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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창고_게임/레벨 디자인

[고찰] RPG 레벨에서의 환경 요소

RPG 레벨에서의 환경 요소

bt Dreamrugi


1. 서론

 최근 3개월간 파이널 판타지 14를 하면서, 이 게임의 인스턴스 던전에서는 기존의 MMORPG, 심지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도 잘 볼 수 없었던 환경적인 요소가 자주 보였고, 이 부분이 상당히 좋은 느낌으로 다가와서 그 내용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2. RPG의 레벨에서 '환경'요소란 무엇인가?

지난 16년에 레벨 디자인에 대해 아래와 같이 정의를 내린 바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보다 큰 성취감을 얻을 수 있도록, 상호작용하는 것들을 활용하여 경험의 단계를 설계하는 것'


쉽게 얻어진 것은 쉽게 잊혀지는 법. 과거의 기획자들은 최종적인 성취감을 극대화 하기 위한 경험의 단계를 설계하기 위해서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여 플레이어에게 중간 과제를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RPG처럼 가상의 세계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게임들은가상 세계의 더할 나위 없는 모델이 되는 실생활을 참고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서 발견한 도구 중 하나가 '환경'이었을 겁니다.

※ 환경의 사전적 정의 : 생물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상황


즉 최종적으로 정리하면, RPG의 레벨에서 이야기하는 환경 요소란 아래와 같이 정의됩니다.


'플레이어가 최종 목적 달성시 큰 성취감을 얻을 수 있도록 직, 간접으로 과제를 제시하는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상황'


※ 아래 슈퍼 마리오의 경우, 빠져 죽을 수 있는 구덩이가 환경요소라고 할 수 있다.



3. 왜 그 동안의 국내 게임들에서는 환경 요소가 보이지 않았는가?

 이 부분은 심리학 분야까지 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유심히 봐야 할 것은 바로 '패턴화'입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기억할 때 '패턴화' 시켜서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즉 비슷한 것은 묶어서 기억한다거나, 처음보는 형태보다는 이미 익숙한 형태 위주로 특징을 잡아서 기억한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무슨 말인고 하니, 아주 간단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철수가 깡패에게 잡힌 영희를 만나러 가고 있다고 가정합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강력한 태풍이 불고 있는 상황이라서 강은 범람했고, 바람이 나무를 뿌리째 뽑아서 날려 버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용감한 철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희를 구하기 위해서 범람한 강을 건너고, 날아다니는 나무나 돌을 피하며 부하 깡패를 무찔러 드디어 깡패와 영희가 있는 곳까지 갔습니다. 철수는 몇 번의 주먹다짐 끝에 깡패를 물리치고 영희를 구하는 것에 성공하지요!

 자, 여기까지 이야기가 진행되었을 때, 독자나 철수 자신의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위험천만한 범람한 하천? 뿌리까지 뽑힌 채 날아다니는 나무? 무너지는 건물? 아마 모두가 기억하는 것은 철수의 앞을 막았던 깡패 부하들과 안전지대에서 기다리고 있던 깡패 두목이었을 겁니다. 심지어 깡패들이 총기를 들고 있지 않고 주먹질을 해서 환경 요소에 비해 생명에 위협을 덜 가하고 있었더라도 말이지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익숙치도 않고 패턴화하기도 어려운 환경적인 요소와는 달리, 너무나도 특징이 명확하며 인간이 일생을 살아오며 가장 많이 마주쳤던 인간의 형상은 패턴화가 너무 잘 되어 있어서 쉽게 기억되기 때문이죠.


※ 영화 호빗의 한 장면.

앞에는 아조그와 늑대들, 뒤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이 있는 상황. 불가항력이라는 절벽과 물리칠 수 있는 아조그를 비교했을 때, 훨씬 위험한 것은 절벽이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아조그이다.


 최근 게임들이 환경 요소를 잘 사용하지 않게 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특히 미국, 일본에 비해 후발 주자로 출발한 국내 개발사들은 스스로 레벨적인 부분을 탐구하기보다는 해외 게임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을 것이고, 이런 와중에 의도하고 환경적인 요소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면 적 개체만을 기억하게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제 개발에 반영하려고 했을 때는 기억에 남아 있는 적 개체만을 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요. 반면에 오랜 게임 개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일본, 해외 게임을 보면 많은 게임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환경 요소를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이점이 많은 플레이어들이 해외 게임들을 더 으뜸으로 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 물론 마비노기 영웅전처럼 적극 활용하려 시도한 게임들도 있습니다.)


4. 어떻게 하면 레벨의 환경 요소를 잘 살릴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환경 요소의 정의를 생각해보면, '자연적 조건이나 사회적 상황'입니다. 즉, 그 레벨의 자연이나 레벨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상황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하나씩 자세히 살펴보도록 합시다.

  먼저 레벨의 자연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 레벨의 일대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레벨이 동굴이라면, 이 동굴의 바깥은 어떤 기후를 가지고 있는지, 지진은 자주 일어나는지, 동굴 내부는 영양분이 있어 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는지, 물이 흐르고 있는지, 지반이 불안정하여 쉽게 무너지는지 등이 포함될 수 있으며, 레벨이 인공물, 이를테면 어떤 건물 내부라면 이 건물은 지어진지 얼마나 되었는지, 관리 상태는 양호한지, 이 건물이 지어진 지반 일대는 튼튼한지 혹은 약한지, 건물 바깥은 날이 화창한지 아니면 태풍이 불고 있는지 등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사회적 상황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니다. '사회적'이라는 것은 인간 인간관계를 가짐으로써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황들 중에서 플레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지요. 예를 들자면 지금 이 레벨이 국가 간의 전쟁 상황인지, 쿠데타가 일어난 곳인지, 시장통이라서 사람이 북적거려 움직이기 힘든지 등이 포함될 수 있을 겁니다.

  정리하면, 레벨에서 환경요소를 활용하기 위해선 그만큼 레벨을 만들기 전에 탄탄한 설정, 시나리오 기반이 받춰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5. 파이널 판타지 XIV 던전에서의 환경 요소

그럼 파이널 판타지 XIV의 던전 중에서 위 요소를 충실히 살린 던전은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자연적 조건과 사회적 상황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 자연적 요소를 이용한 던전

- 금빛 골짜기

유황과 영은 광석이 지하수와 반응하여 생성된 맹독성 물질이 곳곳에서 빛을 발하며 고여 있는 던전.


- 얼음 외투 대빙벽

대빙벽 속을 탐험하는 이 던전은, 천장에 붙어있는 거대 고드름이 쉴새 없이 낙하한다.


- 젤파톨 

동부 아발라시아의 험준한 산맥. 암석 지대로 이루어 졌으며 이크살 족이 차지한 이곳은 자연적인 영향인지, 이크살 족이 굴러 떨어뜨리는 것인지 모를 낙석이 자주 발생한다.



 ★ 사회적 상황을 이용한 던전

- 돌방패 경계초소

요새를 장악한 용족이 요새 곳곳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등장하여 불을 내뿜고는 도망간다.  

 

- 제멜 요새

첫번째 보스에 도달하기 전, 꿰뚫어보는 눈알은 던전을 계속 배회하면서 침입자 제거를 시도한다.


- 묵약의 탑

비공정 잔해로부터 부품을 회수하기 위한 제국군마도 건쉽을 타고 날아와서 폭격을 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