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게임을 하다 보면 다양한 시스템과 콘텐츠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떤 게임의 것은 몇 번을 경험해보아도 이해하기 어렵고, 반면에 어떤 게임의 것은 특별히 경험이나 튜토리얼을 해보지 않아도 딱 봐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이해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배가 고파서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거나, 칼을 갈면 더 날이 잘 든다는 사실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사례로 게임에서 캐릭터가 오랫동안 무언가를 먹지 않아서 배고픔이 생겼을 때 능력치가 감소하거나, 숫돌 아이템을 무기에 사용하면 공격력이 상승한다는 것은 따로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해되는 내용입니다.
게임, 특히 RPG 역시 결국 세계를 기반으로 합니다. 즉, 게임 내의 규칙이나 콘텐츠도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 세계의 규칙이나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시스템이나 규칙을 얼마나 세계에 입각하여 잘 구성하는지에 따라서 굳이 튜토리얼이 필요 없을 정도로 쉽게 이해하거나, 반대로 전혀 이해되지 않아서 아무리 설명해도 모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시스템와 콘텐츠의 직관성 혹은 납득감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게임 플레이 경험상, 몇 번을 해도 규칙을 이해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나 콘텐츠는 규칙과 컨셉(세계관, 설정)이 너무 동떨어져서 납득감이 서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데 머리로 어떻게든 이해하려 노력하는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 시스템이 단순하지 않지만 컨셉과 잘 일치되어 쉽게 납득되었던 시스템은 디아블로2의 룬 시스템이었던 것 같습니다. 무기에 룬을 순서대로 박아서 특정 룬어가 완성되면 마법이 부여된다는 이 시스템은, 수많은 판타지에서 룬 문자를 조합하면 마법이 발생한다는 익숙한 규칙을 적절히 게임에 녹여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비슷한 컨셉을 사용했지만 반대로 너무 어려웠던 시스템은 리니지2 레볼루션의 탈리스만이 있습니다. 규칙이 너무 많고 복잡하여 이 글에서 모두 설명하기 어렵지만, 당시 탈리스만을 보고 느낀 점은, 아이템 아이콘을 위해서 탈리스만이라는 컨셉을 가져오고 나머지 규칙들은 성장 뎁스를 확장하기 좋은 기능들을 억지로 연결해서 붙여 놓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해당 시스템이 나올 당시에는 자사 게임이긴 했지만, 프로젝트를 떠날 때까지 결국 잘 활용하지 못했던 시스템으로 기억이 남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제 생각에는 보통 3가지 경우였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규칙을 먼저 만들고 나중에 컨셉을 붙이는 경우입니다. 아무래도 대규모 인원이 숨 가쁘게 움직이는 개발 현장에서는 아름답게 순서대로 일이 진행되기 어렵다 보니 이런 경우가 꽤 자주 벌어집니다. 두 번째는 컨셉 설정이 있더라도 그것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없이 규칙을 만드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개발자가 규칙에 매몰되는 경우로, 가령 어떤 성장 시스템을 만들거나 콘텐츠를 담당하게 되면, 담당자는 기존의 다른 게임에 없었던 새로운 것을 만드려 하다 보니 기상천외한 규칙들을 붙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면 컨셉 설정과도 멀어지고 온갖 생소한 규칙이 접목된 시스템이 탄생하고는 합니다.
모든 시스템과 콘텐츠를 세계에 입각해서 만들자는 말이 사실 말하기는 쉽고 너무 당연하게 보이지만, 개발 현장에 들어가면 생각보다 잘 안되는 영역인 것 같습니다. 개발 일정상 시스템과 콘텐츠가 준비 전에 컨셉 설정이 나와있는 경우는 거의 없고, 설령 나와 있다고 하더라도 게임에는 설정은 안 보고 전투와 능력치에만 집중하는 유저가 있는 것처럼 개발자 역시 그렇기 때문에, 시스템을 담당하는 개발자에게 설정에 착 붙는 것을 알아서 만들기를 기대하기 것은 어렵습니다. 결국 각 담당자들이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여 완성도 있게 만들지 않는 한, 그것을 책임지고 챙겨야 하는 것은 관리자의 몫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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