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수집형 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보니 시장에 새로 나오는 수집형 게임을 매번 유심히 살펴보는 편입니다. 그런데 지켜보고 있다보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을 발견하고는 합니다. 퀄러티가 괜찮고 유저의 리뷰도 괜찮았지만 생각보다 흥행을 하지 못하는 게임들이 있는가 하면, 의외로 큰 성공을 거두는 게임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단순히 게임의 퀄러티, 운영 방식이나 BM 등의 차이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게임은 누군가를 겨냥하고 만든 콘텐츠이니 과금 유저층에 대한 이해가 다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 번 고찰을 해보았습니다.
두 개의 유저층
뽑기 BM 모델을 채택한 캐릭터 수집형 게임에는 크게 두 가지 유저층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뽑기 게임 유저층하면 대부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변 지인들이나 커뮤니티를 살펴 보니 비슷해보이면서도 결이 다소 다르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가장 큰 결은 바로 덕질을 얼마나 하느냐의 유무입니다. 사실상 이것이 가장 큰 결이자 핵심입니다. 캐릭터 수집형 게임에 대해서는 당연히 덕질 유저가 많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일반적입니다. 덕질을 좋아하니까 캐릭터를 뽑고 싶고 그래서 돈을 쓴다라는 생각. 지금은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10년 전에만 해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아직 한국은 서브컬처에 대한 관심도가 높지 않았고 당시에 흥행했던 수집형 게임은 세븐나이츠, 몬스터 길들이기, 서머너즈워와 같은 스토리나 캐릭터성보다는 PVP나 파밍에 집중한 수집형 게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당시에 캐릭터의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과금하는 사람들은 1차원적인 외형 매력과 성능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서브컬처가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밀리언 아서를 시작으로 소녀전선, 에픽세븐, 붕괴3rd과 같이 캐릭터성과 스토리를 강조한 게임이 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한 뒤라고 생각합니다. 이때부터 성능에만 치중해 왔던 게임들은 서서히 시장에서 퇴장하고 캐릭터성을 강조하는 게임들이 시장에 살아남았으며, 그 정점이 2020년 전후로 완성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에픽세븐, 프린세스 커넥트, 원신, 블루 아카이브 등의 게임이 1~2년 차이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이들 게임 유저는 성능도 성능이지만 캐릭터성(개성에 집중한)과 스토리에 가치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이 흐름이 이야기하는 바는 같은 캐릭터 수집형 장르라고 해도 유저를 분석하는 접근법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수집형 게임을 말하면 후자의 유저층만을 많이 말하는데, 전 여전히 전자의 유저층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그들이 즐길만한 게임이 최근에는 없었을 뿐이고, 이들이 건재하다는 것의 방증이 세븐나이츠 키우기, AFK 새로운 여정과 같은 게임의 흥행이라고 판단합니다.
※ 붕괴 스타레일과 명조. 그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 명조와 붕괴 스타레일을 같이 놓고 보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제 주변의 사람들만 놓고 봐도 두 게임을 보는 시선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둘 다 똑같은 서브컬처 게임이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명조는 캐릭터성이 너무 매력이 없다'라고 말하며, 어떤 사람은 '붕괴 스타레일보다 명조 캐릭터가 더 이쁘고 잘 생겼다'라고 말합니다. 이게 단순히 취향 차이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전 이것이 바로 두 유저층을 가르는 척도라고 생각합니다. 전자의 유저층은 캐릭터성보다는 비주얼만 보고 따지기 때문에 두 게임이 비슷해보이거나, 명조가 더 유려한 느낌이라고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후자의 유저층은 단순히 이쁘냐 잘 생겼냐보다 캐릭터성을 더 따지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 명조는 다소 심심한 느낌이고 캐릭터성이 더욱 강조된 붕괴 스타레일이 입맛에 맞는 것입니다. 어쩌면 명조보다 붕괴 스타레일이 일본에서 더 잘되고 명조가 일본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은, 일본은 덕질 유저층이 더 많으며 그들에게 어필하기엔 캐릭터성이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요? |
대중층과 덕질층
이 두 유저층을 어떻게 구분하면 좋을까요? 저는 대중층과 덕질층으로 구분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유저 수를 놓고 비교해봤을 때 전자의 유저층이 더 풀이 넓기 때문입니다. 최근 지표를 봐도 전자의 게임이 잘될 때는 50만 이상의 MAU를 보유하지만, 후자의 게임은 평균 20~30만으로 봤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기준이 항상 유효한 것은 아닙니다. 시장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럼 두 유저층의 차이는 무엇이 있을까요?
대중층은 게임을 덕질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게임 그 자체로만 보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보다다는 그냥 여흥거리로 보고, 매우 합리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깊이 있게 즐기기보다는 가볍게 즐기고 게임 하나에 대한 충성도, 과금액이 낮습니다. 게임을 시작할 때도 가벼운 흥미만으로도 접근했다가 떠날 때도 쉽게 떠납니다. 마음을 쉽게 여는만큼 쉽게 닫는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들 유저층이 모두 가볍게만 즐기는 것은 아닙니다. 유저 중에는 덕질은 안 하지만 게임을 깊이 있게 즐기는 성능형 유저들도 있는데, 이들 역시 대중층에 속한다고 생각합니다.
덕질층은 게임, 더 정확히는 게임 캐릭터를 덕질의 대상으로 보는 유저층입니다. 게임을 선택하는 기준이 상당히 까다롭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을 열기 매우 어렵지만 일단 열리만 진심을 다합니다. 게임에 대한 충성도도 높고 과금액도 많으며 잔존율도 높습니다. 게임의 깊이에 대한 집착이 크며 매우 깊이 있게 음미합니다. 흔히 콘크리트 유저층이라는 표현도 이들 유저를 겨냥하여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 모바일인덱스의 25년 3월 게임 유저수 순위 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캐릭터 수집형 서브컬처 게임에서 가장 많은 MAU를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호요버스 게임조차도 서브컬처가 아닌 수집형 게임보다 유저수에서 밀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캐릭터 수집형이면 서브컬처를 떠올리고 그러면 호요버스가 가장 많은 유저를 보유하고 있을 것 같지만, 시선을 서브컬처가 아닌 수집형 게임까지 확장해보면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
어느 유저층을 겨냥하는가?
언제나 제 블로그의 글에서 대부분 이야기하듯이 누가 더 옳다거나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저 어느 방향을 겨냥하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타겟층을 겨냥했다면 게임의 모든 구조가 그 방향에 맞춰서 설계됐느냐 입니다.
가령 BM을 예로 들면, 대중층은 과금 저항성이 높고 과금할 때도 효율을 많이 따지기 때문에, 뽑기 BM에만 너무 치중하면 불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호요버스 게임들 혹은 그 회사의 BM을 차용한 게임들이 그러한데, 이들 게임은 캐릭터를 얻기 위한 뽑기 단가가 낮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패키지가 거의 없이 순수하게 다이아 과금으로만 캐릭터를 얻게 만듭니다. 덕질 유저라면 어차피 내가 마음에 들면 뽑을 테니 그래도 괜찮겠지만 대중 유저라면 내가 직접 계산해서 정가 주고 캐릭터를 얻으라고 하면 매우 보수적으로 생각할 게 뻔합니다.
이런 유저들에게는 패키지에 집중한 BM이 효과적입니다. 패키지 BM은 명확한 장단점이 있습니다. 장점은 패키지는 기본적으로 할인율을 갖고 들어가기 때문에 대중층이 상대적으로 너그러이 과금한다는 것입니다. 단점은 패키지는 무한정으로 판매할 수는 없어서 구매 횟수를 제한하는데, 모든 패키지를 사고 나도 패키지 효율에 익숙해져서 대중층이든 덕질층이든 패키지 이외의 것에는 과금을 잘 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은 택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어느 게임 하나를 봤을 때 그 게임은 대중층만 한다, 덕질층만 한다라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게임을 한쪽 층을 겨냥하고 만든다고 해도 런칭하면 당연히 두 층이 모두 유입됩니다. 그리고 게임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한쪽만 남을 수도, 양쪽이 다 남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 흥행하는 게임들의 대부분은 자신들의 게임을 즐기는 유저 성향이 어느쪽이냐를 잘 판단하여 그 선을 잘 지키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 사례로 보는 예시 호요버스 게임은 덕질층 친화적인 게임입니다. 뽑기 확률도 낮은데 패키지를 잘 내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한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수 년 동안 패키지를 내지 않고 게임을 서비스해왔습니다. 그래도 매출이 잘 나왔기 때문입니다. 패키지 같은 것이 없어도 캐릭터가 마음에 들면 많은 과금 유저들이 캐릭터가 나올 때까지 다이아를 계속 충전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 경쟁작이 너무 많아져서 콘크리트층이 많이 빠져나갔기 때문인지 붕괴 스타레일이나 젠레스 존 제로와 같은 후속작에서는 패키지를 출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패키지를 산다고 해서 캐릭터를 얻는 것은 힘듭니다. 그저 뽑기 몇 번을 가볍게 해볼 수 있는 정도입니다. 이전에는 덕질층만으로도 매출이 잘 나왔는데, 어떻게든 대중층의 지갑도 열게 만들기 위해 전략을 바꿨다고 판단합니다. 반면에 니케나 AFK 새로운 여정은 다릅니다. 이들 게임은 상점에 들어가면 무수히 많은 패키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너무 과금 유도가 심한 것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세세하게 따지고 보면 패키지만 구매해도 캐릭터를 하나 획득하기에는 괜찮습니다. 하지만 확률은 확률이기 때문에 패키지를 모두 구매했더라도 캐릭터를 획득하지 못했다면 아마 대부분은 더는 과금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
마치며
지금 현재 트랜드가 어느 쪽이냐고 하면, 당연히 대다수가 생각하듯이 덕질층을 겨냥하는 게 대세라고 저 역시 생각합니다. 니케, 블루 아카이브, 호요버스 게임들이 상위권에 편재해 있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 역시 하게 됩니다. 과거에 세븐나이츠, 서머너즈워 등을 하던 대중층 유저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그들은 시장에서 사라졌을까요, 아니면 단순히 현재 트랜드가 너무 덕질층을 겨냥하다보니 그들이 할 게임이 없는 것일까요? 아직까지 서머너즈 워가 상위권을 지키고 있고, 세븐나이츠 키우기나 AFK 새로운 여정과 같은 게임이 흥행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그들이 즐길만한 게임이 없는 것은 아닐까요? 지금은 수집형 게임을 만드려면 덕질층만을 노리는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다소 확증 편향적인 생각은 아닐까요?(물론 저도 분류하자면 덕질층에 가깝기는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대중층을 겨냥한 게임을 주로 만들며 그 시대를 풍미했던 회사가 바로 넷마블이라고 생각하는데, 넷마블에서 대중층을 겨냥하는 듯한 게임으로 몬길2를 준비 중이니, 이 게임이 빨리 나와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여러모로 상당히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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