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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창고/업계 동향

트랜드의 변화 : 대중성과 난이도

1. 시작하기 전에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클래식 서버 런칭 당시, 본 서버와 클래식 서버 플레이어 사이에 분쟁이 있었습니다. 이 분쟁의 핵심 중 하나는 '난이도'에 대한 것으로, 클래식 서버는 몬스터 하나 처치도 신중해야 하며, 의도치 않게 몬스터 둘 이상과 전투가 벌어지면 패배하는 것이 거의 확정인 밸런스이지만, 본 서버는 다수 몬스터와의 전투가 일상입니다. 유튜버 김실장 채널에서 왜 와우가 현재와 같이 쉬운 게임으로 변했어야 했는지를 게이밍 트랜드의 변화와 함께 설명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모바일 게임 트랜드와 게임 업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점이라는 생각을 하여 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클래식과 본 서버의 갈등은 주목할만한 이슈였습니다.

 

2. 재미, 성취감 그리고 난이도

  게임의 재미를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바로 '성취감'입니다. 성취감은 우리가 목표했던 무언가를 달성할 때 얻을 수 있는 감정으로, 그것을 달성하고자 하는 간절함, 즉, 달성 과정이 어려울수록 커집니다. 이것을 게임에 대입해보면,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제시하는 어떤 목표와 그것을 달성하는 과정을 구성할 때, 게임의 난이도가 어려울수록 재미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3. 난이도 그리고 대중성

  그렇다면 난이도가 어려우면 게임은 반드시 성공할까요?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라이브 서비스를 하는 게임에서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탈률'입니다. 이탈률이란, 게임에 진입한 플레이어가 특정 지점에서 게임을 얼마나 이탈했는지를 의미합니다. 게임의 난이도가 어렵다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도 줄어들기 때문에 이탈률도 올라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높은 성취감을 주기 위해 난이도가 어렵게 되어 있는 게임을 우리는 흔히 '코어'한 게임 혹은 '마니악'한 게임이라고 부르며, 가장 대표적인 장르로 다크소울로 유명해진 소울라이크 장르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게임은 더 높은 성취감을 제공하니 언제나 더 좋은, 성공한 게임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게임이 코어하고 마니악할수록 성취감을 올라가지만 거기까지 도달하는 플레이어 수는 급격히 낮아져 이탈률은 크게 올라갑니다. 이런 장르는 실력 좋은 플레이어들로 인해 쉽게 유명세를 타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로 인해 지레 겁을 먹고 진입하지 않는 플레이어까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즉, 게임의 잔존 플레이어와 진입 플레이어 모두가 적다는 것인데, 이것은 달리 말하면 게임의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다크소울로 대표되는 소울라이크 장르는, 높은 게임성과 어려운 난이도로 인지도는 매우 높지만 그만큼 높은 이탈률과 낮은 접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4. 대중성 그리고 흥행

 게임이 대중성이 떨어지고 이탈률이 높다는 것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패키지 게임은 플레이어가 이탈하더라도 패키지를 구매할 때 매출이 발생하니 사정이 좀 나은 편이지만, 라이브 서비스를 하는 온라인 게임은 플레이어를 최대한 오랫동안 게임에 유치해야 매출이 발생하는 구조입니다. 정액제 게임은 당연히 플레이어가 오래 남아있을 수록 지속적으로 매출이 발생하며, 부분유료화 게임은 잔존 플레이어가 많아야 상품을 내놓았을 때 그것을 구매할 가능성이 있는 고객층이 많아집니다. 즉, 대중성이 떨어지고 이탈률이 높다는 것은, 곧 흥행 참패를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게임이 매우 잘 만들어져서 대중성이 떨어지더라도 마니아 층이 적극적으로 구매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순 있지만, 냉정하게 흥행 가능성, 실패 위험성을 따지면 마니악한 게임이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5. 그리하여 생긴 흐름

  유튜버 김실장 채널에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가 현재와 같이 '쉬운 게임'으로 변하게 된 이유가 여기에 맞닿아 있습니다. MMORPG가 막 태동했던 시대에는 게임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난이도가 어려워도 공부를 하면서 플레이했으며 다른 게임을 하기에는 게임 종류도 많지 않고 할 거리도 적었던 반면에, 현재는 어려운 난이도에 피로감을 느끼며 도전하기보다는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다른 게임이나 게임 외의 할 거리를 찾기 너무나 쉬운 시대입니다. 이제 게임은 시장 자체가 레드오션이면서도 다른 미디어 콘텐츠와도 경쟁해야 하며, 이런 흐름이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쉽고 가벼운 게임이 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흐름을 한국 게임 업계 역시, 아니 인터넷이 발달한 만큼 더 절실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한국 게임 시장 역시 이미 오래 전에 레드오션이 되었으며, 모바일 게임은 설치가 쉬워진 만큼 게임을 종료, 삭제하기도 쉬워졌습니다. 이런 시대에 게임을 떠나지 않아야 할 압도적인 이유를 제공하지 못한 채 조금이라도 코어하고 마니악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플레이어는 너무나 쉽게 게임을 이탈할 것이고, 이것은 게임의 흥행 참패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즉, 게임 회사 역시 이윤을 추구하는 집단인 이상,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성취감이 큰 게임을 만드는 게 아니라면 게임을 어렵게 만들 이유는 없습니다. 그래서 근래에는 전체적으로 난이도에 의한 성취감이 다소 밋밋한 쉬운 게임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2021년 6월 6일 구글 플레이 스토어 매출 순위 자동전투 게임이 게임성 측면에서 낮은 평가를 받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높은 매출 순위를 유지하는 것은, 자동 때문에 높은 대중성(쉬운 난이도/플레이)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6. 접하기는 쉽지만, 마스터는 불가능하게 (by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큰 재미를 위해 난이도가 어려워진 코어하고 매니악한 게임, 그리고 흥행과 대중성을 위하 난이도를 쉽게 한 게임. 만약 누군가 둘 중 무엇이 옳은지 묻는다면, 틀린 것은 없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대중성을 포기하기에는 이제 게임 개발비는 천문학적 단위로 치솟고 있으며, 대중성만 챙기자니 새로운 게임이 나와도 다 비슷해 보이는 현상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 현상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각자가 생각하는 바가 다르겠지만, 저는 '접근하기는 쉽지만, 마스터는 불가능하게 한다'는 블리자드의 게임 개발 철학이 가장 이상적인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토피아처럼 현실성 없는 이상론처럼 보일 수 있지만, 목표점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게임을 개발하는 우리는, 게임 전반적으로는 대중성을 확보하면서, 엔드 요소에는 큰 성취감을 제공할 수 있는 마니악한 게임성을 찾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블리자드. 그들은 이런 흐름을 느끼고 발맞춰 변했기 때문에 버티고 있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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