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 창고/게임 내러티브

[고찰] 격전의 아제로스 서사의 실패 : 개선 2편

격전의 아제로스 서사의 실패 : 개선 2편

바로크 사울팽

by Dreamrugi


1.  시작하기 전에

  이전 개선 편에서는 실바나스 윈드러너(이하 실바나스)라는 인물을 어떻게 해야 유저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녀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와 가시의 전쟁에 숨겨진 내막을 알게 된 이 시점에 게임이 유저들에게 해야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바로 이 전쟁 뒤에 숨겨진 그녀의 의도를 드러내는 이야기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실질적으로 격전의 아제로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냈어야 했는지 이야기하려 합니다. 이 개선안의 궁극적인 목적은 실바나스가 "호드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외쳤을 때 유저들이 "갑자기 무슨 소리야?"라고 당황해하는 것이 아니라 "드디어 정체를 드러냈구나!"라고 통쾌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많은 유저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던 대사 "호드는 아무것도 아니야! The Horde is nothing!"



2. 계획 세우기

  이전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계획을 세우고 시작하겠습니다. 실바나스 이야기의 경우, 기존 격전의 아제로스에선 그녀를 이해시키려는 시도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퀘스트를 만들었지만, 그녀의 의도를 밝히는 이야기는 시도가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단지 그것이 열매를 맺지 못해 유저들에게 설득력 있게 전해지지 못했죠. 그 시도는 바로 바로크 사울팽(이하 사울팽)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서사 초반부터 실바나스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인물로 그려졌지만, 최후의 막고라에서 운 좋게 그녀의 의도를 밝혀냈던 것(기존 서사에서 그가 그녀의 의도를 알고 있음을 암시하는 그 어떤 단서도 없었기 때문에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을 제외하면 그다지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제대로 된 역할을 부여받지 못한 것은 사울팽 뿐만 아니라 그의 서사에 등장했던 거의 모든 인물, 예를 들면 제칸이나 스랄, 안두인 린(이하 안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들의 이야기와 퀘스트를 개선하는 것으로 실바나스의 의도를 드러내도록 만들어보겠습니다.


ㆍ전달할 이야기 : 가시의 전쟁 뒤에 숨겨진 실바나스 윈드러너의 의도 드러내기

ㆍ이야기 전달 형태 : 퀘스트

ㆍ전달 인물 : 바로크 사울팽


신규 3D 모델과 시네마틱 트레일러 등장까지 했지만 결국 그렇게 눈에 띄는 활약을 하지 못했던 사울팽



3. 사울팽에게 명분 부여하기

  사울팽이 로데론 공성전에서 얼라이언스에게 붙잡혀 스톰윈드 지하감옥에 갇힌 뒤, 안두인의 도움으로 탈출하고 실바나스의 어둠 순찰자에게 쫓기는 부분까지는 문제가 없으므로 유지합니다. 그가 진짜 역할을 해내기 시작하는 시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우리가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그의 명분입니다. 그가 역할을 완수했을 때 유저들이 감동을 하려면 그들이 그의 명분에 동조해야 합니다.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이 없다면 그는 반역자 그 이상은 되지 못하기 때문이죠.


실바나스가 호드를 생각하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내긴 했으나, 아직 우리는 그녀가 죽음과 무슨 거래를 했는지 모르므로 지금까지 찾아낸 증거들을 사울팽의 입장에서 유추하는 형태로 구성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증거는 볼진을 이용해 그녀를 대족장으로 추대하도록 한 존재가 로아가 아니라 죽음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대족장 직위의 정당성을 의심받는 사건이죠. 두 번째는 그녀가 자살을 선택했던 적이 있음에도 2번째 죽음을 뒤로는 죽길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가장 중요한 열쇠 사건으로, 그녀가 군단의 침공 당시에 헬리아와 거래한 뒤, 적을 목전에 두고도 포세이큰의 이익만을 취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다소 억측일 순 있으나 이 모든 증거를 종합하면, 그녀가 자신을 위해 죽음과 거래 했고, 호드를 자신의 생존을 위한 소모품으로 삼고 있다는 가정을 세울 수 있습니다.

이제 사울팽도 우리처럼 생각하도록 만들겠습니다. 그를 설득한다 생각하고 증거들을 하나씩 제공합니다. 그가 납득하는 순간 지켜보고 있는 유저들 역시 납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먼저 제칸의 주선으로 바인 블러드후프(이하 바인)가 사울팽을 찾아옵니다. 그는 볼진에게 속삭인 존재가 로아가 아닌 죽음의 존재임을 밝혀냈죠. 그는 갈수록 심해지는 실바나스의 극단적 행보를 이야기하면서 알아낸 사실을 전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젊은 트롤 제칸은 호드가 실바나스와 죽음의 존재의 손에 놀아나고 있다고 생각하여 분개합니다(감정을 표출하는 역할은 아직 성숙하지 못한 제칸이 담당합니다). 하지만 사울팽은 비록 그게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실바나스가 개입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사울팽은 연륜을 통해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는 역할을 맡기겠습니다). 여기서 잠시 정보 제공을 중단하고 시간이 얼마 지난 뒤 다시 유저들을 호출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를 정보를 너무 연속해서 제공하면 유저들이 혼란스러워할 우려가 있을 뿐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짜놓은 판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있는 곳에 도착하면 이번에는 실바나스의 과거를 조사했던 로르테마르 테론(이하 로르테마르)이 와있습니다. 그는 사울팽에게 그녀가 몇 번의 죽음을 거치면서 복수에서 생존으로 삶의 목적이 변화했으며, 과거 실버문 순찰대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호드를 화살촉처럼 여기고 있을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실바나스가 로데론 공성전에서 호드 일원이 있음에도 역병을 사용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수긍하는 사울팽과 이번에도 분노하는 제칸. 이때 제칸이 죽음을 두려워한 실바나스가 호드를 화살촉으로 사용하기 위해 죽음의 존재와 거래하여 볼진을 이용한 것은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합니다. 지나치게 많이 나간 억측이긴 하나, 아직 성숙하지 못했으며 실바나스에게 순수한 악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제칸이 말한다면 억측이 나온 것이 개연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사울팽과 일행들은 억측이라고 말하면서도 내심 사실이길 바라며 증거가 필요하다 이야기합니다. 이때가 앞서 열쇠라 언급했던 헬리아와의 거래에 관한 증거를 제공할 때입니다. 유저들은 이 장면을 일부 목격한 유일한 목격자입니다. 퀘스트 대화 선택지를 통해 유저가 이 사실을 사울팽에게 제공하고, 이제 이야기는 사울팽이 유저의 이야기가 진짜인지 직접 보고 싶다는 형태로 흘러갑니다. 왜냐하면 유저 말고는 아무도 그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헬하임의 지배자 헬리아. 그녀는 실바나스와 모종의 거래를 했었으며 그 모습을 유저들이 목격했습니다.


그렇다면 그걸 어떻게 보게 해줄 것인지 방법이 중요해지는데, 여기서 그동안 병풍 같이 취급되었던 제칸에게 비중을 실어 주겠습니다. 과거를 봐야하는 경우 보통은 크로미를 활용하지만, 여기서 그러지 않는 이유는 그녀가 너무 만능으로 보여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개연성을 주기 위해서 그녀를 찾아갔지만 죽음의 영역에선 죽음의 존재들의 눈 때문에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부탁을 거절하는 과정을 넣어줍니다. 크로미만 믿고 있었으나 일이 틀어지자 사울팽 일행은 다른 방법을 찾기로 합니다. 그리하여 생각해낸 것이 바로 세계 어디에나 거니는 존재, 정령들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주술사 출신 제칸이 먼저 사울팽에게 헬하임 주변을 거니는 정령들에게 물어보자 제안합니다. 오가는 통로가 있다곤 하지만 죽음의 세계에 거하는 정령들을 불러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대지 고리회 주술사들에게 도움을 구하기로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상처받은 아제로스를 치유하는 일 때문에 부탁을 거절합니다. 행성이 처한 위험에 비하면 전쟁은 작은 일에 불과하며 이들은 중립 세력이므로 정치에 개입해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반드시 이 역할을 할 주술사가 제칸이어야만 하는 개연성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두 번이나 거절당한 사울팽 일행. 구세주가 필요한 이 순간이 바로 제칸이 나설 때입니다. 사울팽은 제칸도 주술사이니 직접 정령과 대화를 시도할 순 없겠느냐고 묻지만 제칸은 몹시 자신 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자신 없는 모습을 초기에 보여줬다가 후에 갈수록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그의 성장 이야기를 완성해보겠습니다. 자, 우리의 제칸은 이제 어쩔 수 없이 사울팽, 유저들과 함께 헬하임으로 가는 입구인 하우스트발드로 갑니다. 어깨가 축 처져 누가 봐도 자신 없는 모습의 제칸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마지못해 정령들에게 요청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잠깐의 정적. 그 결과는 어떻게 되어야 할까요? 물론 실패해야만 합니다. 한 번에 성공한다면 신출내기 트롤 주술사 제칸의 성장 이야기는 없고 그저 원래 강력한 자였다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역시나 자신의 주술사 소질이 형편없음을 한탄하며 의기소침해하는 제칸. 그 모습을 본 사울팽은 아무래도 그에게 스승이 필요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곤 잠시 어디론가 떠났다 올 테니 부를 때까지 조용히 지내라 합니다.


격전의 아제로스에 들어와서 처음 등장한 제칸. 그러나 그는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


이제 유저들은 도대체 사울팽이 제칸의 스승으로 누구를 데리고 올 것인지 너무나 궁금하면서 한편으론 흥분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기존 격전의 아제로스 서사에서 시네마틱 영상까지 제작되며 비중 있을 것처럼 등장했으나, 실제론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던 또 한 명의 인물, 호드의 전 대족장이자 한 때 세계 주술사라고 불리었던 오크, 스랄입니다. 여기까지 유저들에게 이야기가 잘 전달되었다면 이전에는 딱히 복선이 없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그가 등장하는 영상이 공개되었을 때 "역시 스랄이지!"라며 열광했을 것입니다. 스랄은 처음에는 자신은 더는 주술사가 아니라며 거절했다가, 그저 호드를 위해 제칸에게 나아갈 길만 알려달라는 사울팽의 간곡한 부탁에 결국 승낙하게 됩니다. 이후 스랄의 도움으로 제칸이 훌륭한 주술사로 성장하는 짧은 과정을 그려줍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끝나고 마침내 다시 한번 하우스트발드로 가면 이번에는 제칸이 정령들을 불러내는 것에 성공하는 것이죠.

이제 사울팽과 바인은 헬하임에서 실바나스가 헬리아와 나눈 대화의 일부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이때 가시의 전쟁을 통해 실바나스가 이루려 하는 진정한 목적 중 하나가 밝혀줍니다. 바로 수많은 영혼을 보내 굶주린 어둠을 포식시키는 것이죠(격전의 아제로스 대장정 최종장에서 밝혀진 사실입니다). 사울팽 일행은 그녀가 호드를 위해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또 죽음을 위해서 전쟁을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됩니다. 이로써 사울팽은 실바나스를 몰아내야 한다는 명분을 얻었고, 전에는 특별히 어떤 역할이 없었던 제칸과 스랄은 각자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으며, 유저들은 명백히 가시의 전쟁 뒤에 숨겨진 실바나스의 진의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랄이 등장했을 때 그의 역할에 대한 많은 추측이 오갔지만 결과적으로 기존 서사에서 그가 한 일은 전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4. 호드의 분열 보여주기

  자, 드디어 실바나스의 의도를 드러내고 그녀를 대족장 자리에서 끌어내릴 순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많은 유저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그녀가 제2의 가로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둘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들을 따르는 호드에 있습니다. 가로쉬와 그를 따르는 자들은 극단적 종족 차별주의로써 호드를 위하지 않고 오크만을 우선했습니다. 그러나 실바나스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호드를 이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드 일원들은 그녀가 호드를 위하고 있는 것이로 생각하여 그녀를 따르고 있습니다. 즉 명백히 악에 속했기 때문에 단순히 처단하면 되었던 가로쉬와는 다르게 실바나스와 그녀의 추종자들은 그저 처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의도를 드러내고 그녀 추종자들의 마음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잘 전달되느냐에 따라서 이 서사가 줄 수 있는 감동의 크기가 달라질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역시 도구가 필요하겠지요. 제가 선정한 도구는 총 3가지, 사건으로는 바인 구출 작전나즈자타의 등장이며 인물로는 게야라입니다.


게야라. 그녀는 격전의 아제로스에서 새로 합류한 마그하르 오크의 수장이지만 스랄이나 제칸과 마찬가지로 어떤 중요한 역할이 없이 버려진 인물입니다. 특이한 점은 바인이 잡혀갔을 때 대부분의 수장이 실바나스가 지나치다고 이야기를 했던 반면, 게야라는 실바나스가 대족장다운 면모를 보였다며 칭찬합니다. 이 성격을 최대한 활용해서 바인 구출 작전과 엮어 보겠습니다. 이야기는 바인이 데렉 프라우드무어(이하 데렉)를 풀어준 죄로 투옥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를 구출하기 위해 사울팽이 유저들, 스랄과 함께 오그리마 지하로 들어가며, 이 와중에 얼라이언스를 만나 함께 행동하는 것까지는 동일합니다. 이제 바인을 찾아 그를 해방하기 위한 전투를 진행하는 부분에서 2가지 변경점을 만들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게야라의 등장입니다. 그녀를 등장시킴으로써 실바나스가 극단적이긴 해도 실바나스의 행동은 호드를 위한 것이라는 가치관을 대변하게 만들겠습니다. 두 번째는 제이나 프라우드무어(이하 제이나)의 마법으로 호드 유저들을 변장시키는 것입니다. 게야라가 호드 유저의 반역을 목격한다면 이후의 많은 사건이 뒤틀리게 되므로 알아보지 못한 것으로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 이제 주요 인물 셋이 대면했습니다. 서로 평행 세계의 다른 자신인 스랄과 게야라 그리고 사울팽이죠. 게야라는 소문으로만 들었던 초대 대족장이 반역자뿐만 아니라 얼라이언스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하며 격분합니다. 이때 가장 먼저 게야라를 말리는 것은 또 다른 자신인 스랄입니다. 그는 호드가 원래 돼야 했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하며 게야라가 맞이한 호드는 진정한 호드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게야라는 설득되지 않습니다. 그녀가 처음 경험한 호드는 이전의 명예 호드가 아닌 현재 실바나스의 호드이며, 그녀가 보기엔 극단적이긴 해도 호드에 승리를 가져오려 하는 실바나스보다 적과 손을 잡고 반역자를 풀어주려 하는 스랄과 사울팽이 더 나빠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대화는 결렬되고 전투가 벌어집니다. 결국 바인은 구출되고 아직 이 중 누구도 죽음을 맞이하진 않습니다만, 이 사건을 통해서 유저는 실바나스를 따르는 호드가 나쁜 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며, 그들도 호드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게야라를 통해 알게 됩니다.


스랄의 평행 세계 자신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많은 추측을 모았으나 역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던 게야라


다음은 나즈자타입니다. 바인 구출 중 게야라와의 충돌이 맛보기였다면, 이번에는 위기 수준의 충돌을 보여줄 것입니다. 기존 격전의 아제로스와 동일하게 실바나스가 호드 함대에게 자살이나 다름없는 작전을 실행하도록 합니다. 바로 소규모 함대로 얼라이언스 함대를 유인하는 것이죠. 물론 실바나스가 호드를 희생시키면서까지 나즈나타 사건을 벌이려 한다는 것은 나타노스 블라이트콜러(이하 나타노스)를 제외하면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변경점을 하나 줍니다. 바로 그녀의 진의를 사울팽 일행이 추측하고 있다는 것이죠. 함대 수가 압도적으로 적음에도 불구하고 호드가 출격하려는 모습을 본 그는, 전투가 벌어지면 패배할 것이 뻔한 자살 행위를 무리하게 추진하는 모습을 보며, 실바나스가 호드를 희생해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사울팽 일행과 유저는 출항 전날 밤 줄다자르로 가서 호드 선원들에게 출항해선 안 된다고 경고하기로 합니다. 유저는 출항 대상자로서 숙소에서 대기하기로 하지요. 그리고 마침내 선원들이 머문 숙소에 사울팽과 스랄이 나타나자 호드 선원들을 동요합니다. 그를 반기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배반자가 여기가 어디라고 나타났냐며 욕하는 이도 있음을 보여주어 호드가 분열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울팽과 스랄의 호소. 그러나 호소가 끝날 때 즈음에 익숙한 목소리가 숙소 안으로 들어옵니다. 바로 게야라입니다. 그녀는 사울팽은 얼라이언스와 손을 잡고 호드 일원을 죽여 반역자 바인을 풀어준 배반자라며 그의 말은 들을 가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점차 게야라의 말에 동조하는 호드 선원들. 게야라는 분위기가 역전되자 배반자를 처단하라 지시합니다. 전투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제칸. 그러나 스랄은 이들도 모두 호드의 자녀들이라며 죽여선 안 된다고 합니다. 일촉즉발의 긴장의 상황, 유저도 입장 때문에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작스럽게 연막탄이 터집니다. 바로 SI:7의 단장 마티아스 쇼(이하 마티아스)가 등장하여 이들을 구출한 것입니다. 안두인 린(이하 안두인)이 사울팽이 죽지 않도록 지켜보라 지시했던 것이죠. 그렇게 설득은 실패로 돌아가고 호드는 나즈자타에 떨어지게 되며, 사울팽은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이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크게 한탄합니다.


나즈자타는 나가의 습격 뿐만이 아니라 사울팽의 첫번째 실패로도 기억될 것입니다.



5. 실바나스의 의도 드러내기

  이 시점이 오면 이제 호드와 얼라이언스가 연합하여 아즈샤라를 공격하기 전에 두 진영이 연합할 수 있도록 실바나스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 부분을 기존 서사의 큰 틀을 유지하는 선에서 사울팽의 죽음을 이용하여 개선해보겠습니다. 여기서 제가 의도하는 것은 4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4번 항목에서 판을 깔아줬던 호드의 분열을 더 절정에 이르게 하여 막고라 시네마틱 트레일러에서 오그리마에 있는 이들을 보고 "저들도 호드라네"라는 대사를 했을 때 지금보다 더 깊이 심금을 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막고라에서 너무나도 볼품없이 허무하게 사망한 사울팽의 죽음을 더 극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실바나스가 사울팽을 죽음의 힘으로 쓰러뜨렸을 때 개연성이 느껴질 수 있도록 그녀의 힘을 조명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그녀가 목적을 위해선 그 어떤 것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줄 수 있도록 그녀의 비열함을 조명하는 것입니다. 자 그럼 하나씩 풀어나가 보겠습니다.

얼라이언스 일부 수장은 비밀리에 실바나스를 암살하기로 합니다. 이를 위한 도구로는 그녀에게 가장 큰 원한을 가지고 있는 말퓨리온 스톰레이지(이하 말퓨리온), 티란데 위스퍼윈드(이하 티란데) 그리고 겐 그레이메인(이하 겐)과 이들이 한창 포세이큰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어둠해안을 무대로 사용해보겠습니다. 발단은 이들에게 알레리아 윈드러너(이하 알레리아)가 접근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동생의 극단적 행보를 더는 지켜볼 수 없었던 알레리아는, 친언니인 자신이 나서서 일을 해결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알레리아는 실바나스의 의도를 알고 있다는 것을 미끼로 삼아 그녀를 어둠해안으로 유인하여 습격할 계획을 세우고는 국왕 안두인의 동의를 얻으러 갑니다. 그러나 안두인은 허가하지 않습니다. 이미 사울팽 일행의 목적을 알고 있는 안두인은, 이 작전이 성공하여 혹시라도 실바나스가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한 대족장이 되기라도 한다면 그녀를 따르던 무리가 극렬히 들고 일어서 평화는 더 요원해질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미 안두인의 미온적 행보에 불만을 품어왔던 티란데는 알레리아를 설득하여 안두인 몰래 일을 진행하기로 합니다. 그들의 호출을 받고 코르크론들과 함께 어둠해안으로 향하는 실바나스. 이 소식을 사울팽과 안두인 역시 접하고 각 진영의 유저들과 함께 서둘러 현장으로 출발합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실바나스 일행이 포위되어 습격이 시작되기 직전의 상황으로 설정합니다. 이렇게 하면 긴장감을 극에 달해있을 것입니다.

이제 이 시점부터 전개가 매우 중요합니다. 먼저 코르크론들이 실바나스에게 자신들이 적을 저지할 테니 그 틈에 빠져나가라고 합니다. 실바나스는 건성으로 충성심을 칭찬하는 듯하며 서둘러 빠져나갑니다. 이때 사울팽이 나서서 그녀를 위해 목숨을 버리지 말라며 코르크론을 설득합니다. 한때 자신들의 대장이었던 사울팽의 등장으로 동요하는 코르크론. 그러나 그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대족장을 지키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이며, 실바나스는 자신들이 지켜야 할 대족장이라 말하며 사울팽의 설득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코르크론을 향해 달려드는 겐과 늑대인간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휘잉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코르크론과 늑대인간들에게 역병통이 떨어집니다. 실바나스가 습격을 예상하고 반격을 준비해놓은 것이죠. 그 장면을 보고 경악하는 일행. 특히 사울팽은 실바나스가 이번에도 호드를 기꺼이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사실에 분노를 터트립니다. 여기까지 내용으로 실바나스를 따르는 호드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조명하면서 그녀가 승리를 위해 얼마나 잔학하고 비열한 일을 벌이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조명합니다. 또한 사울팽의 두 번째 실패가 되겠지요.

이어서 도주한 실바나스를 추격하는 유저 일행은 그녀가 티란데와 대적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밤 전사가 되어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티란데에게 대등하게 맞서는 실바나스. 일행은 그 장면을 보고 그녀가 전과 달리 어떤 막강한 힘을 손에 넣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를 통해 추후 실바나스가 사울팽을 죽음의 힘으로 쓰러뜨렸을 때의 개연성을 강화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겐을 구하고 뒤늦게 합류한 말퓨리온이 드루이드의 힘을 부리자 당황한 실바나스가 서둘러 그 자리를 회피하여 도주합니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가시의 전쟁 초반에 실바나스가 말퓨리온에게 당하고 있었던 것을 기억해내는 사울팽은 그녀의 힘에 약점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얼라이언스는 안두인의 명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인한 또 하나의 불화의 씨앗을 남기면서 습격 사건은 일단락됩니다.


복수를 위해 밤 전사가 된 티란데. 그녀 역시 이렇다 할 역할이 없었므로 실바나스의 힘을 보여주는 역할을 맡겼습니다.


이제 최종장만이 남았습니다. 사울팽이 실바나스의 의도를 드러내는 부분이지요. 이 사건을 진행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사울팽이 실바나스가 가진 미지의 힘에 어떻게 대항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한 포석을 앞선 사건에서 만들었습니다. 바로 죽음과 상반되는 힘인 자연의 힘을 다루는 자, 말퓨리온입니다. 그의 도움을 얻어 실바나스의 힘을 제한하는 형태로 사울팽의 막고라 사건을 재구성해보겠습니다. 게야라와 관련된 사건들로 사울팽은 말만으로는 호드를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론 내립니다. 조금 더 대담하고 강단한 방안이 필요한 것이죠. 바로 오그리마 앞으로 나아가 실바나스에게 막고라를 신청하는 것입니다. 사울팽이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을 폭로하며 성공적으로 실바나스의 심신을 흔들어 궁지에 몰아넣는다면, 모두가 지켜본다고 해도 죽지 않기 위해 비열한 본색을 드러낼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팽의 결심을 말리는 스랄과 제칸. 강대한 힘을 휘두르는 그녀를 몰아넣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가능하다 할 지라도 자살 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안두인이 말퓨리온으로부터 받은 씨앗 하나를 사울팽에게 건넵니다. 자연의 힘이 담긴 이 씨앗은 사울팽의 도끼를 아름답게 휘감는데, 이것이 그녀의 죽음의 힘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되는 막고라. 사울팽이라는 전사의 마지막을 명예롭게 장식해줄 수 있도록 시네마틱 영상에 2가지 변경점을 주겠습니다. 첫 번째는 분열된 호드의 모습입니다. 막고라 초기에 오그리마 성벽 앞으로 사울팽이 걸어올 때 오그리마 호드들의 아유를 보여줍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열심히 깔아왔던 호드의 분열이라는 초석이 열매를 맺는 장면입니다. 두 번째는 실바나스와 사울팽의 막고라 전개입니다. 전투가 시작된 후, 처음에는 실바나스가 죽음의 힘으로 사울팽을 압도적으로 몰아붙이다가, 말퓨리온에게 받은 힘이 빛을 발하며 실바나스의 죽음의 힘이 약해지면서 그녀가 당황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후 사울팽이 그녀의 실체를 낱낱이 고발하면서 전투도 압도적으로 몰아붙이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여기까지 유저들은 실바나스가 가진 죽음의 힘의 강력함을 다시 한번 깨달으면서 빨리 말퓨리온의 힘이 빛을 발하기를 기다리는 조바심에 빠졌다가, 전세가 역전되고 실체가 고발되기 시작하면 상당한 통쾌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마침내 실바나스가 "호드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대사를 하게 되고, 사울팽이 성공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달려들려는 찰나에 어디선가 날아든 화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던 나타노스가 쏜 이 화살에 사울팽의 도끼에 부여된 씨앗이 파괴되고 이 틈을 노린 실바나스가 그간 분노를 터트리며 죽음의 힘으로 사울팽을 죽입니다. 그리고 기존과 같은 형태의 마무리. 이렇게 하면 실바나스의 비열함과 명예라곤 조금도 상관하지 않는 성향이 한층 더 조명됨과 동시에 사울팽의 패배가 "원래라면 지지 않았을 텐데 비열한 수법 때문에 진 것이다"라는 것이 되면서 진한 안타까움과 그의 전사로서의 명예가 지켜지게 됩니다. 그저 아무것도 대처하지 못하고 운 좋게 실체를 밝혔다가 능력에서 밀려 맥없이 당한 것으로 보였던 기존과는 다르게 말이죠.


사울팽의 고뇌와 노력, 실패 그리고 희생까지 목격한 뒤라면 사울팽의 장례가 더 뜻 깊게 다가왔을 것입니다.



4. 마무리하며

  격전의 아제로스에서는 이후부터 느조스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사실 느조스와 아제로스의 심장 스토리도 문제가 많지만 거기까지 들여다보았다가는 격전의 아제로스 전체를 건드려야 하므로 여기에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전체적으로 봤을 때 격전의 아제로스 서사 실패의 핵심은 스토리텔링의 실패라고 생각합니다. 블리자드가 내부적으로 개연성을 잘 맞췄다고 생각하고 전개했을지 몰라도, 그들이 생각한 것들은 설득력 있고 없고를 논하기 이전에 유저들에게 전달되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유저들의 입장에서는 서사의 중간 과정의 대부분을 건너뛰고 결말만 맞이하게 된 셈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사학 강의에서 서사 Narrative는 말한다라는 뜻 뿐만 아니라 이해한다라는 뜻에서도 파생된 것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전달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가 잘 전달되어 이해되고 있는지를 신경 써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