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시작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특별히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온 애정을 쏟으며 함께 했던 반려묘 둘을 떠나보내고 장례식장을 찾아갈 일이 많아지자 점점 죽음이라는 것의 현실감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가장 애정을 쏟았던 반려묘가 당뇨에 이어 췌장암으로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과정을 몇 개월간 지켜보고 그로 인한 펫로스 증후군을 극복하는 과정은, 제게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 해보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사후 세계는 존재하는가?"
"내 주변의 모든 것은 결국 떠나가는가?"
"내가 죽으면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죽음에 대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존재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죽음에 관하여는 한번 생각에 빠져들면 증명할 수도 없고 답이 정해지지 않은 수많은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 붙습니다. 대개 머리로는 이것이 부질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만둘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끝없이 부정적인 생각에 빠지고는 합니다. 그래서 더 깊이 굴을 파고 들어가기 전에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던 나와 아주 가까운 이들에게 찾아오던 준비되어 있도록.
비슷한 생각에 빠져 있는 분들 위해서, 앞으로 죽음에 대해 개인적으로 생각해본 것을 2~3개의 글로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 생각 정리에 도움이 된 것들
- 책 '죽음을 배우는 시간'
- 책 '프랭키'
- 철학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
영생은 없다
어린 시절에는 죽음이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연하게 영생을 누리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삶은 너무나 짧습니다. 그 짧은 삶에서 활발하게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시간은 더욱 더 짧습니다.
만화 원피스에서 사람이 죽는 것은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순간이라고 했지만, 제 생각에 이것은 그 이상을 의미합니다. 세월이 흘러 누군가 살았던 흔적도,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사라진다면, 그가 처음부터 없었던 존재라고 해도 그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즉, 죽음은 어떤 면에서는 세상에서 나의 존재 자체가 처음부터 없던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이 영생을 꿈꿉니다. 하지만 현실은 명확합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세계는 언제나 죽음과 탄생을 반복하며 존속해왔습니다. 만약 인간이 영생을 얻는다면 그만큼 큰 부작용이 발생할 것은 자명합니다. 어느 책에서는 만약 100년 전의 사람이 현재에도 살고 있다면 흔히 말하는 패러다임이라는 문화와 기술 변혁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수천 년의 인류 역사 속에서 영생이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것은 따로 언급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설령 미래에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의 인생 내에 나와 모든 주변인에게 찾아오는 행운은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죽음을 피하려는 것은 오직 지적 생명체라는 인류 뿐입니다. 동식물에게는 그저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과정입니다. 죽음에 있어서는 우리도 한 마리의 동물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후에 진행되는 모든 생각은 이렇게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비로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프랭키
"죽음은 삶의 끝일 뿐이다.
시작이 있듯이 끝도 있다. 소시지와 비슷하다.
처음과 끝이 없다면 소시지는 소시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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