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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창고_그 외/철학 화두

철학자의 철학적 사조는 사후 체계

  전문적으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가벼운 마음으로 정보를 찾으며 공부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중요한 실수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보통 우리가 어떤 학문을 공부할 때는 범주를 명확히 정해놓고 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과학 분야라고 한다면, 물리학, 생물학, 화학 등 분류를 선택해서 그것을 파고 드는 방식입니다. 이것은 비단 과학 뿐만이 아니라 어떤 학문이나 전문직 분야를 막론하고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 공부를 처음 접할 때도 '어떤 분야의 철학에 관심이 있으니 그 분야를 공부해봐야지'라는 마음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러나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무언가 묘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을 알아보기 위해서 그것에 대해 조사하면 분명 니체나 알베르 카뮈와 같은 철학가들이 나오는데, 막상 그들에 대해 알아보면 '실존주의 철학자로 분류되기를 거부했다'라거나 '실존주의 철학자라고 스스로 말한 적이 없다'라는 식의 정보가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못된 정보를 찾았거나 Philosophy Sage GPTs가 할루시네이션이 빠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AI와의 질답을 주고 받다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철학자의 철학적 사조는 그들이 살아있을 때가 아니라, 후대의 해석에 의해 분류되는 사후 체계라는 것입니다. 니체를 예로 들면, 그의 초인과 영원회귀와 같은 사상은 틀림없이 실존주의 철학과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전에는 실존주의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후에 그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후대 철학가들의 그의 철학을 실존주의로 분류한 것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실존주의 철학에 닿아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또한, 알베르 카뮈는 자신의 철학이 실존주의 철학자로 불리기 보다는 부조리 철학자로 불리길 원했다고 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생각해보니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였습니다. 철학은 원래 개인의 사고와 질문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어떤 문제에 대해서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탐구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존 혹은 후대의 철학과 유사성을 보임으로써, 어느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연결되는 형태인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새로운 철학적 사조를 창조하거나 넘어서려는 경향이 있다고도 합니다. 즉, 철학적 사조는 철학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가두기 위한 분류가 아니라, 철학자들을 설명하기 위해 붙여진 편리한 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을 알아보면 자주 등장하는 니체. 하지만 그의 생전에 실존주의라는 개념은 없었다.

 

  이것을 깨달은 뒤부터는 철학적 사조, 분류를 나누어 알아보는 것보다는, 평소에 궁금하거나 의문을 갖고 있었던 문제를 나만의 생각으로 최대한 깊이 파고 들어보고, 생각이 어느정도 정리되거나 막힘이 생겼을 때 다른 철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아보는 형태로 방식을 변경했습니다. 그랬더니 기존보다 훨씬 생각이 열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혹시 저처럼 철학적 사조 분류에 생각이 갇혀있는 분이 계실까 하여 글을 남겨 봅니다. :-)

 

※ 아래는 ChatGPT의 Philosophy Sage와의 대화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