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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창고/조직관리론

컨펌 지연 : 의사결정 등급화 및 조직 세분화

컨펌 지연 : 의사결정 등급화 및 조직 세분화

by Dreamrugi


1. 시작하기 전에

  조직에서 업무 일정이 지연되거나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진척되지 않는 것에는 매우 다양한 요인이 있을 것입니다. 회사에서 수년 간 일하면서 겪어본 바로는, 조직의 역량이 부족하거나 열정이 없는 것이 아님에도 일이 진척되지 않는 경우, 주로 그 원인이 컨펌 지연에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컨펌 지연'에 의한 업무 지연 현상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왜 지연이 발생하는 것이며 그것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 고찰해보려 합니다. 




2. 컨펌 지연의 발생 원인

  우선 이 글에서는 현재 컨펌 지연이 발생하고 있는 조직이 '구성원들이 역량이 충분하고 열정이 있음에도 컨펌 지연이 발생한다'라는 가정을 놓고 시작합니다. 이점을 유의하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컨펌이 지연되어 조직의 전체적인 업무 일정이 지연되는 것에는 크게 3가지 요인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이크로 매니징(Micro Managing), 컨펌 병목현상, 결정권자의 부재입니다.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 마이크로 매니징 (Micro Managing)

  마이크로 매니징은  좋은 의미로 말하면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써서 관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너무 과하게 섬세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보통은 후자와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되지요. 이 글에서는 컨펌(Confirm, 업무에 대한 결재)에서의 마이크로 매니징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피드백을 다룬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결정권자는 업무를 종료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업무 내용을 살펴보고 '피드백'을 전달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때 마이크로 매니징에 대한 이슈가 등장합니다. 피드백을 할 때에는 어느 수준의 깊이까지 확인할 것인가라는 이슈가 발생합니다. 이것은 방향성부터 목적의 달성 방식, 업무의 세부 수행 방안까지 범위가 다양할텐데, 세부적인 것일수록 확인해야 하는 것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집니다.

자, 그럼 결정권자는 어느 수준까지 컨펌을 진행해야 할까요? 업무의 완성도를 위해서 가급적이면 많이, 가능하면 더 아래쪽까지 파고 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단언컨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를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결정권자는 선원이 아니라 선장입니다. 조직을 항해하는 배에 비유했을 때 결정권자는 선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장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요? 바로 배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사람입니다. 배의 목적지를 정하는 것을 넘어서 그곳을 향해 잘 나아가고 있는지 검토하고, 항로 주변에 위험이 있진 않은지, 주변에 다른 배들이 있진 않은지 끊임없이 점검하면서 항로를 수정, 개선하고, 위기가 닥쳤을 때 선원들을 진두지휘하는 관제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선장이 본분을 망각하고 마이크로 매니징, 즉 동력실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동력 하나하나를 점검하고, 갑판은 깨끗한지 쓸어보거나 식당 재료가 잘 정리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다닌다면 어떻게 될까요? 배가 어느 순간 항로를 이탈하거나 위기가 다가오는 것을 미리 알아채지 못하고 닥쳐왔을 때 부랴부랴 대응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목적지가 아닌 엉뚱한 곳에 도착하거나 도착했다고 하더라도 정상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할 겁니다.

  조직의 결정권자도 선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결정권자는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하고, 업무들이 그 방향에 맞게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하면서 각종 위험을 예측하고 대처를 진두지휘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업무를 A부터 Z까지 점검하여 확인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 사실을 망각하고 하나하나 점검하려 하면 그 조직은 방향을 잃고 망망대해를 헤메이게 될 것입니다.


  둘째, 마이크로 매니징은 구성원의 성장을 저해합니다. 스스로 결정을 내린 뒤 거기에 책임을 지고 문제가 생겼을 때 직접 대처한다는 경험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과정을 얼마나 잘 해내느냐가 선임자의 말만 듣던 수동적인 주니어 사원과 능동적으로 일을 찾아내고 대처하는 시니어 사원을 구분짓기도 합니다. 특히 많은 의사결정을 진행하고 거기에 책임을 지는, 조직을 이끄는 리더로써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성장 과정은 필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정권자가 세밀한 것 하나까지 관리하려 하면 갈수록 구성원은 자신의 생각이 반영된 것은 없다고 느끼게 되고 '내가 한 업무'라는 감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렇게되면 이 구성원은 어차피 결정권자가 다 바꿔버릴 것이라 판단하여 스스로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되어 수동적인 사람이 되어갈 뿐만 아니라 업무에 대한 책임감 또한 없어지게 됩니다. 이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면 주니어 사원은 경력이 쌓이더라도 성장하지 못하고 주니어 수준의 역량에 머물게 되고, 시니어 사원은 점차 주니어 사원처럼 수동적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결정권자는 구성원 한 명의 업무만을 관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방향성을 점검하는데 10분이 소요되고, 전체를 보는데 30분이 걸린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30분이라고 하면 생각보다 얼마 안 걸린다고 느껴질 수 있을 것입니다만, 만약 결정권자에게 소속된 구성원이 5명이라면 어떨까요?  구성원들의 업무는 병렬로 진행되기 마련입니다. 즉 한날 한시에 5명의 구성원이 동시에 컨펌을 요구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방향성만 점검해도 50분이 소요되며 이것은 달리 말하면 마지막에 컨펌을 받아야 하는 구성원은 업무를 계속 진행하려면 50분은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마이크로 매니징까지 겹쳐서 구성원 한 명의 업무를 점검하는데 30분을 소모하면 어떻게 될까요? 5명이면 150분, 즉 점검하는 시간만 2시간 30분이 걸린다는 것이며, 마지막 구성원은 하루 업무 시간의 1/4에 해당하는 2시간을 대기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나. 컨펌 병목현상

  앞서 마이크로 매니징이 위험한 3번째 이유에서 컨펌 시간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이 문제는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이크로 매니징이 되지 않도록 기준을 잘 설정해서 방향성만을 점검한다고 하더라도 구성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컨펌을 위한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단순히 예를 들어서 12명을 컨펌해야 하는 조직이라면 10분씩 점검하더라도 2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마이크로 매니징의 이슈가 아니라 결정권자는 1명인데 그를 통해 결정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컨펌의 병목현상이 문제라고 봐야 하는 것이죠. 이 문제를 계속 방조하게 된다면 컨펌이 지연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수시로 방향을 점검하고 문제를 확인해야 하는 결정권자가 컨펌 보는 것에 매몰되어 배가 망망대해를 떠돌게 되는 것은 매한가지가 됩니다.




다. 결정권자의 부재

  결정권자는 자리를 비워야 하는 경우가 일반 구성원보다 훨씬 비일비재합니다. 개인적 사유에 의한 연차, 병가 외에도 타팀과의 회의, 각종 교육 출타, 리더급의 정기 회의/보고, 각종 면접 등 관리 업무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는 구성원들이 컨펌을 항상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며, 부재중인 상황이 생기면 구성원들은 결정권자가 돌아올 때까지 그저 손놓고 기다릴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결정권자가 며칠간 장기 휴가라도 가는 날에는 그 기간 중 업무가 마비되는 위험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만약 마이크로 매니징과 컨펌 병목현상까지 겹치면 어떻게 될까요? 구성원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부재중 쌓여있을 컨펌 업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며, 다시 자리를 비워야 하는 상황이 오기 전까지 컨펌을 다 끝내지 못하면 결정을 받지 못한 구성원은 또다시 긴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겁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 결정권자가 마이크로 매니징까지 하게 된다면 빠른 일처리는 요원해지겠지요.



3.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이제 각각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컨펌 지연을 최소화하고 업무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겠습니다.


가. 마이크로 매니징 : 선장으로써의 책무

  선장으로써의 책무, 즉 '방향과 문제 점검'에 집중하여 컨펌해야 합니다. 재차 언급하지만, 선장은 갑판장과 갑판원들이 갑판을 어떻게 혹은 잘 닦았는지, 기관실은 잘 정돈되어 있고 기름칠은 되어 있는지 등 일일이 확인하지 않으며, 배가 가야 할 목적지와 주변 문제를 검토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게임의 경우, 아이템의 이름, 컨셉이 무엇인지를 보기 보다는 아이템이 의도에 맞게 획득, 활용, 소모 되고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결정권자는 '업무를 어느 수준의 깊이까지 컨펌할 것인가'를 명확히 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기준을 세우지 않고 그저 때에 맞춰서 '이 정도면 방향성까지만 했겠지'라고만 생각하며 컨펌을 진행하면 컨펌의 깊이에 일관성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동일한 업무를 두번째로 컨펌함에도 불구하고 깊이의 차이가 발생하여 이전에는 언급하지 않았던 것을 이번에 컨펌하거나 반대의 상황 또한 발생하게 되고, 이는 업무 담당자에게도 큰 혼선을 주거나 '지난번에는 아무 말도 없었는데'라는 식의 불만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결정권자 스스로 지침으로 삼고 업무 담당자도 참고할 수 있도록 '방향성, 문제 점검 컨펌의 기준'을 어느정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 컨펌 병목현상 : 조직의 분리

  앞서 2번 항목에서 언급한 것처럼, 컨펌 병목현상은 결정권자 1명당 구성원이 많아지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피해갈 수 없는 문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회사를 넘어서 이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다양한 '조직'들이 왜 '피라미드형 직급 체계'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구조는 단순히 권력 계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권한의 단계'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가령 1,000명의 구성원이 있는 회사가 있다고 했을 때 회사의 꼭대기에 있는 대표가 말단 사원 1명에 대한 것까지 관리할 수 있을까요? 당연히 불가능하겠지요. 조금 더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이는 대통령에게 시골에서 탄생한 어린아이 하나까지 신경써달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거대한 조직을 쪼개고 쪼개서 피라미드 구조로 만든 뒤 중간 관리자를 두어 단계별로 하향식 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조직에 구성원 숫자가 너무 많아져서 결정권자 1명이 관리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빠르게 조직을 개편해야 합니다. 기존의 결정권자의 위치를 한 단계 격상하고 하위 조직을 여러 개로 분리하여 중간 관리자가 관리하게 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동안 봐온 바로는 조직을 분리하려 할 때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합니다. 첫번째는 역시 마이크로 매니징입니다. 기존 결정권자의 위치가 한 단계 격상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더 멀리 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등항해사가 어느 날 선장이 되면 그 신임 선장은 새로 들어온 일등항해사의 업무에 너무 깊이 개입해선 안 됩니다. 하지만 변화된 조직 구조에 적응을 못해서든, 아니면 격상된 결정권자가 욕심이 많아 하위 조직에 계속 개입하든 조직이 커지고 분화되면 마이크로 매니징 문제가 쉽게 발생합니다. 따라서 결정권자(혹은 관리자)는 자신의 위치에선 어느 수준까지 컨펌하고 의견을 전달해야 할지 항상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두번째는 하위 조직을 맡길만한 중간 관리자가 없거나 없어보이는 상황으로, 상당히 딜레마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이런 상황에 봉착했다는 것 자체가 이전에 조직 관리가 잘못되고 있었다 볼 수 있습니다. 모름지기 조직은 언제나 '차기 관리자'를 육성해야 합니다. 언제 조직이 커질지 모르기 때문에 그때를 대비하여 유망한 인재를 발굴, 경험을 쌓게 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어떤 이유 때문이든 조직을 격상하려 하는데 조직 내에서 적당한 중간 관리자를 찾지 못했다면 기존의 결정권자(관리자)가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 이유가 말그대로 관리, 교육이 되지 않았던, 정말 적당한 인재가 없었던(이 경우 새 인재를 영입했어야 합니다) 간에 말이죠.


  어찌 되었든 중간 관리자가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보통 3가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첫번째는 구성원이 증가했지만 그냥 기존의 조직 구조를 유지하는 경우로, 그냥 1명의 결정권자가 20명을 관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은 절대 선택해선 안 되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문제가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고 그냥 방치되어 갈수록 곪아가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컨펌 병목현상으로 업무는 계속 지연되어 일정이 비는 현상이 발생할 것이며 구성원들에 대한 관리는 되지 않으면서 결정권자는 업무 과부하로 번아웃 될 것입니다.

두번째는 외부에서 관리자를 새로 영입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많이 차용하는 형태입니다. 이것은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몇 가지 위험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외부 영입이라 인격, 성격, 업무 스타일 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괜찮을지 알고 채용해서 맡겨보았더니 문제만 더 크게 만들어서 다시 내보내야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문제는 기존보다 더 커지는 것이 될 겁니다. 그 다음은 업무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외부 영입 인재는 현재 조직, 업무의 생태계를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에 최소 2~3달의 적응 기간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은 흔히 '정치'라고도 하는데, 외부에서 들어온 인력이 이후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을 위주로 채용하여 파가 형성되거나, 기존 인력이 외부 인력을 거절하여 파가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번째는 당장 관리자를 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유망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에게 관리자를 맡기고 지켜보는 방법으로, 두번째 방법과 어느 정도 비슷한 선을 달립니다. 외부 영입 인력에 비해 많은 것이 검증되어 있긴 하지만 관리 능력이 검증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그럼에도 외부 영입보다는 장점이긴 하죠)가 있습니다. 또한 기존 인력이라 업무를 파악하는 시간이 절약된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관리를 맡겼는데 잘 해내지 못했을 때 부담을 크게 갖지 않고 내보낼 수 있는 외부 영입과 달리 내부 인력은 직책을 강등해야 하므로 큰 불만을 만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치에 관해서는 아주 없을 것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기존 팀 내부에서 평가가 좋았던 인재라면 외부 영입에 비해서 잡음은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아직은 무엇이 정답이라고는 확실히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차선책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세번째, 내부 인력 중 유망있다 판단되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번째, 업종마다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외부 영입 인력이 업무를 파악하고 난 뒤 관리를 한다는 것은 너무 리스크가 큽니다. 아무래도 장기간 프로젝트에서 일했던 사람과 이제 막 들어온 사람 간에는 도저히 메우기 어려운 프로젝트에 대한 이해도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정말 내부에 격상시킬 인재가 없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내부 인력에게 맡기는 것이 '애매하다'라는 수준이라면 그를 믿고 맡겨 보는 것이 외부 영입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지가 될 것입니다.

두번째, 기존 구성원 간의 신뢰 문제입니다. 일반 구성원과 결정권자 간의 신뢰는 매우 중요합니다. 선원은 선장을 믿고 그의 명령을 의심없이 따를 수 있어야 하며, 선장은 선원을 믿고 방향만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외부 영입은 신뢰 관계가 전혀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일단 서로 '잘할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일까'라는 의심을 전제로 관계를 시작하며 양측 모두 신뢰를 쌓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마련입니다.

마지막으로 관리자 육성의 문제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실 원초적인 문제는 기존의 결정권자가 적절한 중간 관리자를 발굴, 육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서둘러 중간 관리자를 발굴, 육성할 생각은 않고 외부에서 영입할 생각만 한다면 영영 내부에서 새로운 관리자를 얻을 수 없을 것이며 구성원들은 정체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는 조직에게도, 구성원들에게도 좋은 상황이 아닙니다. '늦었을 땐 정말 늦었으니 당장 시작하라'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늦었을 땐 당장 중간 관리자 발굴, 육성을 시작해야만 합니다. 보스와 리더의 차이를 기억하시나요? 보스는 구성원을 이끌지 않고 지시만 하며, 리더는 구성원들의 성장을 유도합니다. 모든 결정권자는 보스가 아닌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다. 리더의 부재 : 의사결정 등급화

  여기선 이를 개선하기 위한 해결 방법 2가지를 제시해보려 합니다.


  첫째는 의사결정 단계를 등급화하는 것입니다. 앞서 마이크로 매니징이 되지않도록 컨펌 범위의 기준이 필요하다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는 다르게 말하면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업무 담당자에게 어느정도 의사결정권을 넘긴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방향성과 관련된 것은 어쩔 수 없이 결정권자의 결정을 기다린다 하더라도, 그외 부분은 업무 담당자가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진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조직에서는 결정권자가 반드시 검토한 뒤 진행해야 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아도 되는 부분을 구분-등급화-하여, 결정권자가 부재중이더라도 담당자가 스스로 결정하여 진행할 수 있는 부분은 진행하게 하여 업무 지연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두번째는 가능하다면 대리 결정권자를 지정하는 것입니다. 결정권자가 장기 출타해야 하는 경우는 방향성 검토에 대한 업무가 모두 중단되어 있다고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회사에는 방향성과 관련하여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무수히 많은 일들이 존재합니다. 어쩌면 매일매일 있기도 하죠. 이런 상황에서 방향성 결정권을 가진 이가 자리를 오래 비우면 조직은 그야말로 멈추게 될 것입니다. 과거, 성공한 모 기업의 대표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격언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내가 없을 때 돌아가지 않을 회사라면 없는 것이 낫다"라는 것이죠. 사수와 부사수 관계를 만들고, 사수가 없어졌을 때 부사수가 그 일을 대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회사 조직 내 구조도 주와 부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즉, 업무 담당자 간에만 사수, 부사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유사시에 결정권자가 없으면 그 결정을 대신 내릴 수 있는 대리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의사결정 등급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피드백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결정권을 넘긴 것에 대해서, 문제가 있어 개선의 여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다른 것이라면 담당자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정당한 사유 없이 결정권자가 담당자의 결정을 번복한다면 결정권을 넘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담당자는 '결정권이 있지만 결정권이 없다'라는 인지를 갖고 좌절하게 됩니다. 불필요하게 업무를 다시 해야함으로써 업무 담당자의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고 시간이 지연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4. 마치며

  결국 컨펌 지연 문제의 근원의 핵심은 2가지인 것 같습니다. 바로 결정권자의 욕심상호 신뢰의 문제입니다. 결정권자의 입장에서는 하나라도 더 많이 챙기고 더 많이 살펴보고 싶어서 자꾸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게 되며, 조직이 커지더라도 세분화하려 하지 않거나 세분화해도 개입하려 하게 됩니다. 또한 구성원에 대한 신뢰가 있다면 마이크로 매니징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며, 조직을 세분화하려 할 때 '애매하다, 불안하다'라는 명목으로 세분화를 하지 않거나 외부 인력을 영입할 이유가 없다 생각합니다. 무조건적인 신뢰도 좋지 않지만 기본적으로 함께 일하는 입장에서는 신뢰가 없는 것보다는 신뢰를 주되, 준 신뢰만큼의 능력을 발휘하는지 점검하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한 배를 타고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선원들은 서로 신뢰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