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RPG 퀘스트 구조의 문제점
by Dreamrugi
1. 이 글이 시작된 이유 : 비효율과의 끝없는 싸움
모바일 MMORPG를 2년차 서비스를 해오면서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아마 'PC급의 볼륨을 모바일 게임의 속도로 업데이트한다'라는 것입니다.
뮤 오리진으로 대변되는 중국산 MMORPG 까지만해도 퀄러티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런 업데이트 속도를 어느정도 맞출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점차 게임의 퀄러티가 높아지면서 단순히 양이 아닌 퀄러티까지 신경써야 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러나 PC MMO와는 다르게 모바일 MMO는 시작이 중국산 MMO라서, 시스템 구조가 그간 우리가 봐왔던 것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고, 그 구조에 PC MMO 시절의 퀄러티를 기존의 양에 모바일 업데이트 사이클로 챙기려다보니 극단적인 비효율과 업무량 폭발이 발생했고, 문제의 중심에 '메인 퀘스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그것이 왜 발생했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찰한 것을 하나하나 살펴 보겠습니다.
※ 뮤 오리진
중국식 MMO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측되는 화면 왼쪽에 떠있는 소위 말하는 '퀘스트 패널을 통한 일방향성 퀘스트'가 이 글의 발단이다.
2. 메인 퀘스트의 현 주소 :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가. PC MMO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대변되는 그 동안의 PC MMORPG에서 퀘스트는 사실 '선택'이었습니다. '퀘스트'라는 분류에는 메인 퀘스트라고 불리던 게임의 전체 이야기 흐름을 전달하던 것과 성장을 돕기 위한 서브 퀘스트 등이 있었고, 플레이어들은 원치 않는다면 굳이 메인, 서브 퀘스트들을 하지 않고도 원하는 컨텐츠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습니다. 또한, 메인과 서브 퀘스트 역시 서로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지 않고 각자의 독립적인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즉 비유하자면 뷔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음식만 골라서 먹을 수 있는 구조였고, 그 음식을 준비하는 게임 개발자들 역시 각 컨텐츠의 목적에 맞게 작업량과 코스트를 조절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죠.
나. 모바일 MMO
이러한 MMORPG의 퀘스트 구조는 모바일, 특히 중국식 MMORPG로 넘어오면서 많이 바뀌게 됩니다. 가장 큰 변화는 '1개 퀘스트 유형의 일방향성 직렬 구조'로 바뀌었다는 것이죠. 메인, 서브 등으로 나뉘어져 있었던 퀘스트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목적들도 합쳐지게 되었죠. 저는 중국식 MMO가 이런 구조를 채택하게 된 것은 '단순, 편리함을 추구하는 모바일 게임'의 기조에서 나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즉 PC MMO에서 유저들이 원하는 퀘스트를 찾아 다니도록 한 것 조차 불편함이라고 판단하여 아에 모든 퀘스트를 한 줄로 세워 놓고 버튼만 누르면 되도록 만든 것이죠. 빠른 설치와 그만큼 빠른 이탈, 그리고 불편한 조작성을 생각하면 이 방향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모바일 MMORPG를 즐기고 있는 많은 플레이어들이 그 증거인 셈이죠.
3. 문제는 어디서 발생했는가 : 반대로 뛰어가는 두 마리 토끼
사실 위에서 이미 문제가 발견된 셈입니다. 보통 기획자들이 어떤 것을 기획할 때 가장 먼저 세우고 들어가는 것이 '기획의 목적 / 의도'입니다. 그 기획(또는 컨텐츠, 시스템)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냐는 것이죠. 건물을 세울 때 그 기반을 탄탄히 세워야 튼튼하고 안정감 있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기획할 때도 흔들리지 않는 명확한 목적이나 의도가 존재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명한 속담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한 번에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고 했다가는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고 목적으로 하는 것만 분명히 노려야 합니다.
PC MMO 때에는 메인과 서브 퀘스트 컨텐츠 각각의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메인 퀘스트는 전체 게임 이야기의 흐름을 진행시키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불필요한 이야기나 퀘스트는 배제하고 필요한 것만으로 담백하게 담아내며 각종 연출, 영상, 컷신 등이 들어갔니다. 반면에 서브 퀘스트는 성장이 목적인 컨텐츠 이기 때문에 반복성이 짙고 정보 전달보다는 빠른 완료가 더 중요한 컨텐츠라서 퀘스트 하나하나에 들어가는 공수를 최소화하고 양을 많이 늘리는 편입니다.
하지만,
모바일 MMO로 넘어오면서 목적이 다른 두 컨텐츠가 하나로 합쳐지게 되었습니다. 즉 이야기 전달과 성장 가이드라는 두 마리의 토끼가 공존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지요. 심지어 두 토끼는 비슷한 방향으로 뛰어가는 것이 아닌 정반대 방향으로 뛰어가고 있습니다.
※ 마비노기의 퀘스트 UI
PC에선 이렇게 용도에 따라서 구분되어 있는 퀘스트가.
※ 리니지2 레볼루션의 메인 퀘스트
모바일로 넘어오면서 이렇게 퀘스트 하나로 합지면서 퀘스트 하나가 여러 목적을 가지게 되었다. 성장 가이드 / 성장 필요 재화 지급 / 스토리 전개 라는 여러 목적을 한 번에 지닌 키메라가 되버린 것.
4. 무엇이 문제인가 : 작업 비효율의 시작
높은 작업 코스트를 들이며 불필요한 부분은 최대한 제거해야 하는 '메인 퀘스트'
작업 코스트를 최대한 줄이며 반복과 양으로 승부해야 하는 '서브 퀘스트'
절대 서로 합쳐질 수 없을 것 같던 이 두 컨텐츠는 중국 개발사에 의해 하나로 합쳐지게 되었고, 이들은 시나리오 전개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서브 퀘스트 같은 메인 퀘스트를 만들어 왔습니다. 게임 전반의 이야기 전개는 하고 있으나, 감동 전달이나 스토리 텔링에는 관심이 없고 성장 가이드만 하고 있는 상황이죠.
하지만 국내 개발자 중 시나리오 연관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난제였습니다. 눈 앞에 놓여진 정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2마리의 토끼. 모바일 MMO 개발 경험이 없었던 국내 개발자들에게는 2가지 길이 있었죠.
첫 번째는 중국산 MMO처럼 이야기 전개를 포기하는 것. 사실 국내 개발사 내에서도 일부 개발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시나리오나 설정을 등한시 하기 때문에 시나리오 연관 작업자들이 입에 칼을 물고 진행하는 것이 아니면 대부분은 이 길을 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퀘스트 작업에 비효율적인 부분은 많이 없어지지만 컨텐츠를 제작하는 사람으로써 정말 자존심 상하고 자괴감을 느끼게 됩니다. 일을 함에 있어서 어떤 장인 정신을 가지고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닌, 일의 양을 줄이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려서 스스로 회의감에 빠지게 됩니다.
두 번째 방법은 퀘스트 전체를 메인 퀘스트 급의 퀄러티로 만드는 것입니다. 시나리오 연관 작업자들이 입에 칼을 물고 야근과 고통을 감내하면서 일을 하는 것이죠. 쉽게 말해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나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콘솔 게임 등에서 서브 퀘스트 하나하나를 메인 퀘스트처럼 만드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작업자의 희생 정신을 생각하면 그만큼 훌륭한 결과를 기대해야 겠지만 슬프게도 그렇지 못 합니다.
왜 작업자들이 고생해서 메인 퀘스트 급 퀄러티로 전체를 구성해도 그렇지 못한 결과가 나올까요? 몇 가지 이유를 꼽아 보겠습니다.
가. '가이드'와 '이야기 전개'의 충돌 : 누더기가 되는 이야기
앞서 계속해서 두 마리 토끼를 언급했듯이 여전히 퀘스트에는 '초반 가이드'를 해야 한다는 목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가이드라는 것은 한 번 정해놓으면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유저 테스트를 통해 계속 변화하고 개선해야 하는 부분이죠. 다시 말해 다음과 같은 상황이 지속적으로 발생합니다. 가이드 1차안이 나오면 거기에 맞춰 높은 공수를 들여 가이드형 시나리오 퀘스트를 구성합니다. 여기서 끝나면 대단히 좋겠지만, 테스트 및 내부 논의를 거치면서 가이드 방법 또는 순서, 시기가 변경됩니다. 하지만 이미 작업은 가이드에 맞춰 시나리오를 구성해놓은 상황. 결국 시나리오 작업자는 변경된 가이드에 맞춰 시나리오를 다시 쓰고 퀘스트 스크립터는 기존 것을 폐기하고 새로 스크립팅을 시작합니다. 이 과정이 반복에 반복을 거치면서 엄청난 작업 비효율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시나리오 연계성을 놓을 수도 없는 것이, 그랬다가는 대단히 개연성이 없고 뜬금없는 가이드가 시나리오 중간에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오게 될 것이고, 이는 퀄러티 이슈로 이어지게 되겠죠. 또한 플레이어의 시나리오 몰입을 위해 인물, 이야기, 사건을 배열해 놓았는데, 거기에 무수히 많은 가이드가 여기저기 끼어들고, 그러다가 다시 빠지면서 말그대로 시나리오 전개가 누더기가 됩니다. 당연히 효과좋은 이야기 전개가 나올 수가 없는 것이죠.
예를 들면 원래 장비 강화를 알려주던 대장장이가 마을 입구에서 강도에게 붙잡혀 있던 내용이 느닷없이 통째로 오크들의 마을 한 가운데에서 등장해야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면, 일단 마을 입구 부분의 이야기가 통째로 빠져서 다른 이야기로 메꿔야 함은 물론이고, 대장장이와는 하등 상관없던 오크들이 갑자기 대장장이를 납치해야 하는 이유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죠. 그나마 콘솔이나 PC 패키지 게임은 이런 부분에 덜 민감하지만, 출시일이 곧 게임의 흥망성쇠와 직결된다고 판단되는 모바일 시장에서는 시간적 제약마저 존재하기 때문에 완벽한 구성이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 리니지2 레볼루션의 말하는 섬의 퀘스트 진행도
각 에피소드에 할당 되어 있는 저 컨텐츠들이 무수히 많은 위치 변경이 되면서 말하는 섬 스토리는 그야말로 누더기가 되었다.
나. '성장'과 '이야기 전개'의 충돌 : 루즈해지는 이야기
이 부분도 사실 가이드 부분과 비슷한 선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지정된 수준까지 성장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단히 예를 들면 이 밸런스를 위해선 '플레이 타임'과 '보상'이라는 두 요소가 필요합니다. 한 줄로 표현하면 '어느 분량을 플레이를 하면 이만큼의 보상을 받을 수 있고, 이 보상이면 다음 수준까지 성장할 수 있다'라는 식이되는 것이죠. 이전의 PC MMO에서는 보통 이런 부분을 선택적으로 수행 가능한 서브 퀘스트로 풀 수 있었습니다.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다가 수준이 모자라면 잠깐 옆으로 빠져서 밸런스 기획자가 의도한 수행량 만큼의 서브 퀘스트를 하고 되돌아오면 되는 것이죠. (예로 다음 레벨까지 서브 퀘스트 10개) 메인 퀘스트는 보통 시나리오 도중이 아니라 어떤 중요한 기점마다 수준을 요구하게 될 겁니다(예를 들면 다음 지역으로 이동).
하지만, 이것이 모바일 MMO로 넘어와 메인과 서브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그 동안 서브 퀘스트가 했던 일을 메인 퀘스트가 하게 됩니다. 담백한 내용만 담아서 진행되어야 할 메인 퀘스트에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최소 퀘스트 수행량이 끼어들게 됩니다. 이 상황이 어떤 문제를 야기하게 될까요? 메인 퀘스트의 퀘스트 수량을 불필요하게 늘리게 되고, 이에 따라 불필요한 이야기 전개가 껴들어 시나리오를 대단히 루즈하게 만들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야기의 절정 부분에서 당장에라도 적장의 목을 치러 가야할 상황 용병단장이 갑자기 "잠깐! 가기 전에 주변 적을 더 정리하고 가야겠다"라고 말하며 몬스터 처치 퀘스트만 계속 반복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죠.
※ 리니지2 레볼루션의 절규의 땅 퀘스트 진행도
최근 들어 레볼루션의 1개 지역당 퀘스트 수는 약 100~110개 선. 사실 여기서 성장을 위해 억지로 끼어넣은 퀘스트를 제외하면 숫자는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고, 사실 그 줄어든 숫자는 다른 곳에서 충당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100개의 퀘스트를 하면서 퀘스트 수행 레벨 제한은 약 10번 정도 걸리게 되는데. 1개 지역이 하나의 커다란 스토리 주제로 되어있다고 생각하면, 소설책 한권을 10번에 걸쳐서 나눠봐야 하는 상황. 각 지역에 들어갔을 때 스토리를 타이트하게 진행시킬 수 있게 했어야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 플레이어의 '목적' 모호성 :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번에는 플레이어 시점에서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무언가 행동을 할 때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기 마련입니다. 먹는 것은 배고프거나 혹은 맛있는 것을 먹고 싶기 때문이고, 운동은 건강 증진 또는 친목 도모를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는 게임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위험천만한 던전을 목숨걸고 뛰어드는 것은 그 뒤에 따라오는 보상 때문이며, 길드를 창설하여 사람들을 결집하는 것은 친목을 도모하거나 힘을 모아 남들보다 우위에 서기 위한 것이죠.
그렇다면 퀘스트는 어떨까요? PC MMO 때에는 게임의 스토리가 궁금하면 메인 퀘스트를, 성장을 추구하면 서브 퀘스트를 진행하는 등, 선택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바일 MMO처럼 두 퀘스트가 합쳐진 상황에서는 플레이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해서 할 수 없습니다. 게임의 스토리에는 관심이 없더라도 강제로 장문의 텍스트나 영상, 시간이 소요되는 연출 등을 봐야 하는 불편한 상황을 직면하게 되고, 스토리에 몰입하려고 하면 성장을 위한 퀘스트가 등장해서 이야기를 루즈하게 만들어 버리거나 갑자기 레벨 제한이 걸려서 다음 이야기를 몇 주 뒤에나 확인할 수 있는 상황을 겪게 되죠. 즉, 현재의 모바일 MMO의 메인 퀘스트 구조는 작업자가 아무리 야근과 고통을 감내해서 고퀄리티로 구성한다고 한들,어느 플레이어 하나 만족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라. 부족한 '시간'과 '인력'
이번에 다소 개발 현실적인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바로 작업 코스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퀘스트 제작 작업은 컨텐츠 기획 작업에서 어느 정도의 코스트를 요구하는 작업일까요? 제 경험상 상위 3위 안에 드는 수준의 작업량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당장 생각해보아도 시나리오 작업자가 시나리오를 쓰고 대사를 작업하는 시간, 퀘스트 스크립터가 1지역당 약 100개에 육박하는 데이터를 제작하는 기간, 레벨 기획자가 거기에 필요한 맵을 기획하고 아티스트가 제작하는 기간을 생각하면, 리니지 2 레볼루션을 기준으로 1개 영지 당 시공의 균열 2~3개는 제작할 수 있는 기간입니다.
하지만 게임은 퀘스트라는 컨텐츠 만이 있는 것이 아니죠. 각종 보스나 던전 등 플레이어가 즐길 거리가 다양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요 시장이 모바일 MMO로 넘어오면서 업데이트 주기가 엄청나게 줄어 들었다는 것입니다. PC MMO 급의 분량의 컨텐츠를 준비해야 하지만 기간은 훨씬 짧은 상황인 것이죠. 이러한 상황과 퀘스트(지역 확장)이라는 거대한 작업이 맞물리면서 컨텐츠 기획자들은 퀘스트의 퀄러티나 다양한 컨텐츠의 업데이트는 꿈도 못 꾼채 밸런스에 필요한 퀘스트 최소 수량을 채우기도 급급한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이렇듯 위와 같은 이유들로 작업자들이 스스로를 희생하여 작업해도 만족스러운 효과가 나올 수 없는 상황입니다.
5.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 목적에 맞게 컨텐츠를 분리하자.
사태를 방조하다가는 작업 비효율을 넘어서 컨텐츠 기획자들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를 퀘스트를 만들다가 다른 컨텐츠의 업데이트 마저 점차 밀리는 최악의 사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방안을 한 번 고민해보았고, 2가지 열쇠를 떠올렸습니다.
가. 첫 번째 열쇠 : PC MMO로의 회귀, 목적에 맞게 퀘스트를 분리한다.
문제는 '목적이 다른 컨텐츠를 하나로 합쳐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생각하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잘못된 것을 되돌리는 것. 즉, 다시 메인 퀘스트와 서브 퀘스트를 분리하는 것이죠. 이렇게 하면 4번에서 언급되었던 문제들의 해결책을 금방 찾을 수 있습니다.
- 명확해지는 목적
메인 퀘스트는 이야기, 서브 퀘스트는 성장 및 가이드로 목적을 명확히 분리하여 플레이어들에게 제시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행동 동기에 따라 원하는 컨텐츠만을 선택, 진행할 수 있게 됩니다.
- 컨텐츠 중요도 및 목적에 따른 코스트 배분
메인 퀘스트에는 이야기 전개에 필요한 만큼의 퀘스트 분량과 높은 코스트의 연출을, 서브 퀘스트는 성장에 필요한 만큼의 퀘스트 분량과 불필요한 대사 및 연출을 제외한 가벼운 작업 코스트를 배분할 수 있습니다.
- 작업 효율 증가
효율 증가에 따라 생긴 여유로 업데이트 할 수 있는 컨텐츠 종류는 다양해지고, 메인 퀘스트의 퀄러티 역시 올라갈 수 있습니다.
※ 레이븐의 왕궁
레이븐의 경우는 상당히 오래 전에 출시 되었던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점을 미리 예측하고(비록 MO라 장르가 다르나) 메인 스토리를 진행할 수 있는 별도의 컨텐츠 '왕궁'을 통해 불필요한 퀘스트는 걷어내고 스토리만 담백하게 진행했습니다.
※ 히트의 연대기
히트의 경우는 초반에는 현재 MMO처럼 성장 가이드용과 메인 스토리용을 모험으로 혼용해서 썼었으나, 뒤늦게 이 문제를 발견했는지 서비스가 꽤 지난 시점에서 연대기의 '이야기 목록'이라는 컨텐츠를 통해서 플레이어가 스토리만 담백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아마 처음부터 스토리를 이렇게 별도로 구성했다면 스토리텔링이 더 잘 되었을텐데 아쉬운 부분입니다.
※ 스도리카의 스토리 여정
가장 최근에 출시된 수집형 턴제 RPG 게임인 스도리카. 이 게임 역시 스토리 모드를 별도로 제공하여 불필요한 구간 없이 이야기 전개만 담백하게 진행하게 하고 있으며, 그 의 성장 가이드나 재화 제공은 지역 탐색, 도전 등을 통해 별도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스토리 모드는 많은 양의 대화, 인게임 연출 등이 이뤄지는 반면에 지역이나 도전에서는 단순한 전투만 전개되죠.
※ 몬스터 헌터 월드의 퀘스트 카운터
이렇게 퀘스트 혹은 임무를 용도에 따라 구분하는 것은 모바일 뿐만 아니라 콘솔 게임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얼마 전에 이슈가 되었던 몬스터 헌터 월드 역시 스토리를 집중 전개할 수 있는 임무와 랭크업 및 성장 재료 파밍을 위한 자유, 조사 퀘스트를 별도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컷신이나 각종 대사들이 등장하는 임무와 달리 자유, 조사 퀘스트는 단순한 사냥만 진행되어 목적에 따른 작업량 배분이 되어있죠.
나. 두 번째 열쇠 : 일방향성에서 병렬 진행으로의 분리(UX 보존)
첫 번째 열쇠는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였고, 사실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열쇠입니다. 그것은 바로 UX(Use Experience)입니다. 만약 단순히 컨텐츠가 PC MMO 시절처럼 분리해서 들어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과연 잘 동작할 수 있을까요? 제 견해로 말씀드리자면 단언코 '아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이때까지 열정적으로 '분리해야 한다!'라고 외쳤으면서 이제와서 왠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냐 생각할 수 있지만, 단순히 분리해서 들어가면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 두 번째 열쇠의 핵심입니다.
이미 뮤, 리니지2 레볼루션, 리니지M 등의 중국식 퀘스트 구조를 경험한 현재 모바일 MMO 플레이어들에게 있어서 일방향성 퀘스트 구조는 '당연한 것'이 되어 있습니다. 마치 김치찌개는에는 당연히 김치가 있어야 되는 것처럼 모바일 MMO라면 당연히 화면 한쪽에 항상 떠있는 퀘스트 패널과 그것을 통해 진행되는 일자형 퀘스트가 있어야 되는 것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만약 이 UX를 무시하고 갑자기 PC MMO식의 퀘스트시스템을 내놓는다면 많은 플레이어들이 혼란을 느끼게 되고 얼마 안가 이탈하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해결방안을 저는 아래와 같이 생각해보았습니다.
- 초반 성장 및 몰입 구간은 기존의 일방향성 구조를 유지한다.
이미 형성되어 있는 UX를 무시할 순 없습니다. 또한 어찌 되었든 게임 초반에는 플레이어들에게 게임의 시나리오적 재미와 성장 가이드를 모두 제공할 필요는 있습니다. 시나리오에 치중하면 가이드를 놓쳐서 적응을 방해하고, 가이드에 치중하면 교과서를 보듯 재미없는 플레이가 전개되기 때문에 높은 공수와 많은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플레이 초반만은 기존처럼 합쳐진 형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 게임 적응이 완료되었다고 판단되는 시점에 메인 퀘스트 시스템을 분리
게임을 개발할 때는 각 게임별로 필수적인 시스템을 모두 습득했다고 판단되는 시기가 있습니다. 이 시기가 바로 분리할 수 있는 시기입니다. 분리할 때는 시나리오 적으로 자연스럽게 분리시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메인 퀘스트'를 분리시킨다는 점입니다. 이미 플레이어들에게 익숙한 UX인 일방향성 퀘스트. 이 퀘스트는 플레이어에게 어떤 존재일까요? 스토리를 보기 위한 것일까요? 가이드를 위한 것일까요? 아니면 둘다 일까요? 정답은 둘다, 즉, 플레이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퀘스트를 하냐에 따라 다르다 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각 목적의 플레이어에게 있어서 이 퀘스트는 만족스러운 컨텐츠일까요?
우선 가이드의 목적이라고 판단하는 플레이어에게는 썩 만족스러운 컨텐츠일 확률이 높습니다. 자신의 레벨에 따라서 적합한 지역으로 보내주고, 어떤 몬스터를 처치해야 하는지 적절히 안내해주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스토리 전개가 목적인 플레이어는 어떨까요? 그들에게 있어서는 끔찍하게도 재미없는 컨텐츠입니다. 이야기 전개에 불필요한 내용이 많음은 물론이며, 몰입할라치면 레벨 제한이 걸리죠. 그리고 그런 인식은 그들의 머리 깊숙히 박혀 있습니다. 즉 기존 퀘스트를 메인 퀘스트로 하기에는 이미 가이드용 퀘스트라는 인식과 재미 없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박혀 있기 때문에 효과를 거두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인 퀘스트를 분리하는 것이죠. '기존 퀘스트는 재미없는 가이드 퀘스트가 맞아, 대신 시나리오가 정말 재미있는 별도의 메인 퀘스트를 준비했어'라는 접근이 필요한 것이죠.
6. 마치며
글을 마치기 전에 마지막으로 고찰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가. 무엇이 문제인가?
중국식 모바일 MMO에서 출발한 일방향성 퀘스트 구조
나. 왜 문제인가?
서로 다른 목적의 컨텐츠를 하나로 합쳐 놓아서 컨텐츠의 목적성 및 작업 기준이 모호
서로 다른 목적의 컨텐츠를 하나로 합쳐 놓아서 플레이어의 목적성이 모호
다. 왜 발생했나?
중국에서 모바일 MMO 개발 시, 극도의 편리성을 추구하여 여러 분류의 퀘스트를 1개로 통합
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목적에 맞게 퀘스트 컨텐츠를 분류별로 분리
마. 무엇을 유의해야 하는가?
기존의 모바일 MMO UX를 고려
일방향성을 유지하다가 필수 과정이 끝날 때 컨텐츠를 분리
기존 퀘스트를 서브(성장, 가이드)로 유지하고 메인 퀘스트(이야기 전개)를 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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