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스테이블 디퓨전 AI를 처음 만나서 RnD를 해본 뒤 어느새 2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새 프로젝트를 시작하여 정신없이 달려왔고, AI 역시 나날이 발전해나가는 걸 보면서 회사분들과 적극적으로 AI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활용 시도를 해봤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것에 대한 몇 가지 후기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비프로그램 팀의 자체 업무 툴 개발
가장 유의미했던 부분입니다. 과거에는 어느 팀이든 업무와 관련된 툴이 필요하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항상 프로그램 팀에 요청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Claude, ChatGPT 등의 도움으로 간단한 툴은 각 팀이 직접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서 업무 생산성이 크게 향상될 수 있었습니다. 주로 도움을 받는 영역은 아무래도 단순 반복 업무의 자동화, 작업 편의성 증대 영역인 것 같습니다. 쉽게 말하면 단순 노가다 반복 작업을 버튼 한 번으로 해결해준다거나, 한 눈에 보기 어려운 데이터 구조를 쉽게 확인하게 해준다거나 하는 등입니다.
다만 아무래도 AI가 고도로 정규화된 아키텍트를 가진 코드를 짜주기는 어려워서 고도화 된 툴은 여전히 프로그램 팀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비프로그램팀은 코딩 관련 지식이 없어서 AI가 짜준 코드를 넣어보고 '오, 되네?'라고 하는 정도라서 그것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짜진 것인지는 알아볼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AI를 실제 게임 코드에 활용하는 것은 아직 무리인 듯 합니다.
※ 회사 분께서는 AI가 코딩의 진입장벽을 많이 낮춘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정말 그런가? 라고 생각해봤는데 제 생각에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려면 이것이 사용자의 코딩 실력 향상을 가져와야 하는데 AI를 쓸 줄만 알지 그것의 결과물을 판단하지는 못하니 말입니다. 마치 그림 생성 AI를 쓴다고 해서 그림 그리기 진입 장벽이 낮아졌다고 하긴 어려운 것처럼 말이죠. |
※ 제가 보던 어느 코더 유튜버는 AI 사용을 중단했다는 영상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아마 엉터리 코드를 주는 경우 많아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 그림 생성 AI도 엉터리로 그려준 것을 찾는 공수가 더 들어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
빠르게 퀄러티 높은 레퍼런스 이미지 생성
게임 개발, 특히 시나리오 및 설정 영역은 업무 시간의 대부분을 레퍼런스 이미지를 찾는데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래도 글만으로는 아티스트에게 원하는 느낌을 전달하기가 어려워서 이미지를 다량 첨부해야 되는데, 원하는 비주얼이 머릿속에 있지만 그걸 검색으로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직접 그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죠.
그런데 그림생성 AI 덕분에 기획자가 아티스트에게 원하는 이미지를 설명하기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스테이블 디퓨전 웹버전까지도 사용할 필요도 없이 니지저니 정도면 기획자가 원하는 이미지를 충분히 생성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기획자가 콘텐츠 제작을 할 때 리소스가 나오기를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림생성 AI가 있으면 기다리는 동안 유사한 이미지를 이용해 더미 작업을 쉽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AI 그림에는 한계가 명확합니다. 이 한계에 대해서는 과거에 그림생성 UI RnD 관련 글에서 자세히 다룬 적이 있는데, 그때의 단점이 조금은 개선됐지만 여전히 근본적으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시장이 AI 결과물을 상품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것과는 별개로, 아직 고퀄러티의 상품성 있는 결과물을 기대하기는 여전히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레퍼런스 수집에는 취약
다만 재미있는 것은, 레퍼런스 생성은 빠르게 가능한 편인데 레퍼런스 수집에는 매우 취약했습니다. ChatGPT를 통해서 레퍼런스 수집 시도(뉴스 기사, 인터뷰, 영상 링크 등)를 여러 번 해봤습니다만, 제대로 된 결과를 가져다 준 적이 없습니다. 그냥 단순한 질문으로 정보를 찾아달라고 했을 때, 대답은 잘해주는데 역시나 할루시네이션이 대부분이라서 쓸 수 없었습니다. 정보를 조합하지 말라고 몇 번을 요청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점을 줄이기 위해서 답변의 원본 링크를 달라고 해봤습니다. 그런데 제공된 링크 대부분이 들어갈 수 없는 없는 깨진 링크였습니다. 결국 그냥 구글에서 검색해서 찾아내는 것이 훨씬 빠르게 업무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싶어서 알아보니 크게 2가지 문제가 있는 듯 했습니다. 첫 번째는 저작권 이슈 때문에 AI가 웹 페이지 원본의 이미지, 글, 영상 등의 링크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조건 학습을 거쳐서 새로 생성된 결과만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토큰 문제입니다. AI를 사용하는 것은 막대한 양의 에너지를 요구하기 때문에 클라우드 컴퓨팅을 사용하는 상용 AI는 유료로 사용해도 동시 검색량이나 답변량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많은 정보는 처리할 수 없는 것이죠. 아마 이 두 가지 이슈는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아보입니다.
수학 계산은 할루시네이션 심각
밸런스 작업을 할 때 ChatGPT에게 몇 가지 수학 계산을 시켜본 적이 있습니다. 특히 성장, 보상 밸런스를 할 때면 공식을 통한 결과값 산출이 필요할 때가 많은데, 시뮬레이터가 없어도 AI라면 쉽게 계산해주거나, 혹은 역산해서 공식을 만들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쓸 수 없다'였습니다. LLM에서 주로 발생하는 할루시네이션은 놀랍게도 수학 계산에서도 발생했습니다. 줄줄이 대답은 잘하는데, 그것을 실제로 풀어보면 계산 과정이 엉터리인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잘못을 지적하면 실수했다고 다시 답변을 주지만 그 역시 엉터리입니다. 수학 계산에 최적화됐다는 GPTs나 플러그인을 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AI가 준 답변의 문제를 수정해서 쓰느니 처음부터 직접 계산해서 쓰는 게 훨씬 빨랐습니다.
제 생각에 AI가 수학 계산의 구조를 정확히 알고 쓰는 게 아니라 이것도 그림생성 AI처럼 그럴듯하게 답변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혹은 대중에게 공개된 LLM 자체가 일반적인 질문과 답변을 위한 것이지, 수학 계산 특화가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수학 계산을 하기에는 불필요한 데이터를 너무 많이 학습하고 있는 것이죠. 어쨌든 결론은 실패였습니다.
※ 구글은 AI로 코딩을 전환하고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전의 코드 작성 사례를 통해서 새 코드를 다시 재조립하는 방식이라고 들었는데, 아마 구글처럼 방대한 학습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면 직접 학습 모델을 만들 수 있으니 가능하지 않으려나 싶습니다. 하지만 과연 영세한 회사나 타 개발사의 AI를 쓰는 입장에서 그게 얼마나 가능할 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자사의 보유 학습 데이터를 외부 판매한다는 결정을 내린다면 모르겠습니다만. 상용 게임 엔진처럼 말입니다. |
창의적인 것에 취약
앞서 계속해서 할루시네이션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은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는 개념입니다. 그러면 AI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성하는데에는 뛰어난 효용성을 보였을까요? 답은 아쉽게도 아니다입니다.
첫 시도로는 AI에게 러프 아이디어로 쓸만한 새로운 캐릭터 설정을 몇 개 시켜봤습니다. 그런데 몇 번의 새로운 질문으로 답을 요구해도 AI가 가져오는 답변은 거의 다 비슷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아이디어가 그렇게 매력적이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트랜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아서 올드하기도 하고, 아무리 설정이나 세계관을 설명해도 결과물에 일관성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두 번째로는 캐릭터의 대사 작성을 한 번 시켜봤습니다. 기획자가 직접 제작한 캐릭터 설정 문서를 AI에게 제공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캐릭터의 대사를 작성하도록 요청했습니다. 1차 시도로 그냥 대사 몇 개를 요청합니다. 나름 그럴 듯하게 나옵니다. 2차 시도로 몇 가지 상황, 용도에 맞는 대사를 요청합니다. 갑자기 대사가 딱딱해지거나 이상해지기 시작합니다. 3차 시도로 제공된 두 개의 캐릭터로 특정 상황에 맞는 대화를 요청합니다. 여기서부터는 거의 쓰기 어려운 수준이 됩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AI는 여러가지 변수가 뒤섞인 복잡한 환경에서의 창의적이고 디테일한 작업에는 매우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전제 조건이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하면 거기에 완전히 갇혀서 응용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레벨업 할 때 나오는 대사를 써줘'라고 하면 '레벨업해서 강해졌어!' 같은 식의 1차원적인 대사만 내놓습니다. 또한, 캐릭터성을 고려하여 상황극을 연출하지 못합니다. 특정 상황에 캐릭터가 여럿이 대화하면 각 캐릭터의 설정에 맞춰서 상황에 적합한, 캐릭터간의 관계를 고려한 대사를 써야 하는데 이때도 1차원적으로 대사를 써줍니다. 전투를 목전에 두고 성격 급한 동료는 뒤로 빠지려는 동료에게 '야! 또 어딜 가!!'라는 식으로 화를 내야 하는데, '나는 네가 열심히 싸워줬으면 좋겠어!'식의 판에 박힌 대사를 내놓습니다.
대사를 시켜보고 느낀 것은 이 역시 그림 생성 AI와 비슷하다는 인상이었습니다. 그림 생성 AI 역시 요구가 디테일해질수록 프롬프트에 갇혀서 다채로운 느낌을 내지 못하고 딱 그대로만 내놓는데, 정확히 그런 느낌과 같습니다.
결론 of 2024
이렇게 1년간 AI를 실무 현장에서 내린 결론은 결국 아래와 같습니다.
- 비프로그램 팀의 자체 업무 툴 개발에는 탁월
- 할루시네이션은 여전히 심각해서 문제를 찾느니 처음부터 수작업으로 하는 게 빠름
※ 매 순간의 대화가 사기꾼의 대화라서 긴장하고 봐야 하는 느낌
- 창의적인 것에는 크게 취약 : 일관성 부족, 트랜드 미고려, 입체적인 상황 대응 불가
할루시네이션은 엣지 컴퓨팅으로 하면 해소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분명 코딩이나 수학 계션(예를 들면 밸런스) 등에는 유용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창의적인 것에 대해서는 글쎄요...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AI 전문가를 고액 연봉을 주면서 데려와서 장기간에 걸쳐 학습시켜서 결과물을 뽑는 것보다 그 가격으로 실력 좋은 기획자나 아티스트를 데려오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이제 겨우 AI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2년 밖에 안 됐으니 앞으로 몇 년 뒤에는 어떻게 바뀔 지 모르겠습니다만... 갑자기 AGI가 등장하지 않는 이상은 아직 가까운 미래에는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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