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블로4도 어느 덧 출시한 지 오래된 게임이 되었고, 수 년간 소문이 무성했던 패스 오브 엑자일2가 최근에 얼리 엑세스로 출시되었습니다. 원래 디아블로4의 개발 초기 모습과 현재 모습에 대해서 글을 쓸 생각이었는데, 마침 패스 오브 엑자일2가 그것을 저격하듯이 출시되어 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이번 글의 주제는 핵 앤 슬래쉬 장르와 전략성에 대해서 입니다.
핵 앤 슬래쉬 장르
이 장르는 먼 옛날부터 우리가 익숙하게 즐겨오던 장르로, 아마 대부분의 한국 사람은 핵 앤 슬래쉬하면 디아블로 시리즈를 떠올릴 것입니다. 지금의 20대분들의 경우는 로스트 아크를 더 많이 떠올리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이 장르하면 흔히 떠올리는 모습은 장르 이름이 자르고 벤다는 의미를 가진 것처럼, 쿼터뷰 베이스의 카메라에서 무수히 몰려오는 몬스터를 시원하게 쓸어버리는 경험을 떠올립니다. 이 모습은 디아블로 뿐만이 아니라 패스 오브 엑자일1, 타이탄 퀘스트, 로스크 아크를 거쳐 우리의 머릿속에 '핵 앤 슬래쉬는 이래야지'라는 느낌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핵 앤 슬래쉬 장르가 주춤하고 나서 등장한 신작들은 이런 모습에 도전장을 내미는 듯 했습니다.
디아블로4
저 역시 디아블로2와 3를 재미있게 즐긴 팬으로써, 디아블로4는 출시 전부터 모든 정보를 찾아볼 정도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돌이켜 보면, 디아블로4 개발자들이 초기에 생각했던 게임의 모습은 지금과는 꽤 달랐던 것 같습니다.
런칭 전에 올라왔던 개발자 노트들, 특히 몬스터에 대한 설명을 보면 꽤 몬스터 군락의 전략성을 강조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디아블로 시리즈에서 몬스터 전략성이라.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이 시리즈를 하면서 전략성을 신경 써 본 사례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정예 몬스터들이 뿌려대던 마법 효과를 제외하면 말이죠. 하지만 이 생각은 디아블로4의 피드백들을 보면서 확신하게 됐습니다. 비공개 테스트부터 올라왔던 수많은 피드백을 보면 몬스터의 수량이나 밀집도가 너무 낮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왜 이들은 초기에 몬스터의 밀집도를 낮게 잡았을까요? 여기서 바로 이 게임의 개발자들이 전략적 전투를 추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레벨 기획의 정석 중 하나는, 몬스터의 밀집도가 높을수록 전략성은 감소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 많아지고, 너무 많은 개체는 유저를 혼란하게 만들어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밀집도가 높은데 전략적인 몬스터 패턴을 만들어 버리면 절대로 클리어 할 수 없는 불합리한 전투가 됩니다. 따라서 몬스터의 밀집도가 높을수록 개별 몬스터의 개성은 낮추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렇게 밀집도 낮은 몬스터의 배치, 초기 개발자 노트 내용, 오픈 필드, 멀티 레이드 등을 미루어 봤을 때 아마 디아블로4 개발자들은 초기에 전략적 전투를 추구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물론 게임은 개발자들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디아블로 전작을 재미있게 즐겼던 유저들은, 전작과 같은 시원한 전투 경험을 원했습니다. 유저들은 몬스터 밀집도와 전투 경험에 대한 반복적인 피드백을 남겼고, 몇 번의 업데이트를 거쳐 현재 디아블로4는 전작들과 더 가까운 전투 경험을 가진 게임이 되었습니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량의 몬스터를 압도적인 능력으로 시원하게 쓸어버리면서 무수히 많이 떨어지는 아이템 사이에서 희귀한 것을 발견하는 것이죠.
핵 앤 슬래쉬 유저가 원하는 것?
이런 모습을 보고 전 핵 앤 슬래쉬 장르의 근본에 대해서 고민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장르를 재미있게 즐긴 유저들은 그 장르에서 어떤 경험을 기대하는 것일까라는 고민. 디아블로4의 사례를 보고 이 아이디어를 처음 정리할 때까지만 해도 정답은 '전략이나 스트레스 요인 없이 시원하게 쓸어버리면서 득템감을 느끼는 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디아블로 시리즈를 여전히 즐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몬스터의 패턴에 대응해야 하는 스트레스 높은 전략적인 전투보다는 최대한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몬스터를 효율적으로 잡으면서, 무수히 떨어지는 아이템 사이에서 극도로 희귀한 장비를 얻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장르는 너프를 하는 경우는 잘 없고 항상 매 시즌보다 더욱 강력한 빌드, 장비가 나오며 몬스터는 그저 잘 맞아주는 역할에 머물러 왔습니다.
하지만 곧 그것을 반박하는 듯한 게임이 출시됐습니다.
패스 오브 엑자일2
패스 오브 엑자일2가 얼리 엑세스로 출시되었습니다. 전작을 나름 재미있게 즐겼던 터라 얼리 엑세스를 구매해서 잠깐 즐겨봤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게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디아블로보다는 오히려 다크소울 같다는 것입니다. 즉, 핵 앤 슬래쉬인데도 불구하고 시원한 전투보다는 전략적인 전투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초반부를 플레이 해보니 쉴 새 없이 구르기로 보스의 공격을 피하거나 방패로 막아야 했고, 조금만 공격 당해도 사망하기 쉽상이라서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또한, 몬스터의 밀집도 역시 상당히 낮은 편이었습니다. 즉, 패스 오브 엑자일2는 어쩌면 디아블로4가 초기에 추구했던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코어 단계에 진입해봐야 알겠지만, 이렇게 되면 기본 전투 경험도, 득템하는 경험도 기존의 핵 앤 슬래쉬와는 꽤 많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현재 이 게임에 대한 평가를 보면 생각보다 양분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어렵고 조작하는 맛이 있어서 미칠 듯 재미있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결국 디아블로처럼 썰고 다니게 될 것이라는 평가도 존재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봤을 때 확실히 이 게임은 기존의 핵 앤 슬래쉬 게임의 공식에 도전장을 내민 게임은 맞는 것 같습니다.
마치며
원래도 패스 오브 엑자일 전작은 복잡한 게임 시스템 때문에라도 대중성이 높은 게임이라고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 이유 때문인지 후속작은 전작에 비해서는 젬 시스템을 다소 경량화 한 것으로 보이는데, 전투가 오히려 어려워져서 얼마나 많은 유저를 안착 시킬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듯 합니다. 그러나 디아블로4가 시원한 전투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차별성을 위해서라도 어렵게 가는 것도 괜찮을 선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여전히 스킬 트리는 복잡하기 때문에 라이트 유저를 잡기는 쉽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전략을 추구했지만 빠르게 기존 핵 앤 슬래쉬의 법칙을 따라간 디아블로4와, 어쩌면 이 게임이 추구했을지도 모를 방향으로 출시된 패스 오브 엑자일2. 전작부터 항상 서로 비교 대상이 되곤 했던 라이벌 격의 두 게임. 과연 1년이 지난 후에 두 게임은 각각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요? 디아블로4는 방향을 바꾼 것을 후회하게 될까요? 아니면 패스 오브 엑자일2도 결국 디아블로4와 같이 쉬워지는 방향을 선택하게 될까요? 그리고 핵 앤 슬래쉬 팬들이 정말 원하는 방향은 무엇일까요? 패스 오브 엑자일2는 핵 앤 슬래쉬 장르의 새 지평을 열었을까요?
아직은 선뜻 무엇이 옳다고 하기에는 시기상조이니, 앞으로 패스 오브 엑자일2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이것을 추측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합니다. :-)
'생각 창고_게임 > 업계 동향' 카테고리의 다른 글
AFK 새로운 여정의 시즌제 운영 뜯어보기 (2) | 2024.11.30 |
---|---|
게임의 새 주요 타겟층 다람쥐 유저 (0) | 2024.11.29 |
2024 게임 개발 업무 AI 활용 후기 (2) | 2024.11.21 |
스테이블 디퓨전AI(그림 AI)와 게임 개발 (2) | 2023.02.07 |
트랜드의 변화 : 대중성과 난이도 (0) | 2021.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