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의 모든 것이 UI에서 터치 한 번으로 해결되고 있으며, 그로 인해 플레이어의 동선과 HUB가 무의미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바일 게임을 PC 게임처럼 구성하자니, 모바일 게임 플레이어의 UX가 거기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MMORPG에서 플레이어 간의 상호작용은 게임의 본질이라서 포기할 수는 없으므로, 많은 기획자가 이를 완화하기 위한 방법을 고심하고 있습니다. 필요를 바로 해소할 수 있는 UI를 제공하지만, NPC를 방문하면 할인 혹은 보너스를 제공한다거나, 마을과 사냥터 간의 이동에 순간이동을 제공하되 유료 혹은 횟수를 제한하기도 하고, 순간이동을 하긴 하지만 바로 목적지로 도착하는 것이 아닌 HUB를 만들어 도착하게 하여 동선이 완전히 점으로 되는 것을 방지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변화하는 플랫폼이나 플레이어의 UX에 대처하여 시대에 발맞춘 레벨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닐지, 글을 마치며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랑사가의 라그나데아 상점들 역시 밀집을 유도하려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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