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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창고_게임/레벨 디자인

[연구] 학습한 것 기억시키기 : 심리학에 기반한 기억

학습한 것 기억시키기 : 심리학에 기반한 기억

by Dreamrugi

 

1. 연구의 목적

  레벨 기획의 궁극적 목적은 문제를 제시한 뒤 그 해법을 학습 시키고 그 과정을 점차 심화해서 더 높은 성취감을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평소에 많이 경험하는 것처럼, 학습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했더라도 잊어버려서 정작 필요할 때 떠올리지 못 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마이어스의 심리학'에서 언급하는 심리학에 기반하여 플레이어가 학습한 것을 효과적으로 기억시키는 법과 그것을 오래 남게 하는 법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 열심히 정보를 전달했는데, 막상 필요할 때 기억나지 않는다면 실패한 레벨 기획이 아닌가?

 

 

2. 기억의 과정과 효과적으로 기억하는 법

  우선 기억 시키는 법을 알아보기 전에 기억이라는 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뤄지며, 심리학에서는 기억을 증진 시키기 위해서 그 동안 어떤 방법을 사용해왔는지 마이어스의 심리학에서 언급한 것을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가 습득한 어떤 정보를 뇌에 기억하는 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 감각기억(sensory memory)에 일시적으로 등록

  - 정보를 처리하여 단기기억(short-term memory)으로 보냄

  - 단기기억에서 되뇌기(rehearsal)를 통해 정보를 '부호화'

  - 장기 기억(long-term memory)로 이동하여 기존 장기기억과 통합.

 

  이 부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바로 '단기기억'과 '되뇌기 및 부호화'입니다. 심리학에서는 되뇌기를 통해 장기 기억으로 이동하지 않은 정보는 쉽게 손실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럼 되뇌기와 부호화라는 것이 대체 무엇이길래 그렇게 중요한지, 알아보지 않을 수가 없죠!

 

  부호화란 정보를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배열로 체제화 시켜 청크(덩어리)로 만드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즉, 비슷한 것끼리 묶는 것이죠. 여기서 우리는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것'이라는 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심리학 용어 중에 자기참조 효과(self-reference effect)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자기 자신을 기술하는 것 혹은 자기와 연관된 것으로 생각하는 정보면 더 잘 기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칵테일 효과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죠. 간단히 예를 들면 누군가 "철수가 영희한테 갈테니 기억해"라고 하는 것보다 "철수가 너한테 갈테니 기억해"라고 말하는 것이 더 기억에 잘 남는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무엇이든지 기억할 때는 '나와 연관되 것' 이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부호화할 정보를 의미에 근거하여 의미적으로 접근하여 부호화하면 더 잘 기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영어 단어가 있을 때 그 단어를 외우고자 한다면 단순 암기가 아니라 단어가 뜻하는 의미에 집중하면 더 쉽게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깊은 처리(deep processing)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이고 시각화할 수 있는 것들을 더 잘 기억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허구한 날 글로만 보는 것보다 직접 보고 이미지를 그릴 수 있는 것이 기억에 더 오래 남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외에도 심리학에서는 짧은 시간에 집중하는 것보다 여러 시간대에 걸쳐 분산 시킬 때 더 잘 기억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를 간격두기 효과(spacing effect)라고 하는데, 쉽게 말하면 30분 집중해서 보고 다시 안 보는 것보다는 10분씩 1시간마다 3번에 나눠 걸쳐서 보면 더 잘 기억한다는 것이고, 다르게 말하면 '복습'하라는 이야기입니다. 한 번 보고 마는 것보다는 복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은 공부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죠. 다만 심리학에서는 단순히 분산시켜서 복습하는 것을 넘어서 '자기검증'까지 수행한다면 학습 효과를 증진시키는데 더 기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이를 검증효과 testing effect라고 합니다). 

 

효과적인 기억방법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자기자신과 연관된 것이라고 느끼게 한다. : 자기참조 효과(self-reference effect)

 - 의미적으로 접근하여 기억한다. : 깊은 처리(deep processing)

 - 구체적이고 시각화할 수 있는 것들이 더 잘 기억된다.

 - 여러 시간대에 걸쳐 분산시켜 기억한다. : 간격두기 효과(spacing effect). 복습

 - 학습 시 자기검증을 수행한다. : 검증효과(testing effect)

 

※ 장기기억으로 넘어가지 못한 단기기억은 기억되지 못하고 쉽게 사라지기 마련이다. 궁극적으로 이뤄야 하는 것은 장기기억으로 기억되도록 유도한 뒤 그것을 적절한 상황에 인출시키는 것.

 

 

3. 기억한 것을 인출하기

  정보를 효과적으로 기억했다고 해서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뇌 속 깊숙히 기억했던 것을 효과적으로 떠올릴 수 있어야 완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이어스의 심리학에서는 기억을 효과적으로 인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제시하고 있는데, 그 방법은 바로 '인출단서(retrieval clue)'를 이용하는 겁니다.

 

 인출단서는 떠올리고자 하는 정보에 접속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기점, 어떤 방아쇠와 것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기억에 인출단서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쉽게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죠. 최선의 인출단서는 기억을 부호화할 때 형성한 연합이라고 합니다. 이를 암묵기억이라고도 하는데, 앞서 살펴봤던 기억이 우리가 의식적으로 집중해서 기억(외현기억)하는 것이라면 이 암묵기억은 무의식적으로, 본능적으로 기억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인출하려는 외현 기억과 파블로프식 조건형성으로 연합된 암묵기억을 단서로 제시하라는 것이죠. 흔히 각종 문학 작품들에서 주인공들이 어떤 사물을 보고 과거의 상황이나 인물을 떠올리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그런 형태를 떠올리면 됩니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맥락의존 기억이란 것이 있는데, 떠올리려 하는 기억을 경험했던 시점과 유사한 상황(맥락)으로 되돌아가먄 것이 기억인출이 점화한다는 것입니다. 술을 먹을 때 경험했던 것이 술만 마시면 다시 떠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부호화 명세성 원리(encoding spacificity principle)라 한다고 합니다.)

 

  인출단서를 활용할 때는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간섭'이라는 것이죠. 간섭은 순행간섭(기존 기억이 새 기억을 방해)과 역행간섭(새 기억이 기존 기억을 방해)이 있는데, 이 두 가지는 모두 어떤 기억들이 동일한 인출단서를 가질 때 발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자를 예로 들면 비밀번호 형태의 자물쇠가 있는데, 자물쇠를 새것으로 바꾸면서 비밀번호를 바꾸게 되면 이전 자물쇠에서 사용했던 비밀번호가 새로 산 자물쇠의 비밀번호를 기억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는 어떤 노래가 있다고 했을 때 노래를 누군가 개사, 편곡해서 부르게 되면 원곡이 기억나지 않고 개사된 것이 기억나는 현상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출하는 것에 대해 마찬가지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파블로프식 조건형성으로 형성된 인출단서(retrieval clue)를 활용한다.

 - 기억을 경험했던 시점과 유사한 상황(맥락)을 구성한다. : 부호화 명세성 원리(encoding spacificity principle)

 - 인출단서가 중복됨으로써 발생하는 간섭을 최소화한다.

 

※ 심리학에서는 필요한 정보를 기억하고 인출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것으로 SQ3R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훑어보고(Survey) 질문하며(Question) 읽고(Read) 인출하며(Retrieve) 개관하기(Review)라는 것으로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과정입니다.

음 그렇군 => 그게 뭐였지 => 그렇구나 => 기억났어 => 다음에는 안 까먹도록 기억해둬야지.

 

※ 백지 상태에서 기억 인출을 유도하기 보다는 단서와 맥락을 이용해야 한다.

 

 

4. 게임 내 학습에 실제로 적용하기

  심리학에서의 기억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으니 이제 실제로 게임에 적용하는 법을 정리해 볼 시간입니다. 적용하는 방법을 아래와 같이 한번 정리 해봤습니다.

 

가. 학습 대상을 부호화 및 인출단서와 연결하기

  먼저 학습시킬 것들, 부호화 예제, 인출단서를 나열해놓고 서로 연결해줍니다. 부호화 예제를 함께 나열, 연결하는 이유는 플레이어 스스로가 부호화하여 기억할 것이라 믿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이걸로 부호화하면 더 쉬워, 앞으로 이 부호화로 계속 알려줄게"라고 제시하는 것이 보다 용이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플레이어로 하여금 기획자가 의도한 부호화로 학습, 기억하게 만들면 좀 더 의도대로 학습과 기억을 조절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인출단서를 초기에 나열하여 연결하는 이유는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간섭이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2개 이상의 기억이 동일한 인출단서를 가지기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기획자가 플레이어로 하여금 원하는 순간에 정확한 기억을 인출해도록 하려면 학습시켰던 기억들 간에 간섭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 플레이어에게 의미있도록 제시하기

  지금부터가 실제로 기억을 유도하기 위해 중요한 부분입니다. 학습 대상을 인출단서, 부호화 예제와 함께 제시하되, 의미있도록 제시하는 것이죠.   앞서 심리학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플레이어들은 자기참조 효과 때문에 자신과 관계있는 것을 더 쉽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때문에 학습 대상이 어떤 형태로든 '플레이어와 관계있는 것처럼' 제시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텐데, 예를 두 가지 정도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는 학습을 진행하기 전에 플레이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텍스트가 되었든 음성이 되었든 상관 없이, 정보를 전달하기 전에 학습자를 언급함으로써 '나와 관련된 것'이라는 느낌을 받도록 하는 것이죠. 마치 학교에서 선생님이 불특정 다수의 학생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 학생을 언급하면서 질문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두번째는 모방학습 보다는 직접학습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이전에 조건형성과 관련된 글에서 거울 뉴런에 대한 모방학습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 방법도 유효한 방법이긴 하지만 자기참조 효과를 생각하면 역시 모방학습보다는 직접학습을 유도하여 플레이어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도록 것이 더 효과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적으로 직접학습으로 구성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모방학습을 유도할 수 있겠죠!

 

다. 장기기억에 기억하게 만들기

  여기서부터는 기존 게임들에서 대부분 이뤄내지 못한 부분입니다. 바로 학습한 것들을 장기기억에 각인되도록 하는 것이죠.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에 기억하게 하려면 2가지만 기억하면 됩니다. 바로 '되뇌기'와 '자기검증'입니다. 

  되뇌기를 할 때 중요한 것은 단기간에 빡빡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여유를 갖고 반복적으로 되뇌도록 하는 것입니다. 보통 대부분의 게임들이 튜토리얼을 통해서 어떤 필요한 정보를 플레이어에게 전달하면 거기서 끝나고 맙니다. 심지어 요즘처럼 모바일 게임이 흥행하는 시대에는 조금이라도 빨리 튜토리얼을 끝내주기 위해서 초반에 튜토리얼을 몰아 놓고 주입식으로, 딱 1회만 튜토리얼을 진행한 뒤 더 알려주지 않기 마련이죠.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전달한 정보가 장기기억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단기기억에서 모두 소멸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기억해야 하는 어떤 정보가 있다면 반드시 간격을 두고 여러 번 전달하여 되뇌기를 유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검증은 되뇌기를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최초에 플레이어에게 정보를 전달할 때 일방향성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었다면, 이후 되뇌기를 수행할 때는 단순히 전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검증이 될 수 있도록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정답만 외우게 해선 안된다' 라는 점입니다. 학생들이 공부할 때 흔히 답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식의 번호만 외우는 경우르 종종 볼 수 있는데, 만약 게임에서의 학습도 이렇게 번호 외우기로 이루어진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학습이라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자기검증을 유도할 때는 어떤 형태로든 의미 자체를 이해하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라. 인출단서 활성화시키기

  이제 마지막 단계인 인출단계입니다. 플레이어가 기획자의 의도대로 학습을 했다고 가정합니다. 그리고 의도된 기억, 학습한 것을 이끌어 내기 위해 학습할 때 함께 제시했던 인출단서를 먼저 제시합니다. 그럼 플레이어는 백지 상태에서 기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인출단서를 통해 끌어내야 하는 기억을 찾는 길을 보다 쉽게 발견하여 기억을 손쉽게 인출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 위쳐3의 전투 튜토리얼 장면

   전투를 알려주기 위해 전투 상황을 연출하는 것은 맥락의존 기억을 활용한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5. 마치며

  사실 매번 느끼지만 실제 업무를 하면서 이런 부분을 모두 적용하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특히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하지만 비록 현실에 부딪혀 이 모든 것을 지키지는 못할 지라도 우리가 플레이어가 무언가를 학습하기를 원할 때 최소한 '되뇌기'를 제시하지도 않았으면서, '알려줬는데 기억을 못한 것을 플레이어의 잘못이다'라고 개발자 편한대로 생각해버린 것은 아닌지 한 번 쯤 되돌아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