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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창고_게임/게임 철학

지식의 저주 : 개발자만 재미있으면 망한다

지식의 저주 curse of knowledge

"보다 정보에 익숙한 판매원이 정보가 부족한 판매원의 판단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지식을 알고 있다면 그것이 질문의 응답에 영향을 미쳤고 그 영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따라서, 지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의 상태를 정확하게 재구성할 수 없다.

 

우리는 상대가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개발자가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면 보통 게임이 망하더라고."

 

  제가 아직 경력이 많지 않던 시절에 이미 10년 이상의 경력을 보유하신 업계의 잔뼈 굵은 선배님께서 해주셨던 조언입니다. 당시에도 이 말은 매우 인상 깊게 다가왔는데, 게임 개발을 하면 할수록 이것이 큰 울림이 있는 말이며 알면서도 해소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식의 저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것은 지식을 이미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 지식의 영향에서 벋어날 수 없으며, 지식을 보유하지 않은 사람의 행동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합니다. 이것을 조금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지식을 보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신과 같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오판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게임 개발에서도 여지 없이 드러납니다.

 

  게임 개발자의 대부분은 당연히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하드코어 게이머 출신입니다. 아마 많은 개발자가 패키지 게임을 할 때 기본적으로 Normal 난이도로 시작할 것이며, Story 난이도 같은 것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매운 맛에 익숙해져서 자극이 줄어들면 사람은 갈수록 더 매운 맛을 찾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게임도 어려운 맛에 익숙해지면 갈수록 더 어렵고 복잡한 것을 찾습니다. 게임 개발자는 이미 매운 맛에 익숙해진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게임의 조작, 전략 난이도든 스토리의 깊이 측면에서든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 개발자는 개발을 할 때 자신의 입맛을 기준으로 맞추고는 합니다. 일단 내가 재미있어야 한다는 명목 하에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드려 더 복잡하고, 더 어렵고, 더 난해하고 자극적인 것들을 넣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맛은 꽤 환상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런데 문제는 게임 하나를 2년 3년 이상씩 붙잡고 있다보면, 거기에 너무 익숙해져서 게임이 쉽고 가볍다는 착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발 기간이 수 년이 되기 시작하면 이걸로는 뭔가 부족하지 않냐는 이야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이 지점에서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바로 지식의 저주인 것 같습니다. 가뜩이나 게임 개발자는 하드코어 게이머가 많고, 자신의 게임을 수 년동안 테스트하며 익숙해져 쉽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당연히 이 게임을 처음 즐기게 될 유저들도 그럴 것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면 이 정도는 유저들도 다 알 것이라고 판단하여 튜토리얼까지 소홀히 하기 시작합니다.  지식의 저주에 따르면 아무리 유저의 행동을 유추해도 그들은 항상 정보가 부족할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플랫폼과 장르를 불문하고 이것저것 신작 게임을 하다 보면, 뭔가 게임이 온갖 시스템이나 콘텐츠로 둘둘 말고 있는데, 튜토리얼도 정보도 부족해서 제대로 즐기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아틀리에 시리즈의 팬입니다만, 최신작인 유미아의 아틀리에를 하면서 이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매 아틀리에 시리즈를 재미있게 플레이 했지만, 처음으로 게임이 너무 난해하고 어렵다고 느낀 시리즈.

 

 

게임을 내가 좋아하는 장르나 플랫폼을 벗어나 더 광범위하게 보다 보면, 의외로 시스템이나 콘텐츠가 매우 단순한데 큰 인기를 끄는 게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게임들이 바로 유저의 눈높이를 잘 파악하여 만든 게임인 것은 혹시 아닐까요? 과거에 모 회사에서 동료 분들과 이야기할 때, 전문 개발자가 아니라서 전문 지식이 부족해도, 유저의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게임이 더 잘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걸로 모든 경우를 일반화 시키는 것은 위험하지만, 게임 개발에 매몰되어 있을 때, 혹시 지금 우리가 지식의 저주에 빠져 유저들이 감당하지 못할 것을 만들고 있는 건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 원신의 다음 대규모 업데이트 노드크라이 관련 비하인드 스토리에서, 개발자와 유저 사이의 정보 격차(지식의 저주)를 줄이기 위한 노력에 대해 언급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