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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창고_게임/게임 철학

스테미너(피로도)의 트랜드 변화

 

※ 이 글에서는 피로도, 스테미너 등으로 혼용되는 것을 스테미너로 통칭합니다.


초기의 스테미너

  과거 PC 게임에서 등장하여 모바일 게임까지 넘어온 스테미너는, 라이브 서비스 게임이 유저의 일일 플레이 시간(DT, Daily playTime)을 제어하려는 목적에서 탄생했습니다. 특히 주된 목적은 유저가 게임을 과도하게 하여 지치지 않도록 하면서도, 새로운 업데이트가 출시되기 전까지 콘텐츠 소모 속도를 제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중에서 무엇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콘텐츠 소모 속도 지연입니다. 유저가 게임의 모든 콘텐츠를 완료해서 더 이상 할 게 없어지면 게임을 이탈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개발사는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이를 지연시키려 합니다. 그리고 스테미너로 매일 게임의 진행도를 제한하는 것은 오랜 기간 꽤 잘 동작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게임적으로 재미가 있느냐는 다른 문제입니다. 이 방법은 게임의 경험을 수시로 중단시키기 때문에 몰입 경험을 너무 자주 끊어버립니다. 단발적으로 경험이 끝나는 퍼즐류의 게임과 달리, 특히 스토리가 있고 연속된 경험이 중요한 RPG에서 이것은 꽤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런 형태는 제 생각에 스테미너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10년 이상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기억 상 첫 피로도는 던전앤파이터입니다.

 

스테미너의 변화

  처음 변화를 깨닫게 된 것은 호요버스의 게임에서였습니다. 원신, 붕괴 스타레일, 젠레스 존 제로는 패키지 게임과 모바일 게임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게임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들 게임을 특히 모바일 게임처럼 보이게 만드는 여러 요인 중 가장 큰 것 중 하나는 스테미너(레진, 개척력, 배터리)의 존재와 그것을 통한 성장 속도 제어입니다. 하지만 이전 방식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콘텐츠가 스테미너 혹은 티켓을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원신으로 예를 들면 각종 임무들이나 필드 탐험, 이벤트와 같은 것입니다. 특히 마신 임무 같은 메인 퀘스트는 과거를 생각하면 요구할 법도 하며, 장르적 차이를 따지기에는 MO 방식을 채택한 젠레스 존 제로도 스토리 미션에서는 요구하지 않으니 말입니다.

 

이 구조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 핵심은 수치적 성장 콘텐츠일회성 도전형 콘텐츠의 영역을 분리해서 운영한다는 것입니다.

원신의 레진은 필드 콘텐츠를 즐길 때는 소모되지 않으며, 이런 흐름은 많은 게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젠레스 존 제로의 H.D.D.로 접근하는 미션들은 배터리(스테미너)를 소모하지 않습니다.
젠레스 존 제로에서 배터리(스테미너)는 성장 재료를 획득하는 곳에서만 소모됩니다.

 

정통적인 게임 플레이 방식은 게임의 진행과 캐릭터의 수치적 성장이 항상 하나로 붙어서 진행됐습니다. 다음 스토리, 다음 콘텐츠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캐릭터의 수치적 성장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에 스테미너가 붙다 보니 게임 경험의 흐름을 자꾸 끊는 문제가 생긴 것인데, 이것을 분리하여 스테미너로는 수치적 성장만 제한하고 도전 콘텐츠는 원하는 만큼 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유저는 재미있는 콘텐츠는 원없이 즐길 수 있고, 개발사는 수치적 성장의 속도를 지연시켜 게임의 수명을 길게 가져갈 수 있게 했습니다.

이 방식의 핵심은 바로 수치적 성장 그 자체를 하나의 콘텐츠로 본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는 수치적 성장과 도전 콘텐츠 플레이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들 게임은 두 가지를 독립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 아마 도전형 콘텐츠를 모두 완료해도 수치적 성장이 완성되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 결핍을 느껴서 게임에 잔존한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분리되서 발생할 수 있는 도전형 콘텐츠의 수치적 반영 문제는 보통 레벨 스케일링을 통해서 해결하는 듯 합니다. 즉, 성장을 하지 않아도 메인 퀘스트를 진행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지만, 수치적 성장을 잘 했다면 그걸 후반영해주는 느낌입니다.

 

※ 모험/성장 분리 뿐만이 아니라 자동전투, 소탕, 장비 이전 등 현재 모바일 게임에 있는 많은 기능이 중국 게임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한국/일본보다는 중국 게임 개발사가 게임을 조금 더 열린 마인드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AFK 새로운 여정의 자동사냥 스테이지는 수치적 성장을 완전히 분리한 대표적인 예입니다.

 

 

변화하고 있는 시장

  불과 3~4년 전만 해도 스테미너와 각종 콘텐츠가 하나로 붙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에픽 세븐, 프린세스 커넥트, 블루 아카이브 등 많은 게임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호요버스를 필두로 한 중국 시장이 시장을 주도하는 듯 하더니, 이제 흔히 호요버스식 시스템 구조를 가지고 나온 게임 대부분이 성장과 도전 콘텐츠를 분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과거의 방식과 새로운 방식을 가진 게임이 혼재되어 있는 느낌인데, 장기적으로는 분리된 방식으로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