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유독 눈에 띄게 보이는 흐름이 하나 있는데, 바로 서브컬쳐 게임 시장도 갈수록 패키지 게임의 AAA 전쟁에 뛰어드는 모양새를 띄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PC, 패키지 게임은 이미 꽤 오래 전부터 AAA 전쟁이 됐습니다. 정확히 어느 시점부터 였는지는 불확실하지만(개인적으로는 GTA, 위쳐, 어쌔신크리드 등 오픈월드 RPG가 큰 성공을 거둔 뒤 같고, 이것을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한 게임 업계 자금 유입이 불을 지핀 것 같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콘솔 게임 회사들이 너도나도 천문학적인 개발비를 투자하여 오픈월드 AAA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흐름은 점점 거세지더니 그래픽이 더 좋고, 맵이 더 넓고, 탐험거리가 더 많은 게임판 군비경쟁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고 있듯이 패키지 게임 시장의 몰락이었습니다. 천문학적인 개발비가 들어갔으면 그만큼 회수를 해야 하는데 대부분이 실패했습니다. 코로나는 끝나고 경제는 어려워졌으며, 게이머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플레이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다가, 볼륨만 커지고 재미는 놓치는 경우가 생기다보니, AAA 게임에 부정 여론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곧 이름을 날렸던 수많은 게임 개발 스튜디오가 하나 둘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이 불길이 어느샌가 모바일 서브컬쳐 게임판에도 번진 것 같습니다. 아마 심지 역할을 한 것은 원신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이 게임이 등장하기 전만 해도 중규모의 수집형 게임이 꽤 많았던 것 같은데, 원신이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고 나더니 모두 그 흐름을 따라 개발비 군비경쟁을 시작한 모양새입니다. 원신을 개발한 호요버스의 차기작을 제외하더라도, 타워 오브 판타지, 명조, 명일방주 엔드필드, 이환, 무한대 안단테, 일곱개의 대죄 오리진, 던전앤파이터 아라드, 리 메멘토, 망월, 아주르 프로밀리아, 드래곤 소드... 원신과 같은 흥행을 목표로 한 수백 억대의 대규모 서브컬쳐 게임이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줄을 잇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중 이미 많은 게임이 고베를 마셨거나, 개발한 지 수 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출시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좋은 흐름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업계의 미래를 생각하면 이들 게임이 잘 되어야 하지만 그럴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오픈월드를 탑재한 게임들은 구조상 서브게임이 될 수는 없으니 메인게임이 되어야 할 텐데, 이미 서브컬쳐 오픈월드 게임은 과포화 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나올 오픈월드 게임은 이미 자리를 잘 잡고 있는 게임들(원신, 명조 등)과 경쟁을 해야 할 텐데, 심지어 이들 게임은 패키지와는 다르게 라이브 서비스라서 유저가 새로운 게임으로 잘 옮겨가지 않는 특성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개발비 군비경쟁으로 생각이 흘러가지 않기가 어렵습니다. 게임을 개발하거나 투자를 하는 입장이 되면 온갖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우리 게임이 저런 게임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까, 무언가 더 넣지 않으면 망하는 것은 아닐까. 저 역시 그런 생각에 잡아 먹힐 때가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런 대규모 게임들이 줄을 잇다보니, 중소규모 게임에 대한 유저, 투자, 퍼블리셔의 시선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미 대형 퍼블리셔 겸 개발사가 아니면 웹 게임 수준의 게임만 개발하는 소규모 개발사만 남는 양극화가 심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과거에 갓 오브 워4 디렉터인 코리 발록이 인터뷰에서 말했던 것처럼, 무작정 규모가 큰 게임을 만드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https://www.thisisgame.com/webzine/nboard/263/?n=90241
2025년 2월 현재에도 앞으로 출시를 준비하는 AAA급 오픈월드 서브컬쳐 게임이 무수히 많습니다. 과연 이 중에 몇이나 살아남게 될까요? 각 게임을 하나 개발할 개발비면 중간 규모의 다양한 게임을 서너 개는 내놓을 수 있었을 텐데, 이 게임판 개발비 군비경쟁의 흐름이 게임 업계의 다양성을 헤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현재 패키지 게임이 그 끝에 거의 다다른 모양새이니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져 있을지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부디 너무 어두운 미래가 아니기를 염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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