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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그린 그림에서 감정을 느낄 수 있는가

꿈러기 2024. 11. 24. 15:37

  한창 스테이블 디퓨전 AI가 각광 받기 시작했을 무렵, 미국에 한 사건이 크게 주목 받았습니다. 바로 아트 관련 대회에서 AI가 그린 그림이 입상한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AI 그림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그중 흔히 많이 오간 이야기 중 하나가, AI가 그리는 그림은 그럴 듯 하게 보이지만 거기서 어떤 감정을 느낄 수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AI는 어떤 의도나 감정을 담아서 그림을 그리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경우는 AI가 그린 그림에서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AI의 그림에는 아무런 감정도 감동도 느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답변을 할 수 있을까요? 제가 느끼는 그 감정은 거짓이었을까요? 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2022년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에서 입상한 AI의 그림

 

 

원래 사람이 만들지 않은 것에도 감동을 느낀다.

  우리는 감정, 감동이라는 것을 언제 느낄까요? 우리는 타인을 볼 때 감정을 느낍니다. 어떤 사람을 보고 멋지다, 예쁘다, 아름답다, 예술적이다 같은 감상평을 흔히 늘어놓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실존주의 관점에서 봤을 때 어떤 의도 하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는 여러가지 동물을 보고 감정을 느낍니다. 고양이를 보고 귀엽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사자를 보고 무섭다고 생각하는 한 편, 호랑이를 보고 멋지다가 느끼기도 합니다. 물론 동물 역시 우리 사람처럼 어떤 의도 하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을 보고도 감정을 느낍니다. 경이롭다거나 장엄하다, 아름답다 심지어 예술적이라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연의 생김새에는 어떤 의미나 의도가 담겨있지 않습니다.

 

즉, 사람은 원래부터 사람이 만들지 않은 것에, 의도나 감정이 담기지 않은 것에 감정을 느껴왔다는 것입니다.

 

고양이는 분명 귀엽지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감동, 감정은 개인적 감상이다

  제 생각에 AI 그림에 감정이나 감동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예술은 창작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일반인이 아무 의미 없이 휘갈긴 그림을 고가에 구매하는 등의 현대 미술을 비판하는 수많은 사회 실험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것은 잘못된 사실입니다. 우리는 예술에서만 감동이나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며, 그런 것을 느끼는 것은 대상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라는 것입니다.

 

제작자가 무엇을 의도했든 혹은 의도가 없었든 감상은 관찰자의 몫입니다.

 

 

AI가 그린 그림은 예술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AI가 그린 그림을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예술의 사전적 의미는 감상 대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이자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것에는 해석하기에 따라 다양한 여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AI가 생성하는 그림은 인간 활동의 결과를 학습한 것입니다.
그리고 AI가 생성하는 그림도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인간의 활동이자 의도입니다.

 

인간 활동의 결과로 학습했으면서 인간의 의도를 반영하여 탄생한 AI의 그림. 그리고 우리는 그것에서 어떤 감동과 감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예술이라고 부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

 

※ 이것은 딱히 AI의 결과물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입장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AI 그림에 대해 열린 시각을 제공하는 것이며, 원작자가 직접 자신의 그림을 이용해서 학습, 생성하는 등의 저작권 이슈가 해결된다고 한다면, 그것이 AI를 통해 생성됐다고 해서 부정할 필요는 없다는 관점에 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