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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창고_게임/게임 철학

[정의] RPG의 정의에 대한 고찰 - 1편 : 정의

RPG의 정의 대한 고찰 - 1편 : 정의

by Dreamrugi


※ 이미지 : RPG 명가, 베데스다 스튜디오의 엘더스크롤 5 : 스카이림


1. 이미 흔하디 흔한 장르를 왜 굳이 고찰하는가?
  RPG는 대단히 보편적이고 흔한 장르입니다. 그러나 리니지2 레볼루션이라는 MMORPG를 만들면서 과연 저 혹은 저희가 RPG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만드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RPG를 만들고는 있지만, 정작 결과물은 여러 규칙을 얼기설기 엮어놓은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놓은 느낌. 게임은 상업적으로 성공했지만, 과연 'RPG'로선 좋은 게임일까요? 또한 이런 의문들이 많은 플레이어가 외산 게임만을 좋은 것이라 말하는 것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이 고찰이 많은 유저들이 '우리 나라 게임은 양산형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의 열쇠가 되진 않을지 기대해봅니다.



2. RPG는 무엇인가?




  RPG를 고찰하려면 우선 RPG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RPG는 Role Playing Game의 준말로, '역할 수행 게임' 혹은 '역할극 게임'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Role Playing, 역할극은 무슨 뜻일까요? RPG의 정확한 뜻을 찾기 위해서 해외 지식 사이트 WikiPedia에서 Role Play의 뜻을 찾아보았습니다.


"Role-playing refers to the changing of one's behaviour to assume a role"
"Role-playing은 어떤 사람의 역할을 맡아보기 위해 그 사람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즉 Role Playing은 다른 사람이 한번 되어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Role Playing Game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놀이일까요? 마찬가지로 Wikipedia에서 해답을 찾아보았습니다.


"A role-playing game is a game in which players assume the roles of characters in a fictional setting."
"Role-Playing 게임은 플레이어가 허구적인 설정 안의 인물의 역할을 맡는 것이 목적인 게임이다."


여기서 놓치면 안 되는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역할을 맡는 것'이지, '그 사람이 나라는 것은 아니다'는 점입니다. 즉, 연극과는 다르게 역할극을 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나는 나라는 것이죠. 이것이 어드벤처 게임과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으로 보였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RPG란 허구적 설정 안의 특정 인물의 역할이 되어보는 것입니다.

- 역할을 맡는 것이지 그 인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3. RPG의 기본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그렇다면, RPG 의 기본요소는 무엇이 있을까요? RPG의 정의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습니다.


- RPG란, 허구적 설정 안의 특정 인물의 역할이 되어보는 것이다.


위의 말대로라면 RPG가 구성되기 위해선, "허구적 설정(세계)과 역할"이 필요합니다. 그럼 이것만 있으면 RPG가 될 수 있을까요? Role-Playing이 '역할극'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역할극을 하기 위해선 "극을 위한 대본(일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종합하면 RPG가 구성되려면 아래 3가지가 필요합니다.


- 역할

- 세계

- 일거리



4. 각 요소를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가. 역할

  역할이란, '플레이어가 게임 속에서 맡게 될 역할'을 의미합니다.  3가지 기본요소 중에서도 역할은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 플레이어의 정체성과 게임의 큰 방향성을 결정한다.

- 게임 세계의 사회, 역사적 배경에 영향을 끼친다.

- 역할에 따라서 플레이어의 일거리가 정해진다.


  먼저 첫번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면, 플레이어가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는 '무(無)'의 존재와도 같습니다. 아직 그들에게는 이름이나 성별도 없고, 정해진 역할이나 직업도 존재하지 않죠.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기획자가 의도한 역할에 맞춰서 자신의 직업, 성별, 이름 등을 결정하는데, 이 모든 것은 게임에 주어진 '핵심 역할'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즉 역할이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라는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것이죠. 역할을 수행하려면 수행하기 위한 무대가 필요합니다. 무대는 배우의 연기와 이야기의 몰입감을 더 해주기 위한 것이므로 필연적으로 역할에 따라 좌우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이유가 2번째 이유를 뒷받침해주죠. 또한, RPG의 본질은 '역할 수행 놀이'이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하게 될 행동이나 일거리들은 필연적으로 역할에 종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3번째 이유를 뒷받침해줍니다.


※ 이미지 : 블레이드 앤 소울의 홍문파 일동

블레이드 앤 소울에서 플레이어는 '홍문파 막내'라는 역할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게임 속 배경과 문파 재건이라는 일거리가 주어집니다.


  게임에서 역할은 하나로 국한되지 않습니다. 세계가 잘 구성되어 있다면,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2개 이상의 역할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러 개의 역할을 구성하더라도 게임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주요 역할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이미지 : 엘더스크롤4 오블리비언의 다크 브라더 후드 스피커 '루시엔'

오블리비언에서, 플레이어는 시로딜을 구하는 영웅이라는 역할을 맡을 수도 있지만, 다크 브라더 후드라는 암살자 집단에 들어가서 암살자 역할을 맡을 수도 있습니다.


나. 세계
   세계는 플레이어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무대'입니다. 잘 짜여진 세계는 수행하게 될 역할에 개연성을 부여해주며,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자연스러운 세계는 플레이어가 마치 그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몰입감을 향상시킬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믿어져야 합니다. 게임 내에 등장하는 모든 NPC는 그저 폴리곤 덩어리나 기계가 아닌, 정말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사냥터에 돌아다니는 늑대 하나 오크 하나 마저도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예를 들면, 방에 앉아서 대본을 들고 연극 연습을 하는 것과 온갖 소품과 분장이 갖춰진 세트장에서 연기하는 것 중, 무엇이 더 플레이어가 몰입할 수 있을까요? 답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 이미지 : 위쳐3의 노비그라드

위쳐의 NPC들을 보면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쟁을 피해 피난가는 사람, 술집에서 술취해 토하고 있는 사람, 삐에로와 그를 환호하는 아이들 등


   위에서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며, 역할이 세계의 방향성을 결정한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세계(무대)는 '역할 몰입을 위한 보조장치'가 되어야 합니다. 즉 '세계가 있어서  수행할 역할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세계가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디아블로의 경우, 위험에 빠진 세계를 구하기 위해 네팔렘이 된 것이 아니라,  네팔렘이 되기 위해 위험에 빠진 세계가 필요한 것입니다위쳐의 경우, 세계에 괴물이 넘쳐나서 위쳐 게롤트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위쳐가 되기 위해 괴물이 넘치는 세계가 필요한 것입니다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경우, 아제로스가 있어서 호드와 얼라이언스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호드와 얼라이언스가 되기 위해 아제로스가 있는 것입니다마비노기의 경우, 소울스트림의 세계가 있어서 밀레시안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밀레시안이 되기 위해 소울 스트림의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 이미지 : 디아블로3의 해골 왕의 묘실

해골 왕의 묘실이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트리스트럼을 구하러 온게 아닙니다. 플레이어가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되기 위해 위험에 빠진 트리스트럼과 해골 왕의 묘실이 있는 것입니다.



다. 일거리

  일거리는 플레이어가 '역할을 맡으며 수행할 것들'을 의미합니다. 역할을 맡는다는 것은 그 역할의 일거리들을 실제로 '수행'해야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단순히 전사를 맡았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칼을 들고 뭐라도 베어봐야 의미가 있다는 것이죠. 일거리는 다양한 형태로 제공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엘더스크롤 : 스카이림의 주요 역할과 일거리는, 도바킨으로써 깨어난 용족을 저지하는 것이며 이것은 퀘스트로 제공됩니다. 리니지2의 경우, '아덴 월드를 재패할 혈맹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혈맹 시스템, 공성전 시스템 등의 형태로 제공 되고 있습니다.


※ 이미지 : 리니지2의 공성전

리니지2는 플레이어가 '혈맹의 일원'이라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공성전, 요새전' 등 혈맹 경쟁 컨텐츠를 제공합니다.


  일거리 역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보조장치'로써 존재해야 합니다. 직간접적으로 플레이어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예를 들자면 위쳐3의 경우

직접적으로 연관된 시스템 : 특수 상인 --> 마을을 점령한 괴물을 퇴치하면 마을 사람들이 다시 마을에 돌아오는데, 그 중 특수상인이 있다.

간접적으로 연관된 시스템 : 격투        --> 유저가 위쳐로서 활동하기 위한 활동 자금을 얻을 수 있다.


디아블로3의 경우,

직접적으로 연관된 시스템 : 네팔렘의 균열 --> 네팔렘으로써 자신의 한계를 시험한다.

간접적으로 연관된 시스템 : 카나이의 함    --> 더 강력한 악마를 처치하기 위해 강해진다.


도움이라는 것이 어떤 형태를 하고 있던 궁극적으로는 역할에 연결되는 일관성 있는 경험을 제공해야 합니다.


※ 이미지 : 디아블로3의 네팔렘의 차원 균열

네팔렘의 차원 균열을 '무한 던전'이라는 단순 컨텐츠로 부를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블리자드는 플레이어가 '네팔렘'이라는 역할에 더 몰입할 수 있도록 '네팔렘의 차원 균열'이라는 설정을 추가했습니다.



4. 1편을 마치며

결론을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RPG는 허구적 설정 안의 인물의 역할을 맡는 게임입니다.

- RPG의 기본 요소로는 역할, 세계, 일거리가 있습니다.

- 기본 요소 중, 역할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제 2편에서는 1편에서 생각을 정리했던 RPG의 기본요소를 바탕으로 무엇 때문에 제가 만드는 게임이 RPG로써의 매력이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또한 플레이어들이 외산 RPG를 게임이라는 컨텐츠로써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고찰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