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기 전에
책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전에 어떤 계기로 블로그에 반지의 제왕 글을 썼는지 쉬어가는 겸해서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
반지의 제왕과의 만남
지금도 반지의 제왕과의 첫만남이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처음 접한 반지의 제왕 작품은 피터 잭슨의 두 개의 탑 영화였습니다. 고향이 후미진 곳에 있어서 영화관이 없었는데, 이 영화가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자 학교에서 전교생에게 상영을 해줬습니다. 지금도 레골라스가 멋지게 방패를 타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활을 쏠 때 수많은 남학생이 환호성을 지르던 장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당시부터 게임 개발에 대한 꿈을 꾸고 있던 저에게 진짜 지구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그 세계는 지독하게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왕의 귀환까지 모두 개봉하고 나서는 열정적으로 반지의 제왕을 파들어갔습니다. 부모님께 졸라서 확장판 DVD 트릴로지를 구매하여 열번씩 돌려보고, 메이킹 필름을 분석하고 알란 리와 존 하우의 원화집을 사서 따라 그려보기도 했죠.
너무나도 어려운 너라는 실마릴리온
그러다가 고등학생 시절에 영문판 밖에 없었던 실마릴리온의 정식 번역판이 한국에 출간되었습니다. 영화에서 가볍게 다뤄졌던 수많은 과거 이야기가 담겨진 책이라니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당장 구매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처음 펼쳐봤을 때의 감상은 정말 엄청났습니다. 너무나도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실마릴리온은 엄밀히 말하면 소설이 아니고 설정집 혹은 역사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보면 시작부터 모든 발라와 마이아를 한 명씩 설명하면서 이름을 그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로 설명합니다. '유일자는 퀘냐로는 A라고 부르며 놀도린으로는 B라고 했지만 신다린으로는 C...' 이런 식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런 설명 방식은 새로운 명사가 나올 때마다 등장합니다. 또한, 모든 사건이 정직하게 시간 순서로 설명되어 있으며 일종의 꾸밈어나 묘사가 거의 없습니다. 즉, 애정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책 자체는 끔찍하게 재미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실마릴리온은 존 로날드 로웰 톨킨(이하 J.R.R 톨킨)이 직접 출간한 것이 아닙니다. J.R.R 톨킨 사후 그의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은 아버지의 서재에서 완성되지 못한 무수히 많은 원고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는 아버지의 글이 이대로 묻히는 것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여 그 미완의 원고들을 자체 편집하여 책으로 출간했는데 그게 바로 실마릴리온입니다. 즉, 처음부터 재미를 위해 쓰여진 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실마릴리온을!
실마릴리온을 알고 있느냐 모르고 있느냐에 따라서 반지의 제왕, 호빗의 소설 및 영화(특히 확장판)를 보는 경험은 180도 달라집니다. 가볍게 지나갔던 수많은 대사나 단어, 지역, 사물들이 모두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반지 원정대에서 호빗들을 이끌고 늪지를 건너는 아라고른이 홀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서 프로도가 그에게 노래 속의 그녀는 누구냐고 묻자 그가 '루시엔'이라고 답할 때. 대부분의 사람은 그 장면이 그저 슬픈 노래이겠거니 쯤으로 생각하겠지만, 레이시안의 노래 편을 본 사람은 이제 그가 자신과 아르웬의 입장을 똑같이 에다인과 엘다르의 사랑이었지만 행복한 결말을 맺은 베렌과 루시엔에게 비춰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또한, 그리마가 사루만에게 아라고른이 끼고 있었던 반지를 설명하곤 사루만이 '바라히르의 반지'라고 읊조릴 때, 그 반지가 태양 제1시대에 핀로드 펠라군드가 베렌의 아버지 바라히르에게 선물했던 것임을 아느냐 모르느냐로 작품의 몰입감이 크게 차이납니다.
이 경험이 너무 인상깊었던 저는 대학교에 들어서 동기들에게 반지의 제왕과 함께 실마릴리온을 전파하고 다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광신도 같이 보였겠다 싶군요. 그런데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실마릴리온이 너무나도 접근하기 어려운 책이라서 아무리 추천해도 보려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같이 반지의 제왕, 호빗 영화를 보면서 뒷 배경을 설명해주면 하나같이 참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J.R.R 톨킨의 팬으로써 이것이 너무나 안타까웠고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실마릴리온의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간단히 정리해보자."
그렇게 대학생 시절부터 시작했던 정리는 졸업 전에 태양 제1시대까지 완료했으나, 취업과 블로그 이전 등의 이슈로 10년 가까이 멈춰있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아마존 프라임에서 힘의 반지라는 태양 제2시대 배경의 드라마를 하는 것을 보고, 잠시 일을 쉬고 있는 이때 마음 한켠에 남아있던 이 정리 작업을 끝마쳐야 겠다 싶어 다시 리뉴얼 작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
책 소개
본 블로그의 반지의 제왕 역사글은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만들기 위해서 대단히 많은 내용을 축약했습니다. 수많은 지명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서사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보충적 사건이나 이름은 언급되지만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은 인물은 아예 생략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본 블로그의 글을 보고 실마릴리온에 관심이 생기신 분들이라면 아래의 책들을 한번쯤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실마릴리온(The Silmarillion)
실마릴리온의 최신 개정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J.R.R 톨킨의 출판되지 못한 원고를 그의 아들 크리스토퍼 톨킨이 하나로 엮어서 낸 책입니다. 반지의 제왕 세계의 유일신을 설명하는 아이눌린달레부터 가장 마지막 역사까지 세계 전체를 다루고 있습니다. 또한, 부록 부분에는 요정과 인간(에다인) 일가의 가계도와 톨킨의 세계에 등장하는 요정어의 표기법과 단어들도 있습니다.
사실 이 책 하나만으로도 세계의 절반 이상은 알 수 있어서 한권으로 끝내고 싶다면 제일 좋긴 합니다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책이 너무 어렵고 딱딱한 서술 방식을 쓰고 있기 때문에, 아직 충분히 흥미가 생기신 게 아니라면 다른 책을 먼저 읽고 접하시길 추천합니다.
다만, 제가 읽었던 2007년 출간본과는 출판사도 역자가 바뀌었기 때문에 고유명사를 읽는 방법이 조금 달라졌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옮긴이가 그대로고 J.R.R 톨킨의 IP를 관리하는 톨킨 재단에서 판권을 구매해간 곳에 번역 가이드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으므로 읽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후린의 아이들(The Children of Hurin)
퀜타 실마릴리온의 내용 중 나른 이 힌 후린(후린의 아이들)의 소설입니다.
J.R.R. 톨킨의 미출간 원고 중 그래도 소설의 형태로 남아있는 것이 두 개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이 후린의 아이들입니다. 본 블로그의 글 중에서 나른 이 힌 후린이라고 표기된 후린의 아이들, 즉 투린 투람바르에 관한 이야기를 풀버전으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확인을 해보니 현재는 판권 소멸 등으로 절판이 된 상태인데 중고 서점이나 대형 서점 등에서 남은 것이 있는지 한 번 찾아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만약 찾지 못했다면 영어 독해가 가능하신 경우 해외 직구로 영문판을 구매하는 것을 추천드리며, 그게 어렵다면 큰 틀은 실마릴리온에 있는 것으로 봐도 괜찮기 때문에 그쪽으로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곤돌린의 몰락(The Fall of Gondolin)
퀜타 실마릴리온의 내용 중 투오르의 여정부터 곤돌린의 몰락을 다룬 소설입니다.
J.R.R 톨킨의 미출간 원고 중 소설의 형태로 남아있는 것 중 하나입니다. 곤돌린으로 가는 후오르의 아들 투오르의 여정부터 곤돌린이 몰락하는 과정을 자세히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안타깝게도 국내에 정발된 적이 없기 때문에 영어 원서만 해외 직구로 구할 수 있습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UnFinished Tales)
J.R.R 톨킨의 미출판 원고의 원본들을 그 어떤 편집도 없이 있는 그대로 모두 옮겨둔 설정집입니다.
앞서 실마릴리온은 크리스토퍼 톨킨이 아버지의 미출간 원고를 자체적으로 엮어낸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는 생전에 아버지의 글을 자체적으로 편집한 게 계속 마음에 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의 원고를 그 어떤 수정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엮어서 책으로 출간했는데 이것이 바로 이 책입니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소설이나 설정집이라기보다는 거의 J.R.R 톨킨의 아이디어 노트 모음집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설정이 서로 충돌하는 것도 있고, 이전에 있던 설정이 지워지거나 바뀐 것도 존재합니다. 또한, 내용이 너무 디테일하여 실제로 정식 출간본에서는 다루지 않은 뒷배경 설정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영어권에는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한글 정발된지는 얼마 되지 않아서 저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정식 출간된 모든 것을 읽고도 더 세계를 깊이 알고 싶으시다면 추천드리는 책입니다.
※ 톨킨 팬 사이에서는 설정이 충돌하는 이 모든 것을 전부 통틀어서 레젠다리움-Legendarium-이라고 부릅니다.
재미있게도 팬들 사이에서는 레젠다리움의 충돌하는 설정 전부를 받아들이자는 움직임이 대세입니다.
그래서 톨킨이 언급하지 않은 것을 함부로 추측하거나 덧붙이지 말자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마치며
태양 제2시대나 3시대를 다루는 작품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아칼라베스도 간략히 정리해서 올릴 예정이고, 관련 작품은 각 시대를 다룰 때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제3시대는 이미 잘 나와있는 정발 소설이 많기 때문에 제가 따로 각색 정리해서 올리기 보다는 주로 기존 작품을 소개하는 형태로 진행할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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