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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창고/레벨 디자인

[고찰] 무대로써의 레벨

무대로써의 레벨

by dreamrugi


1. 시작하기 전에

  리니지2 레볼루션을 개발하던 당시에는 시나리오 퀘스트의 상황에 따라 BGM을 전환하는 기능(물론 많은 버그를 가진)은 있었지만 레벨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기능까지는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퀘스트의 시나리오와는 많이 동떨어진 분위기가 자주 연출되곤 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예가 글루딘 가도에 처음 진입했을 때 언데드 해적들이 쳐들어오는 부분으로, 언데드가 거대한 배를 타고 항구를 습격한 음울하고 위급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레벨의 밝기는 몹시 밝아서 몹시 어색했습니다. 어둡고 비가 내리는 환경이었다면 더 극적으로 보였겠지요. 이때 당시에는 환경 값을 바꿔야겠다라는 인지까지는 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내적으로도 MMORPG에서 환경값 변화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현실에 안주한 고여있는 생각이었는지 싶은 생각이지요. :-)

이러한 생각은 실제로 프로젝트N을 개발하면서도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리니지2 레볼루션에 비해 연출 등에 힘을 더 주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환경 변화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우려를 표했고, 이 부분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무대로써의 레벨에 대해 고찰해보려 합니다. (더불어 이와 관련하여 좋은 의견을 제시해주셨었던 사운드 팀장 님이신 반**님께 감사 말씀드립니다.)


※ 리니지2 레볼루션의 글루딘 가도 초반 메인퀘스트

언데드 해적이 쳐들어왔음에도 밝기가 몹시 밝습니다. 전체적으로 어둡고 비가 오거나 했다면 더 몰입감이 좋았겠지요.



2. 타매체에서의 무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오래 전에 RPG에 대해 고찰했던 글을 잠시 되돌아보겠습니다. 당시 고찰에서 RPG는 역할극이라고 했으며 이 장르에서 게임 속 배경은 역할극의 몰입을 위한 '무대'라고 했던 바 있습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죠. RPG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게임에서 배경은 플레이어를 위한 무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무대, 배경이라는 것을 타매체에서는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요? 게임과 가장 유사하다고 생각되는 영화를 토대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목적인 이 매체에서 무대, 배경은 전적으로 이야기의 분위기, 감정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조정됩니다. 예를 들면 전달하려는 상황이 행복, 발랄하다면 무대는 햇빛이 창창한 가운데 생명이 넘치는 정원이나 시원한 풀밭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우울하거나 슬픈 상황이라면 구름이 껴서 해가 보이지 않으면서 비가 내릴 수 있을 겁니다. 조금 더 구체적인 예시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 DVD에는 메이킹 필름이 동봉되어 있는데, 거기에 수록되어 있었던 내용입니다. 1편인 반지 원정대의 배경 중에 로스로리엔이라는 곳이 등장하는데, 이곳은 원작 소설에서는 말로른이라는 빛나는 황금빛 잎사귀를 가진 나무로 인해서 항상 따뜻하고 밝은 황금빛 숲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영화를 봤던 사람들은 모두 알다시피 실제로 영화에서는 대단히 어둡고 채도가 거의 없는 무채색의 빛이 은은히 빛나는 곳으로 나왔습니다. 단편적으로 보면 원작을 파괴한 못된 결정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구현한 이유에 대해 메이킹 필름에서 이렇게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실제론 내용이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찬란했던 역사가 끝나고 쇠락해가는 요정들의 상황과 현재 반지 원정대가 처한 음울한 상황(간달프의 죽음)을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 영화에서의 로스로리엔(상)과 원작 소설의 묘사를 표현한 로스로리엔(하)

단순히 원작을 살리기만 했다면 아래처럼 밝아야 했겠지만 감정, 분위기 묘사를 위해 위와 같은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원작 팬들에게는 기분 나쁜 선택이었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전달력 있는 구성이었겠지요.



3. RPG에서의 배경

  위에서 봤던 것과 같이, 이런 세밀한 무대 설정 작업은 영화 뿐만 아니라 게임에도 적용되어야 생각됩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혹은 이야기에 기반해서 진행되는 콘텐츠로써 마땅히 갖춰야 하는 소양과 같은 것이죠. 게임의 경우는 배경, 무대 역할을 하는 것이 레벨이기 때문에 전달하려는 이야기에 맞춰 제작,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레벨 기획자는 게임의 이야기가 진행될 무대를 만드는 사람으로써 영화의 연출, 배경 감독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가짐 (제가 항상 후임 동료 분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는 말입니다)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야 되는 것일까요?


가. 시나리오의 주제에 따른 구성

  이전에 올렸던 고찰, 연구 글 중에 레벨의 발상 순서를 다룬 글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레벨 제작시 첫번째로 고려해야 할 것으로 내러티브를 꼽았었는데, 이전에는 여기에서 단순히 필요한 구역이나 설정을 확인하는 수준으로만 파악하는 것을 이야기했었지만, 이제는 거기서 멈추지 말고 레벨에서 전달해야 하는 이야기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흐름에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크고 작은 개별 사건의 분위기가 아니라 레벨 전체를 아우르는 수준의 이야기의 주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사는 하나의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여러 분위기를 가진 다양한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사건 하나하나의 분위기를 모두 레벨에 반영하려고 하면 레벨의 분위기가 지나치게 자주 바뀌게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작업 리소스적인 문제는 개발 여건이니 둘째라고 치더라도 플레이어의 경험이 너무 빈번히 바뀌어 이야기 자체로의 몰입을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야기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를 먼저 파악하고 거기에 부수적으로 붙은 사건이 무엇인지 구분하여 파악한 뒤, 영화 연출을 한다 생각하고 시나리오 기획자와 연계하여 레벨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어떤 형태로 잡을지, 몇 개의 분위기로 구분하여 제작할 것인지 등을 논의하여 레벨을 구성해야 합니다.

2가지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만약 레벨에서 전달하려는 이야기의 주제와 전반적 분위기가 계속 밝다면 레벨 전체를 밝게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레벨의 주제가 무거움에도 전개 과정에선 이것이 드러나지 않다가 마지막에 반전처럼 드러난다면, 드러났을 때의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레벨 전체는 밝게 하다가 무거운 주제가 점차 드러나기 시작하는 부분부터 어두워지기 시작해서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더 어둡게 해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 마비노기 영웅전의 아율른

아율른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를 생각한다면 아율른이 어둡고 음울하고 칙칙한 곳이 되어야 함은 자명한 이야기입니다.

위처럼 카단이 위기에 처하는 중요한 장면이 밝은 장소에서 전개되었다면 극적인 느낌이 떨어졌겠죠?


나. 상황 변화에 따른 변화

  가 항목에서 모든 사건의 분위기를 레벨에 반영할 순 없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런 분위기를 전혀 반영해선 안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분위기 전환이 짧게 이루어진다면 해당 시점에만 잠깐 분위기가 급격히 변하게 만들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화창했던 도시에 갑작스럽게 적이 쳐들어왔다면 이전까지 평화로웠던 도시가 불이 붙어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주변 빛의 색이 주황빛으로 바뀌면서 매연이 화면을 가득 메워야 하는 것이죠.

이것은 즉 레벨의 환경을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이게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것인데, 싱글 플레이 위주의 패키지 게임에서는 무리가 없겠지만 MMO에서는 이것을 구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플레이어마다 이야기 진행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으로, 예를 들어 시나리오 5장에서 산사태가 나서 잘 지나다니던 길을 막으려 한다고 했을 때, 아직 5장을 진행하지 않은 다른 플레이어에겐 뚫려있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5장을 진행한 플레이어는 흙더미 때문에 못 지나가는데 아직 진행하지 않은 플레이어는 흙더미를 뚫고 다니면 몹시 기괴하겠죠.

현재 나와있는 MMORPG들은 이것을 3가지 방법으로 해결한 바 있습니다.(아에 시나리오에서 이런 변화를 주지 않은 경우는 방법으로 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해결한 것이 아니라 문제를 방치한 채로 외면한 것이기 때문이죠.)


1) 인스턴스 던전의 활용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대변되는 인스턴스 던전은 MMORPG 속의 일부 제한된 구역에 싱글 플레이를 넣었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던 MMO의 문제는 모든 플레이어가 1개 월드, 1개 서버/채널을 공유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므로 아에 플레이어 혹은 파티 단위로 월드, 서버/채널을 분리해서 이런 문제를 원천봉쇄해버린 것이죠. 이렇게하면 던전을 함께 진행하는 플레이어끼리는 진행도가 공유되므로 환경 변화를 적용하기 수월하긴 하지만 단점 또한 2가지 정도 생깁니다. 첫째는 던전으로 제작 가능한 상황에 대해서만 사용 가능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있는 오픈 필드에서 전개되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던전으로 만들기 여의치 않겠죠. 인스턴스 던전은 던전 진행에 최적화된 레벨을 제공해야 하는데, 이미 있는 오픈 필드를 이용해서 던전을 만들면 너무 많은 변수가 발생할 겁니다. 두번째는 월드가 개인화되어 MMO 경험을 해친다는 것입니다. 플레이어 간의 접점이 사라진다는 것은 플레이어간 상호작용이 최대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MMO에선 썩 좋은 상황은 아니지요.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검은 바위 용광로 인스턴스 레이드 던전

레이드를 진행하다보면 바닥이 여러번 무너져 내리는데, 일반적으로 오픈 필드라면 이런 연출은 불가능할 겁니다.

뒤에 오는 플레이어와 같은 장소에서 다른 환경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쓰고 버리는' 인스턴스 던전을 씁니다.


2) 위상변화의 활용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리치왕의 분노 확장팩에서부터 선보였고 그후 격전의 아제로스 확장팩에서까지도 꾸준히 사용되고 있는 방식입니다. 필드를 레벨, 서버 모두 부모와 자식 형태의 구조로 만든 뒤, 시나리오 진행도에 따라 플레이어를 다른 자식 레벨, 서버(채널)으로 진입시킵니다. 아마 블리자드에서도 인스턴스 던전을 활용한 방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기존의 단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고안해낸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방법은 인스턴스 던전의 첫번째 단점을 광활한 필드에서도 레벨 변화를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해결했습니다. 하지만 인스턴스 던전의 두번째 단점이었던 월드의 개인화의 경우는 오히려 문제가 더 가중되었는데, 그 이유는 인스턴스 던전에서만 개인화 되었던 월드가 필드에도 적용(비록 같은 진행도를 가진 플레이어끼리는 만날 수 있다곤 하지만)되면서 이제는 던전 뿐만 아니라 필드에서도 다른 플레이어와 접점이 적어지게 된 것이죠. 실제로 오랜 시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즐겨온 해외의 유명 게임 스트리머들의 상당수가 위상변화가 MMO로써의 와우의 재미를 해치고 있어서 없어져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아르칸도르

아르칸도르는 이미지의 나무를 말하는 것으로, 시나리오 퀘스트를 진행함에 따라 씨앗이었던 것이 점점 변화되어 나무가 되어 갑니다.

그러면서 단순히 폐허에 불과했던 곳이 점차 버려진 나이트본 종족의 새 보금자리로 변화해갑니다.

이것으로 극적인 연출은 가능해졌지만 마을을 위상변화 시킴으로써 마을에서도 다른 플레이어를 만나기 쉽지 않아졌습니다.


3) 퀘스트 전용 인스턴스 월드의 활용

  리니지2 레볼루션, 트리 오브 세이비어 등에서 사용했던 방식으로 퀘스트 몇 개 수준의 짧은 순간에만 잠깐 개인용 월드를 분리했다가 퀘스트가 끝나면 다시 원래 오픈 필드로 돌려보내는 방식입니다. 잠깐 썼다가 버리는 개념의 던전인 인스턴스 던전처럼 퀘스트를 위해 잠깐 생성했다가 버린다는 개념이기 때문에 퀘스트 인스턴스 월드라고 부릅니다. 

  이 방법 역시 1번과 2번에 대비해서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뚜렷합니다. 먼저 단점부터 살펴보면 첫번째로 영구적으로 레벨을 변경하는 형태는 아니기 때문에 대규모 환경 변화(없던 마을이 생긴다거나, 점령지가 늘어난다거나)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환경이 변화하는 경우보다는 상황을 연출해야 하는 경우에 쓰이지요. 예를 들면 오픈 필드에서 적과 마주쳐서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 있다고 했을 때, 그런 대치 상황에서는 다른 플레이어가 근처에서 왔다갔다하면 어색해지므로 인스턴스 월드로 빼낸 다음에 연출과 전투를 진행시키고, 모든 것이 종료되면 다시 오픈 필드로 데려오는 것입니다. 두번째 단점은 장점이자 단점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환경 변화를 거의 하지 않는 만큼 전환이 매우 쉬워서 장소에 제약을 받지 않고 전환을 할 수 있지만 전환이 일어날 때 주변에 있던 모든 캐릭터를 한 번에 숨겼다가 다시 보여주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전환처리가 어려워 전환이 어색한 상황이 다수 발생합니다. 인스턴스 던전은 전환되는 지점이 고정적으로 제한되어 있고 어딘가에 들어간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자연스럽고, 위상 변화는 플레이어가 어딘가에 갔다가 돌아올 때 처리하는 등의 눈속임이 가능하지만 퀘스트 인스턴스 월드는 그 자리에서 갑자기 전환시켜야 하기 때문이죠. 세번째 단점은 인스턴스 던전과 위상변화에도 있었던 플레이어 간의 접점이 없어진다는 문제가 매우 심해진다는 것입니다. 전환이 쉽고 짧게 전환되는 만큼 월드를 파티나 시나리오 진행도 단위로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 단위로만 제공할 수 있는데 거기에 전환도 쉽다보니 자주 전환시키게 되어 플레이어가 홀로 있는 공간에 있어야 하는 경우가 앞의 두 방법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아지는 것이죠.

  이번에는 장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는 앞서 단점에서 장점이기도 하다고 언급했듯이 전환하기가 매우 쉽고 전환 시 처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활용도가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시나리오 기획자나 퀘스트 기획자가 할 수 있는 연출의 자유도가 크게 올라가기 때문에 잘만 활용한다면 상당히 고퀄러티의 퀘스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는 영구적인 월드 분리가 아니기 때문에 시나리오 진행도가 다르다고 해서 플레이어 간의 접점이 줄어들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앞서 단점에서 말한 것처럼 지나치게 자주 사용해서 인스턴스 월드에 머무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아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죠. 결국 퀘스트 인스턴스 월드 방식에서 중요한 것은 과유불급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리니지2 레볼루션의 말하는 섬 메인퀘스트

잠깐 인스턴스로 갔다가 돌아올 수 있는 덕분에 마을 한복판에서도 시나리오/레벨 기획자가 원하는 연출이 가능합니다.


  던전 구조인 인스턴스 던전 방식은 차치하고, 만약 필드 방식인 위상변화와 퀘스트 인스턴스 월드 중에 무엇이 옳다고 묻는다면 정답은 '때에 따라 다르다'인 것 같습니다. 위상변화는 영구적으로 분리시켜 버린다는 장점은 있지만, 할 수 있는 레벨 변화의 폭이 크기 때문에 잘 활용할 경우 매우 큰 감동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마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군단 확장팩에서 버려졌던 폐허에 버림받은 나이트본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폐허가 점차 낙원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줬던 것처럼 말이죠. 마찬가지로 퀘스트 인스턴스 월드 역시 너무 잦은 사용을 제한하고 자연스럽게 전환할 수 있는 방법만 고안한다면 MMO에서도 패키지 게임의 싱글플레이 같은 연출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트리 오브 세이비에서 오픈 필드에서 각종 시네마틱을 보여줬던 것과 리니지2 레볼루션에서 오픈 필드에서 각종 인게임 퀘스트 연출을 보여줬던 것처럼 말이죠. 이것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활용할지는 콘텐츠 기획자의 역량에 달려 있습니다. 위의 3가지 방법을 보완할 수 있는 기똥찬 방법이 새로 발견되지 않는다면 말이죠. :-)



4. 마치며

  이번에 무대로써의 레벨에 관한 깨달음과 글을 정리하면서도 다시금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최근 계속해서 게임 질병화 이야기가 나오고 게임에 대한 규제가 거론될 때마다 게임 측에서 주로 반론하는 것 중 하나는 게임이 종합 예술로써의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게임을 만들고 있는 우리, 게임 개발자들은 게임이 그런 가치를 가질 수 있도록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요? 혹은 그런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인지는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동안 단순히 '게임이 이 정도면 됬지 뭘'이라며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게임 개발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개발자들은 내가 만들고 있는 게임이 그저 판매용 상품으로써가 아닌 문화 콘텐츠로써의 가치를 가지도록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고민해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글을 쓴 저 자신도 그 동안 합리화를 해왔던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반성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