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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창고_게임/게임 철학

라이트 유저에게 과친절은 오히려 독

  게임을 개발하다보면 게임 내의 수많은 정보를 유저에게 학습시켜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튜토리얼 뿐만이 아니라 UI 및 UX의 구성까지 포함되는 것인데, 매번 게임을 개발할 때 정보를 어느 수준까지 알려주고, 혹은 축약하거나 숨겨놓을지는 참 골치아픈 문제입니다.

 

이런 결정을 내릴 때 중요하게 이야기 되는 것은 '라이트 유저에게 어디까지 알려주고, 코어 유저에게는 어디까지 정보를 제공할 것인가?'입니다. 이 두 가지는 비슷하지만 의도가 달라서 분리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라이트 유저에게 어디까지 알려주는가'에 대한 것은 의도가 '게임 비숙련자에게 게임의 규칙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단순하게는 게임의 이동 조작 방식과 공격 방식에서 시작해서, 각종 성장 시스템의 성장 방식까지 포함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코어 유저에게 어디까지 정보를 줄 것인가'에 대한 것은, 이들 유저는 숙련자이기 때문에 기본 규칙을 알려주는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이들이 알고 싶어하는 정보는 게임의 더 민감한 정보들입니다. 대표적으로 거의 모든 RPG에서 제공하는 전투통계(피해량, 회복량 등을 체크할 수 있는)라거나, 버프 및 디버프의 보유 현황과 같은 것들입니다.

 

그런데 개발을 하다보면 이 두 의도를 하나로 해석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무조건 많이 알려주는 것이 좋다'라거나 '정보를 빠짐없이 보여주는 것이 좋다'와 같은 식입니다. 많이 그리고 빠짐없이 보여주면 라이트 유저에게는 게임의 자세히 알려줘서 좋은 것이고, 코어 유저에게는 알고 싶은 정보를 낱낱이 보여주니 말입니다. 얼핏보면 이것은 꽤 맞는 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정보를 낱낱이 알고 싶은 니즈로 탄생한 와우의 애드온 적용 화면 (출처 : https://game8483.tistory.com/112)

 

 

학습의 역설

  개발자는 유저가 내가 만든 게임을 하나부터 열까지 맛을 음미하며 즐겨주기를 바랍니다. 또한, 혹시라도 게임의 이 정보를 놓쳐서 이탈하면 어쩌나 싶은 걱정에 사소한 것 하나까지 알려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게임의 UI 및 UX 구성이나 튜토리얼을 소위 말하는 FM 구성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잘 느끼다시피, 유연성 없는 FM 구성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숙련자 혹은 앞으로 숙련될 사람들을 위해서 다소 불친절하지만 빠르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모드를 제공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알려준 것만 생각하고 자발적인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아 하며, 이런 성향은 게임 같은 엔터테인먼트에서는 더 심해지기 때문에, 정말 게임에 진심인 사람이 아니고서야 스스로 모드를 활용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로 플레이 테스트를 해보면 생각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튜토리얼에서 알려준대로만 게임을 즐기고 그외의 기능은 전혀 모른 채로 게임 지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학습하지 못할까 걱정된다고 하여 FM 구성으로 과학습을 시키면, 그것이 아무리 불편하다고 해도 대부분의 사람이 알려준 방식을 계속 그대로 따라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드를 사용하는 방법에 관한 튜토리얼 또 새로 만들어야 하는 걸까요?

 

 

라이트 유저

  라이트 유저.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흔히 이들을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해석하곤 합니다. 많은 개발자들 혹은 게이머들이 생각하기에 이들 유저는, 게임을 잘 하고 싶지만 아직 게임에 익숙하지 않아서 교육 받아야 하는 존재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것은 단언컨데 잘못된 인식입니다.

AFK 새로운 여정의 디렉티 인터뷰를 보면 '라이트 유저는 시간이 지나도 코어가 되지 않습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라이트 유저는 어떻게든 게임의 전문가가 되고 싶은 사람보다는 게임을 스트레스 받지 않고 가볍게 즐기고만 싶은 유저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 시간이 지나서 코어가 되는 사람들은 라이트 유저가 아니라, 잠재적 코어 유저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만약 라이트 유저가 코어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은 게임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받아들이길 원할까요? 게임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하나부터 열까지 설명을 듣고 하기를 원할까요, 아니면 흔히 말하듯 찍먹으로 일단 가볍게 즐겨보고 결정하기를 원할까요? 개인적으로 저는 답은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도 그렇게 설명을 자세히 듣고 접근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만약 식사하러 갔는데 무슨 가게를 가든 음식을 먹기 전에 오마카세처럼 음식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듣고 먹어야 한다면 피곤하기 그지 없을 것입니다.

 

갈수록 떨어지는 문해력이 이 시대의 이슈인데, 설명을 끝까지 듣고 게임을 하길 바래야 할까요?

 

 

인식의 전환

  앞선 내용들을 통해서 우리는 한 가지 결론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라이트 유저를 고려하면 게임에 대한 정보나 학습을 의도적으로 생략하거나 숨겨서 초기에는 다소 불친절한 게임이 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코어 유저 혹은 잠재적 코어 유저는 능동적으로 게임의 구성을 학습하려 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한 정보를 별개의 모드로 빼서 제공하는 것이 좋습니다. 게임 개발자는 대부분 코어 유저로 구성된 경우가 많은데, 만약 코어 유저 입장에서 정보가 모두 한눈에 볼 수 있게 빠져 있는 것이 편하다고 하여, 하나 둘 게임 HUD에 빼내기 시작하면, 나중에는 라이트 유저 입장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과정보가 되어 접근하기도 전에 이탈하게 될 것입니다.

 

호요버스 게임은 전투 중에는 정보를 극단적으로 숨기는데(턴제인데도 불구하고 스킬 설명도 1뎁스에서 볼 수 없고, 버프, 디버프 정보도 일정 갯수가 넘어가면 보여주지 않는다), 이게 접근성에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