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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창고/게임 내러티브

[연구] 사건의 표현

사건의 표현

 by Dreamrugi

 

1. 시작하기 전에

  프로젝트N에서 시나리오와 퀘스트를 기획할 일이 생기고, 또 최근에 서사학을 공부하면서 깨달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어쩌면 시나리오가 '게임에 적합하게 제작되었느냐'를 판단할 수 있을 사실이었죠. 서사가 어떤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하건 간에 그것은 서사를 구성하고 있는 '사건'으로 되어 있을 것이며 콘텐츠 소비자는 그 사건(또는 사건에 포함된 인물, 사실 등)을 통해서 이야기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것은 다르게 생각하면 사건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표현(혹은 전달)하는 방법도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표현되지 않으면 전달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사건을 전달하기 위한 표현 방식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전통적인 서사 매체들에서 사용한 방식부터 살펴보고 그 다음에 그 방식들을 게임에 어떻게 반영하면 좋을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드래곤즈 크라운

최근 즐기고 있는 게임, 드래곤즈 크라운입니다. 이 게임 역시 '드래곤즈 크라운을 찾기 위해 국왕이 실종되었다'라는 중대한 사건을 비롯하여 다양한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등장합니다.

 

 

2. 사건의 표현

  서사는 일관성을 가진 사건의 연속, 집합이라고 했던 바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서사를 전달하는 많은 콘텐츠들이 다양한 사건들을 구성, 조합하여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전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건 중에는 사건 그 자체가 직접 표현되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간접적으로 표현되거나 아에 표현되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는 것이죠. 어떤 표현법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지는 정해진 답이 없습니다. 서사를 구성, 연출하는 사람이 무엇을 의도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인물의 감정을 강력히 어필하는 것이 의도라면 묘사나 화면 등에 직접적으로 표현, 노출하여 인물을 드러내는 것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연출자가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이 의도라면 간접 표현이 더 적절할 수 있습니다. 살인마가 벌써 3명을 살해했고 앞으로도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했을 때, 살해 장면을 3번 보여주고 유유히 떠나는 살인자를 보여줄 수도 있지만, 뉴스 등으로 3명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범인이 아직 붙잡히지 않았다고 표현할 수도 있는 것이죠. 또한 과거의 사건이지만 의도에 의해 직접 표현되거나 반대로 현재의 사건이지만 간접적으로 표현하거나 아에 숨길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소 어렵고 이해가 잘 안 갈 수도 있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 가장 대표적인 문화 콘텐츠인 소설과 영화를 하나씩 살펴보면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먼저 소설을 살펴보고 영화를 살펴볼텐데 순서를 이렇게 잡은 이유는 매체의 발달 과정을 봤을 때 가장 먼저 글이 발달했고 그것을 기반으로 영화가 탄생했으며, 다음으로 게임이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가. 소설에서의 표현 : 반지의 제왕

  먼저 소설의 예제로 J.R.R 톨킨의 유명 판타지 소설. '반지의 제왕'을 살펴보려 합니다. 직접, 간접, 숨겨진 사건은 어떤 것들이 있고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사는 어떤 주제를 사건의 묶음으로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기본적으로 반지의 제왕은 '반지 원정대'의 인물들이 절대악인 사우론에게 대항하며 겪으며 인물들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반지나 전쟁과 같은 것들은 그를 위한 소재라고 볼 수 있지요. 이 사실을 머리에 잘 각인해두고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직접 표현 사건의 경우, 반지 원정대의 일원들이 서사가 전개되면서 직접적으로 겪게 되는 사건들을 떠올리면 됩니다. 소설의 주제가 원정대원들이 다양한 사건을 겪으며 변화하고 역경을 이겨내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기 때문에 그들과 관련된 사건들은 직접적으로 노출, 표현하여 사건의 경과 과정이나 결과 및 거기에 휩싸인 인물들의 성장을 자세히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죠. 이때문에 실질적으로 독자가 소설의 재미를 직접적으로 느끼게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시간의 순서대로 나열해보자면 원정대의 핵심인물인 프로도가 반지를 얻게 되는 빌보의 생일잔치, 서로 미워하던 요정 출신 레골라스와 난쟁이 출신 김리가 친구로써의 우정을 돈독히 다지게 되는 헬름협곡 전투, 아라고른이 부정해오던 자신의 혈통을 인정하고 왕위에 오르게 되는 미나스 티리스 전투 등, 계속 나열하자면 끝도 없이 나열할 수 있을 정도로 많습니다. 만약 이런 사건들이 직접 노출되어 표현되지 않고 간접적으로 표현되었다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빌보의 생일잔치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간달프가 누군가에게 "반지는 빌보의 생일 잔치에서 프로도가 전달받았네"라고만 간접적으로 언급했다면 어떨까요? 아마 전달력이 몹시 떨어졌을 것이며 그 과정에서 빌보가 힘겹게 반지를 놓는 장면이 모두 전달되지 못해서 빌보라는 인물에 대한 몰입이 크게 떨어졌을 겁니다. 또한 프로도가 짊어진 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가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겠지요!

  다음으로 간접 표현 사건의 경우는 독자들에게 초점화되어 직접 목격되지는 않지만 그 외 각종 전달 수단을 통해서 독자가 초점화한 시점에 전달되는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자꾸 초점화라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초점화라는 것은 쉽게 말해서 '지금 독자가 누구의 시선으로 사건을 보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됩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프로도를 따라다니며 사건을 보고 있다면 프로도에게 초점화 되어 있는 것이죠. 그럼에도 어렵게 느껴질 수 있으므로 빠르게 예시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소설에서 살펴보면 빌보가 반지를 얻게 된 경위를 프로도에게 '설명'해주는 부분과 아라고른이 늪지에서 프로도에게 베렌과 루시엔의 전설을 '이야기'해주는 부분, 간달프가 가운데땅의 북부에도 전쟁이 찾아왔다고 '이야기'하는 부분 등이 있습니다. 이때 빌보의 반지 획득 사건과 베렌과 루시엔에 관한 사건, 가운데땅 북부의 전쟁은 독자가 초점화 되어 있는 인물에 의해 '목격된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전달'되고 있죠. 이렇게 직접 목격, 노출, 표현되지 않고 간접적으로 전달되는 것들이 바로 간접 표현 사건인 것입니다.

 

※ 빌보의 생일파티(상)와 빌보와 골룸의 만남(하)

빌보의 생일파티는 원정대의 핵심이 프로도에게 반지가 주어지는 주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직접 표현되었습니다만, 빌보가 골룸에게 반지를 강탈한 사건은 프로도에게 직접 연관이 있는 사건은 아닙니다. 그 사건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골룸이라는 인물과 엮이게 된다는 것이 중요하죠.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사건을 직접 표현하고 또 간접 표현하는 것일까요? 바로 이 기준을 알아보기 위해서 직접 표현 사건에서 주제를 살펴본 것입니다. 반지의 제왕의 주제는 반지 원정대가 역경을 이겨내며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빌보와 베렌과 루시엔은 반지 원정대일까요? 북부의 전쟁은 원정대가 겪은 사건일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빌보는 프로도에게 반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을 뿐이며 베렌과 루시엔은 먼 과거의 인물로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는 반지가 존재하지도 않았죠. 북부의 전쟁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건이지만 반지 원정대의 여정에 어떤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진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소설의 주제와는 직접적으로 연관성이 없거나 있더라도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건들이 왜 굳이 간접적으로 표현되고 있을까요? 주제와 직접 연관이 없으니 표현할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닐까요? 제가 판단하는 간접 표현 사건의 존재 의의는 바로 '주제를 보충해준다'라는 것입니다. 간접 표현 사건들이 시사, 의미하는 바를 통해서 주제에 대한 몰입을 더 보강해준다는 것이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사, 의미'입니다. 서사를 구성하는 사람은 독자가 간접 표현 사건 자체를 자세히 알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주제에 연관짓기를 바라는 것이죠.

앞서 말했던 3가지 간접 표현 사건으로 더 자세히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빌보가 반지를 얻게 되는 사건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골룸'의 존재입니다. 앞으로 프로도의 여행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될 이 기묘한 동행자에 대해 미리 언급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따라서 이 간접 사건의 초점은 빌보가 반지를 얻었다는 것이 아니라 골룸이 가지고 있던 반지를 훔쳤으며 그로 인해 골룸의 원한을 샀다는 것에 있습니다. 두번째로 베렌과 루시엔의 이야기의 경우는 인간인 베렌과 요정 루시엔이 고난 끝에 사랑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로 아라고른과 아르웬의 관계와 유사합니다. 즉, 아라고른이 아르웬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유사한 사건을 끌어 들였다는 것이죠. 따라서 아라고른도 프로도에게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줄 때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고 인간과 요정의 사랑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해줍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아라고른과 아르웬의 관계에 더 깊게 몰입하게 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북부의 전쟁에 대한 언급은 세계관을 확장하는 역할을 합니다. 사우론이 가운데땅을 위협하고 있는 것은 원정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가운데당 전체에 해당하는 매우 거대한 위협입니다. 하지만 직접 표현 사건에만 매몰되어 있다 보면 독자들이 거기에만 갇혀있을 수 있어 사우론의 위협을 너무 작게 판단할 수도 있지요. 때문에 북부에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언급하여 그의 위협을 더 거대한 것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숨겨진 사건을 간단히 살펴 보겠습니다. 이 사건의 경우 독자에게는 어떤 형태로도 전달되지는 않지만 서사 세계의 근간을 이루도록 하면서 사건의 발단을 제공하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자가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기저에 깔려 있는 이 풍부한 소재들은 독자에게 전달되는 사건들에 다양성을 부여하며 더읽기(비어있는 틈에 대한 무궁한 상상)를 할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하므로 표현되지 않는다고 하여 절대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순 없습니다. 이 소설에서 숨겨진 사건들이라고 하면 사우론의 기원, 요정들이 서쪽으로 떠나는 자세한 사정, 태양 제 1~2시대의 전쟁 등이 있습니다.

 

나. 영화에서의 표현 : 해리포터

  이번에는 영상물인 영화를 살펴보기 위해 '해리포터'를 살펴보려 합니다. 영화 역시 그 출발은 소설과 같은 글의 매체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표현 방법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소설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화도 이 서사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봐야만 합니다. 이 영화는 '해리포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목적으로, 그의 마법사로써의 성장과 철천지 원수 '볼드모트'와의 관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명심하고 반지의 제왕에서 그랬던 것처럼 직접, 간접, 숨겨진 사건을 살펴보고, 특히 소설과 달리 영상으로 구성된 이 매체에선 이것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직접 표현 사건은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입학, 비밀의 방의 발견, 볼드모트의 부활 등 쉽게 알 수 있는 것들이며, 반지의 제왕에서의 직접 표현 사건들처럼 이 영화의 직접 표현 사건들도 영화의 주제인 '해리포터'라는 인물의 성장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소설에서는 초점화 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것이 영화라는 영상 매체로 넘어오면서 단순히 초점화 된 시선으로 본다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로 보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뜯어보면 초점화 된 시선이나 카메라가 보고 있는 것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주체가 '카메라, 영상'이 되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설에선 초점화 된 시선이 보고 있는 것을 필요한 것만 글로 묘사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젠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것과 같은 실제적으로 움직이는 영상이 되었으므로 장면 자체가 진짜 현실인 것처럼 보이도록 하면서도 보여주고자 하는 것에 집중시킬 수 있어야 하게 된 것이죠. 이런 변화가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게임에서의 직접 표현에서 언급할 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반지의 제왕 소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직접 표현 방법을 사용했는데, 바로 중요한 과거의 사건을 직접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영화의 시점으로는 머나먼 과거의 사건이기 때문에 시간 개념 상 직접 볼 수 없는 것이지만, 서사학 강의 책에서 서사라는 것은 시간을 역행하거나 시간의 길이를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의도적으로 시점을 과거로 돌려서 중요한 사건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죠. 좋은 예시로 해리포터가 갓난 아기였던 시절을 들 수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걸었던 보호 마법과 볼드모트의 손길로 인해 해리에게 흉터가 남은 사건은 해리포터 시리즈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에 해당합니다. 이때문에 단순히 누군가의 입에 의해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회상하는 듯한 실제 장면을 보여주어 직접 표현했습니다. 그 외에는 스네이프 교수의 기억을 통해 그와 해리포터의 어머니 사이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장면을 들 수 있는데, 이 역시 스네이프라는 인물에의 몰입을 강화하기 위해 과거의 사건임에도 직접 표현되었습니다.

 

※ 해리포터 : 마법사의 돌

해리포터가 어린 아이던 시절에 흉터를 얻게 되는 사건은 상당한 과거의 사건이지만 그럼에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직접 표현되었습니다.

 

  간접 표현 사건 역시 소설과 마찬가지로 주제를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는 사건들을 의미하며 그 사건이 시사하는 바를 전달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해리포터의 아버지와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제 3자들의 대화를 통해 듣게 되거나 시리우스 블랙의 탈옥을 신문을 통해 접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간접 표현 사건을 주제를 보충하여 몰입을 강화하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해리포터에서는 제 3자들의 대화를 통해 듣게 되는 해리포터 아버지의 이야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아버지를 배신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 대한 분노를 가지게 되는 해리포터를 묘사하기 위한 것이죠. 여기서는 또 한 가지,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해 간접 표현으로 구성하는 경우를 보고자 합니다. 바로 시리우스 블랙의 탈옥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시리우스 블랙의 탈옥 과정 자체는 해리포터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탈옥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죠. 영화에서는 시리우스 블랙이 탈옥했고 아직 붙잡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로 간접 표현합니다. 그러면서 그가 점차 호그와트로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죠. 이 모든 것은 결과적으로 그가 탈옥한 시점부터 해리포터와 만나게 되는 시점까지 '시리우스 블랙이 숨어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라는 호기심과 서스팬스적인 재미를 이끌어 냅니다. 이글 2번 항목의 초반에 살인마에 대해 언급했던 것과 같은 효과인 것이죠. 탈옥한 시리우스 블랙의 여정을 그에게 초점화하여 보여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했다면 주제가 해리포터가 아닌 시리우스 블랙으로 확 쏠렸을 것 뿐만이 아니라 그에 대한 신비감이나 호기심 역시 떨어졌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숨겨진 사건입니다. 영화에서는 직, 간접적으로 알려주지 않았던, 궁금한 모든 것을 나열해보면 됩니다. 이를테면 마법사들이 언제부터, 왜 숨어살게 된 것인지라거나 호그와트 설립자들의 만남이나 설립 과정에 대한 것들입니다. 이 사건들이 모두 해리포터 이야기의 다양성이나 개성을 만들어주는 기반 설정이지만 해리포터의 성장 이야기와는 관련이 없기 때문에 표현되지 않은 것입니다.

 

※ 해리포터 : 아즈카반의 죄수

시리우스 블랙의 탈옥은 직접 표현해도 될만한 중요한 사건이지만, 호기심 유발을 위하여 의도적으로 간접 표현되었습니다.

또한 사실 시리우스 블랙의 탈옥 경과 자체도 직접 표현할만한 중요한 내용이 아닙니다. 그가 탈옥했다는 사실이 중요하죠.

 

 

3. 게임에서의 사건 표현

  게임에서의 사건 표현은 소설에서 영화로 갔을 때 보여지는 모든 영상 장면을 고려해야 되었던 것처럼 고려해야 할 것이 또 하나가 추가됩니다. 글로만 되어 있던 것이 영상이 되면서 영화라는 매체의 장점이자 정체성이 확립되었던 것처럼 게임에서의 추가 요소가 역시 게임 매체의 장점이자 정체성으로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것은 바로 상호작용에 의한 '게임플레이'입니다. 이 앞의 두 매체가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던 것과는 달리 게임은 그 근본적인 목적이 게임플레이에 있습니다. 게임을 이야기를 보기 위해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조차도 게임플레이가 재미있지 않으면 중간에 이탈하기 마련입니다. 이렇듯 이전의 고찰 글인 RPG에 관한 고찰에서 배경이든 일거리든 게임에서는 모든 것들이 게임플레이를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언급했던 것처럼 게임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사건 역시 그래야 합니다. 그렇다고 했을 때, 게임에서 직접, 간접, 숨겨진 사건들은 어떤 형태로 나타나야 할까요?

 

 

  먼저 직접 표현 사건의 경우는 게임플레이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매우 중요한 표현 방식입니다. 소설의 직접 표현은 '독자'가 ''로써 '묘사'되고 있는 것을 읽는 것이고 영화는 '시청자'가 '카메라'를 통해 '목격'하고 있는 것이었다면,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게임플레이'를 통해 '경험'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콘텐츠의 제공 형태는 글에서 영상을 거쳐 게임플레이로 진화했고, 콘텐츠 소비자는 독자에서 시청자를 거쳐 플레이어로 변화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게임에서의 제공 형태가 글이나 영상에 머물러 있다면 진화된 소비자의 유형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겠지요. 

예를 들어 진영 간의 전투가 벌어진 사건이 있다고 했을 때, 플레이어가 직접 참전하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게 구성되었다면 게임에 적합한 표현 방식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인물의 감정 변화를 전달한다고 했을 때 이를 텍스트(이를테면 퀘스트 대사)로만 전달한다면 글로 묘사하는 소설과 다를 것 없기 때문에 이것 역시 적합하다고 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게임플레이라고 하면 게임 매체의 특징인 상호작용이 있어야 하므로 서사의 분기를 만들지 않더라도 대화 선택지를 제공해서 상호작용한다는 느낌을 줘야 하는 것이죠.

  직접 표현 사건이 게임플레이로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앞의 두 매체가 했던 것처럼 서사의 주제에 맞는 사건들을 직접 표현으로, 게임플레이가 가능한 형태로 구성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플레이어를 다른 인물로 변화시켜서 플레이(예를 들어 마비노기의 RP던전)하는 것도 고려해야 하죠. WItcher 3를 예로 들면 거의 모든 주요 사건들은 게롤트가 개입하도록 구성되어 플레이어가 게임플레이를 통해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인물 간의 대화는 대화 선택지를 제공하여 그에 따른 변화가 있도록 구성했죠. 또한 시리에 대한 몰입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시리를 플레이할 수 있게 구성했습니다.

 

※ 위쳐3 : 와일드 헌트의 시리

위쳐3의 핵심 주인공은 게롤트이지만, 플레이어가 시리에게 초점화되어야 하는 경우에는 시리를 플레이할 수 있게 구성했습니다.

 

  다음은 간접 표현 사건입니다. 이 경우 게임플레이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게임에 맞는 다양한 형태로 플레이어에게 전달됩니다. 이때  '의도적으로 강제로 표현되느냐'와 '플레이어의 선택에 의해 선택적으로 표현되느냐'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전자의 경우는 영화나 소설과 같은 경우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완전한 일방향성으로 진행되는 영화와 소설은 독자 혹은 시청자가 간접 표현을 볼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할 수 없으며 콘텐츠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적절한 시점에 제공됩니다. 앞서 영화의 예시에서 시리우스 블랙의 탈옥 신문기사를 예로 들면 카메라가 의도적으로 신문을 포커스하여 비췄다가 지나가는 식인 것이죠. 게임의 경우는 게임 진행 도중 대화, 컷신 등을 통하여 강제로 보여주고 지나가는 형태를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다른 글에서 언급한 바 있었던 곁콘텐츠와 같은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신 항상 제공되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게임의 메인 시나리오 진행도에 따라 제공되는 것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다음에 설명한 숨겨진 사건들 때문입니다. 곁콘텐츠로 제공되는 간접 표현 사건의 경우 강제성은 없지만 콘텐츠 소비자가 더 깊게 알기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찾아서 사건을 보충할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은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다른 매체들에서는 사실상 사용할 수 없는 방법으로, 잘만 활용하면 게임만의 플레이어블한 서사 재미를 만들 수 있습니다. 페르소나5 게임을 예로 든다면 시나리오 진행에 따라 마을 곳곳의 NPC들과 상호작용하여 들을 수 있는 대화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플레이어가 의지를 가지고 NPC들과 대화를 한다면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냥 지나칠 것들이지요.

 

  마지막으로 숨겨진 사건입니다. 숨겨진 사건의 경우는 핵심 주제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쭉 전개해야 하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콘텐츠 소비자에게 전달했다가 이야기의 흐름이 중구난방해지기 때문에 말그대로 숨겨버리는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게임의 경우는 다릅니다. 제공되는 이야기만 보고 끝내야 하는 기존 매체들과 다르게 게임 콘텐츠를 소비하는 소비자는 조금 더 많은 플레이어블한 요소를 원하고 더 많은 더읽기거리를 원합니다. 또한 영화나 소설에 비해서 시리즈화나 세계관 확장이 많은 콘텐츠이죠. 이런 이유로 숨겨진 사건들이 더 이상 숨어있지 않고 '제공되기 시작'합니다. 대신 이 사건들이 너무 표면적으로 드러나게 되면 게임의 메인 시나리오가 중구난방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노출되지 않고 보조적인 콘텐츠 형태로 제공됩니다.

예를 들어 God of War 4의 경우, 고대 벽화를 통해서 북유럽 신화의 주요 사건들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들은 게임의 핵심 주제인 크레토스와 아트레우스의 이야기에는 연관이 없기 때문에 말 그대로 '숨겨진 사건'으로 취급해도 게임의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에는 영향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의 기반 설정이 되는 이 사건들을 곁콘텐츠로 구성하여 보조 목표로 제공함으로써 게임플레이 요소를 제공함과 동시에 세계관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 God of War 4 의 벽화

벽화는 게임 메인 시나리오 중에 반드시 찾아야 하는 요소는 아닙니다. 대놓고 드러나 있지도 않아서 의도적으로 찾으려 하지 않으면 볼 일도 없죠. 그뿐만 아니라 내용 자체도 메인 시나리오에 직, 간접적인 역할을 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게임을 하며 북유럽 신화에 관심을 가질 플레이어들을 위해 플레이어블한 수집형 콘텐츠로 제공하여 게임 콘텐츠 볼륨을 더 크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4. 마치며

  정리하면 게임은 이 매체의 강점이자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상호작용 및 게임플레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하며, 서사의 사건을 표현할 때는 게임 콘텐츠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이나 영화처럼, 이야기의 핵심 주제에 연관된 것은 직접 표현해야 하면서 이를 보충해줄 수 있는 사건들은 간접 표현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곁콘텐츠를 활용하여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간접 표현 사건을 선택적으로 접근 가능한 콘텐츠로 제공하면서 숨겨진 사건들 역시 세계관 확장 및 이해를 위해 제공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기존 매체의 표현의 기조에 게임만의 강점을 접목하는 것이죠.

 

  이런 작업이 잘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론 개발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나 중요도에 대한 인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시나리오 기획자는 사건들이 게임에 맞게 적절히 배분, 구현될 수 있도록 고민하면서 적극적으로 레벨, 던전 기획자에게 요청할 수 있어야 하며, 반대로  레벨, 던전 기획자는 자신이 만드는 콘텐츠의 배경이 되는 사건을 이해하고, 시나리오 기획자가 먼저 요청하지 않더라도 자발적으로 요청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아직까지는 시나리오는 시나리오대로 가고 타콘텐츠는 타콘텐츠로 간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데, 일반 작업자 선에서 이것이 원활히 되지 않는다면 리더 선에서라도 챙기면서 점차 인식이 변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