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서재/[연대] 반지의 제왕

2-25. 퀜타 실마릴리온 : [태양 제1시대] 나른 이 힌 후린 - 4

꿈러기 2023. 3. 4. 17:21
※ 알리는 글
● 본 블로그의 반지의 제왕 역사 시리즈는 읽는 재미를 위해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내용, 표현에 살을 붙이고 있습니다. 
● 나른 이 힌 후린은 '후린의 아이들'이라는 뜻으로, 하도르 일가의 후린의 자녀들에게 일어난 비극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귀향

어미와 동생의 비참함을 외면하고 달려드는구나...

홀로 엘다르 왕자처럼...

일족을 버린 자...

핀두일라스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투린! 도와주세요, 투린! 투린...!어떻게 하겠느냐? 후린의 아들 투린이여... 큭큭큭

 

"헉...헉... 어머니... 니에노르... 조금만 기다려..."

 

  한때 발라 울모의 축복을 받아 영험한 기운을 발하고 있었지만 앙그반드의 타락에 물들고 혹한의 겨울에 의해 완전히 얼어붙어버린 이브린 호수. 투린은 동굴 속의 메아리처럼 머릿속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글라우룽의 교활한 음성을 필사적으로 뿌리치면서 고향땅 도르로민을 향해 북쪽으로 나아갔습니다. 한시도 쉬지 않고 뛴 탓에 온몸은 지치고 목은 말라비틀어져 피가 날 듯했지만 얼어붙은 이브린 호수는 그에게 목을 축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투린. 그러나 멀리 보이는 고향 집에서는 어떤 따스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고 폐가처럼 보였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애써 떨쳐내면서 다급히 집으로 달려간 그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아무도 살지 않게 된 듯한 모습. 망연자실하여 산이 무너져 내리듯 털썩 주저앉은 그에게 갑작스레 누군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고향집에 도착한 투린 by Ted Nasmith

 

"혹시... 투린 님이십니까...?"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 보이는 노인. 투린을 높여 부른 그는 자신을 투린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모르웬을 모셨던 하인이라고 소개했습니다. 투린은 그에게 어머니와 여동생의 행방을 물어보았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어느 날 갑자기 말도 없이 행방불명이 되었고 시체는 발견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아직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것. 투린은 그들의 행방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노인과 오랜 이야기를 나누었고, 마침내 아이린이라는 친척이 몰래 투린 가족을 도와주곤 했으니 만약 정보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녀가 유일할 것이라는 조언을 얻었습니다. 그 이름을 듣고 투린은 기억 저편에서 남몰래 망토로 정체를 숨기고 집에 찾아와 먹을 것을 건네줬던 여인을 기억해 냈습니다. 투린은 곧장 아이린의 남편 동부인 브롯다의 집을 찾아가 발로 문을 박차고 들어갔습니다.

 

"뭐, 뭐야! 네 녀석은 누구냐!"

"생김새를 보아하니 에다인인 것 같은데 건방지게 짝이 없군.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집에는 브롯다를 포함한 다수의 동부인이 상다리가 휘어지게 차려놓고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투린의 눈에는 곧 쓰러질 듯 말라비틀어진 하인의 모습과 폐가가 되어버린 집, 자신과 동생 니에노르를 위해 힘든 생활을 견딘 어머니의 모습이 비쳤고, 이 탐욕스러운 자들이 자신의 가족을 해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자 오장 육부가 뒤틀리면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가 끓어올랐습니다. 투린은 전에 볼 수 없던 공포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는 한 손에는 검은 검 앙글라켈을 든 채 앞으로 나아가 브롯다의 멱살을 움켜쥐었고, 그의 위압감에 겁을 먹은 동부인들은 겁을 먹고 뒷걸음질 쳤습니다.

 

"모르웬과 그녀의 딸은 어디 있지? 네놈들이 해쳤나?"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이거 안 놔?!"

"자, 잠시만요! 진정하세요."

 

다급히 앞으로 달려 나와 투린의 손을 잡는 여성, 바로 아이린이었습니다.

 

"모르웬과 니에노르는 안전해요.

 남쪽에서 검은 칼이 활약해서 안전해졌다는 소식이 들리자 탈출시킨 아들을 찾아 도리아스로 떠났어요..."

"뭐라고...?"

 

아이린의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투린은 머릿속이 명료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사리분별이 명확해지더니 이내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습니다. 사실 가족들이 위험하다는 말은 전혀 근거 없는 새빨간 거짓말이었으며 이 모든 것이 글라우룽의 속임수였던 것입니다. 투린은 엄청난 분노에 휩싸여 방안에 있던 모든 동부인을 남김없이 베어버린 후 구석에서 떨고 있는 아이린을 그대로 둔 채 황급히 도망쳐 나왔습니다. 투린은 하도르 일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지만 그에게 내려진 저주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떠나길 원했습니다. 투린은 가족도 못 만나고 고향에서도 환영받지 못하자 참담한 심정이었지만, 적어도 가족이 벨레리안드에서 가장 안전한 도리아스에 있으며 자신이 싸운 덕분에 그들이 무사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그에게는 서둘러야 하는 일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투린! 도와주세요, 투린! 투린...!

 

투린은 나르고스론드의 포로를 끌고 이동하는 오르크들을 추격하기 위해 서둘러 길을 떠났습니다.

 

 

지키지 못한 약속

  투린은 먹이를 찾는 굶주린 짐승처럼 적의 자취를 쫓기 시작했지만 나르고스론드를 떠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구석구석 흔적을 찾으며 점점 남쪽으로 내려오던 그는 결국 브레실 숲에 이르렀는데, 거기서 오르크들에게 포위당한 에다인 사람들을 발견하여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전장으로 뛰어들었습니다.

 

"크륵. 뭐야 새로운 인간인가. 한 놈쯤 늘어 봐야..."

"아, 아니야... 저걸 봐라!"

"검은 검... 검은 검이다! 도망쳐!"

 

오르크들은 투린이 나타나자마자 그가 손에 쥐고 있었던 검은 검 앙글라켈을 보고는 공포에 질려 달아나고 말았습니다. 상황이 안전해지자 위기를 모면한 사람들 중 하나가 다가와 말을 건넸습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우리는 할레스 일가 사람들입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보아하니 갈 곳이 없어 많이 지치신 듯 보이는데...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와..."

"아닙니다. 전 급히 가야할 곳이 있습니다."

"무슨 일인지 여쭤도 괜찮을까요? 저희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도 모르니..."

"포로를 이송중인 놈들을 쫓고 있습니다. 그들 중 서거하신 오로드레스 폐하의 따님이."

"그렇다면 애석하게도 한 발 늦으셨군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가 이야기해 준 사건의 전말은 이랬습니다. 숲속을 정찰하고 있던 할레스 일가 사람들은 포로를 대동하고 있는 오르크 무리를 발견하여 그들을 구하기 위해 기습 공격을 감행했지만,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오르크들은 가장 먼저 포로들을 죽였던 것입니다. 그중 아름다운 놀도르 여인 하나가 투린이라는 자를 만나거든 자신이 여기에 있음을 전해주기를 간곡히 부탁하고 안타깝게도 숨을 거두었으며 그들은 그녀를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고 그곳을 요정 처녀의 무덤이라는 뜻의 하우드엔엘레스라고 이름 지었다고 했습니다. 투린은 그들에게 그녀가 묻힌 곳으로 안내해달라고 부탁했고, 도착하자 그는 무덤을 껴안고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미안해요... 핀두일라스... 정말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귄도르.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요... 제가 다 망쳤어요, 제가... 으흐흑..."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브레실 사람은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나르고스론드부터 시작된 포로를 찾는 모험, 그가 지니고 있는 오르크들이 두려워했던 검은 검. 그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이 남자가 바로 후린의 아들 투린이며 잠깐이지만 북부의 평화를 가져왔던 검은 검 모르메길이 틀림없었습니다.

 

핀두일라스의 무덤 위에서 울고 있는 투린 by Ted Nasmith

 

 

새로운 출발

  브레실 사람들은 울다가 지쳐쓰러진 투린을 부축하여 브레실 숲 중앙에 있는 아몬 오벨 산에 숨겨진 할레스 일가의 은신처 에펠 브란디르로 데려왔습니다. 한디르의 아들 브란디르는 성격이 온순하고 어린 시절부터 한쪽 다리를 절었기 때문에 전투를 즐기지 않고 매사에 조심스러운 자로, 그는 아버지처럼 북부의 세력에 대항하여 싸우기보다는 사람들을 이끌고 산속에 조용히 숨어있기를 선택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투린의 정체를 알고 나서는 모르고스의 저주가 내린 그를 썩 달가워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칠 대로 지쳐있는 투린의 모습에 연민의 정이 일어난 그는 투린을 치료해 주었고, 투린은 다음 해 봄이 올 때 즈음에 드디어 기운을 차리고 일어났습니다.

 

"기운은 차렸소? 투린"

"고맙습니다. 브린디르..."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해 봤소? 가족이 있는 도리아스로 간다거나?"

"제게 내린 저주가 가족까지 해칠지도 모르는데 그럴 순 없어요."

"... 그렇다면?"

"괜찮다면... 나를 받아주실 순 없습니까?"

"당신에게 내린 저주는?"

"다행히 아직 제 행방을 아는 사람은 이곳 사람들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제 본명과 출신을 잊어주신다면 이름을 바꾸고 운명을 피해보고자 합니다."

"그 검은 검은 어떻게 할 것이오?"

"다시는 사용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정체가 탄로 날지도 모르니까요."

"음... 당신이 우리 일행을 구해준 것은 사실이니... 좋소."

"감사합니다... 제 검은 앞으로 할레스 일가를 지킬 겁니다."

"새로운 이름은 생각해 봤소?"

"투람바르..."

"투람바르? 에다인의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뜻이오?"

"놀도르어로 운명의 주인입니다."

 

이후 투린 투람바르는 할레스 일가의 사람이 되어 브레실 숲을 지켰으며 감히 오르크가 핀두일라스가 잠든 하우드엔엘레스에 접근하는 것을 용납지 않았기 때문에 종종 그 근처로 순찰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거대한 폭풍우와 함께 천둥번개가 고함을 치고 있던 어느 날, 투린은 또다시 하우드엔엘레스 인근에서 오르크가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경비병들과 함께 근처를 순찰하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핀두일라스가 잠든 장소에 도착하자 투린 일행은 평소와는 다른 낯선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투람바르. 저기 좀 보세요."

"저건... 사람? 그것도 젊은 여인이 아닌가!"

 

핀두일라스의 무덤에서 여인을 발견한 투린 by Ted Nasmith

 

놀랍게도 에다인 여인 하나가 발가벗은 채 하우드엔엘레스 위에서 공포에 질려 엎드려 있었던 것입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흘러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여인. 잔뜩 겁을 먹은 그녀는 투린 일행이 다가오자 뒤로 물러나려 했습니다. 투린은 그녀가 도망치지 않도록 부하들을 뒤로 물린 뒤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그에게서는 어떤 안도감을 얻었는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품속에 안겼습니다.

 

"괜찮습니까?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고향은 어디예요?"

"아, 아아... 아어아... 아아..."

 

여인은 답하는 것은 물론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어떤 부상으로 인해 못한다기보다는 애초에 말하는 법을 모르는 듯했습니다. 또한 행동하는 것도 어린아이와 같았으니 그야말로 몸만 성인이지 알맹이는 갓난 아기와 같았습니다. 투린에게 달라붙은 여인은 웬만해서는 그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으며 그 역시 그런 그녀를 안타깝게 생각하여 긴급히 여인을 데리고 에펠 브란디르로 돌아왔습니다.

 

브레실 숲 사람들은 심신이 지쳐있는 여인을 정성껏 보살피고 말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마침내 그녀는 평범한 사람처럼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투린은 이름도 출신도 모르는 이 여인에게 눈물의 여인이라는 뜻의 니니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에펠 브란디르의 생활이 익숙해지자 밝은 성격을 가진 그녀는 금세 사람들과 친해졌고 많은 이들이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니니엘 역시 사람들을 가족처럼 여겼는데 특히 그녀의 관심은 자신을 구해줬으며 묘하게 이끌림이 있었던 투린에게 향했습니다. 때마침 투린 역시 그녀에게 이끌림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녀에게 청혼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뜻밖이었습니다.

 

"투람바르, 저 역시 당신을 사랑해요. 하지만..."

"무슨 일이에요. 니니엘. 무엇이 그렇게 걱정되는 겁니까?"

"그게... 그러니까..."

"좋아요, 니니엘. 만약에 당신이 내 청혼을 거절한다면 나는 다시 먼 과거처럼 황야의 싸움터로 나갈 겁니다."

"네, 네?"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을 거예요. 일 년, 아니 어쩌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요."

"그런..."

"하지만 당신이 청혼을 받아준다면 우리의 집이 위험에 빠지지 않는 한 당신을 두고 전쟁터에 나가지 않겠어요."

"그게 정말인가요...?"

"맹세해요!"

"좋아요...! 투람바르!"

 

잠시 망설이기는 했지만 투린의 선언과 맹세에 감동한 니니엘은 기쁜 마음으로 청혼을 받아들였고 둘은 에펠 브란디르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때 석연치 않은 마음으로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할레스 일가 사람들의 우두머리 브란디르였습니다. 사실 니니엘이 투린의 청혼을 한 번에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그가 그녀에게 함부로 청혼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경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역시 그녀를 마음 깊이 사랑했지만 그가 경고한 것은 그 이유뿐만은 아니었습니다. 브란디르는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둘의 관계에서 불길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투린이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저주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입니다.

 

투린과 니니엘 by Ember Rose Art

 

용 사냥

  두 사람이 결혼한 그 해 겨울. 앙그반드의 세력은 브레실 숲을 공략하기 위해 다시 거대한 군대를 움직였습니다. 할레스 일가 사람들은 전투를 준비했지만 투린은 니니엘과의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전투는 안타깝게도 브레실 일가의 참패로 끝났고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가장 도움이 필요한 시기에 동지들을 저버렸다며 투린을 비난했습니다. 결국 그는 절대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던 검은 검 앙글라켈을 들고 다시 전쟁터로 나아갔으며, 사라졌던 검은 검이 나타나자 오르크들은 혼비백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검은 검의 소문은 뜻하지 않게 멀리 퍼져나가 옛 나르고스론드 왕국까지 도달하니, 동굴 깊은 곳에서 놀도르의 보물을 침실 삼아 누워 있던 글라우룽은 음흉한 웃음을 띠며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다음 해 봄이 되자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동시에 날아들었습니다. 니니엘이 마침내 투린의 아이를 임신했으며 그와 비슷한 시기에 거대한 용 글라우룽이 나르고스론드를 나와 북쪽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 것입니다. 브레실 숲 사람들은 용이 이곳을 지나쳐 앙그반드로 가길 원했으나 용은 근처 서쪽 강에 자리를 잡았고 이는 더 이상 이 공포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투린은 탈라스 디르넨 전투 당시의 일을 떠올렸습니다. 아무리 많은 숫자가 몰려간다고 해도 용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절실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용을 막으러 갈 소수 정예 부대를 편성할 것을 제안하며 함께 할 사람을 모집했는데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선뜻 나서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지원자는 할레스 일가 사람들에게 화를 내면서 특히 용감했던 선조들과 다르게 몸을 사리며 명예를 더럽힌다며 브란디르를 모욕했는데, 그런데도 그는 묵묵히 고개를 숙이며 참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3인의 용사로 구성된 용 사냥이 시작되자 투린은 니니엘에게 만약을 대비해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용사들이 떠난 후 사랑하는 남편이 걱정된 그녀는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뒤늦게 사냥꾼들이 갔던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를 아꼈던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걱정되어 따라나서자 한 사람이 그들의 앞을 막아섰는데, 그는 다름이 아닌 브란디르였습니다.

 

"기다리세요, 여러분! 용 사냥꾼들이 돌아오기 전에는 나가선 안됩니다!"

"흥, 명예도 없는 자의 말을 들을 필요는 없지. 갑시다 여러분!"

"크윽... 기, 기다려요!"

 

브란디르는 사람들을 말리려 했지만 이젠 아무도 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그는 자신을 무시한 이들을 증오했지만 그 역시 니니엘을 여전히 사랑했기 때문에 뒤늦게 그녀를 따라갔습니다.

 


척후병으로부터 용이 좁은 계곡을 끼고 앉아있다는 보고를 들은 투린은 어떤 작전을 생각해냈습니다. 그는 글라우룽을 상대로 정면에서 공격해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없으며 그가 마법도 부린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해서 잘 알고 있었으므로, 계곡을 타고 내려가서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접근한 다음, 용에게 근접했을 때 다시 가파른 계곡을 타고 올라가 아래쪽에서 기습 공격을 한다는 위험천만하고 대담한 작전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계곡 앞에 당도하자 계곡의 예상을 뛰어넘는 깊이와 험준함에 동료 하나가 겁을 먹고 수치심에 도주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단둘만 남은 사냥꾼들은 조심스럽게 계곡을 타고 내려갔고 마침내 용이 있는 곳 근처에 도달했습니다. 사냥감을 목전에 둔 야생동물처럼 숨죽여 계곡을 기어오르는 둘. 그런데 별안간 글라우룽이 포효를 내지르며 거대한 몸뚱이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계곡 여기저기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돌로 된 비가 내리는 듯한 상황에서 투린은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지만, 다른 일행은 낙석에 머리를 부딪혀 추락해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투린은 동료의 안타까운 죽음에 가슴이 아팠지만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계곡을 기어올라갔고, 마침내 글라우룽의 배 바로 아래에 당도했습니다.

 

거기서 투린은 그동안의 일들을 떠올렸습니다. 탈라스 디르넨 전투, 오로드레스와 귄도르의 죽음, 나르고스론드의 패망, 글라우룽의 조롱과 거짓, 핀두일라스의 외침... 검을 쥔 그의 손은 분노로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투린은 마침내 있는 힘껏 검은 검 앙글라켈을 글라우룽의 배에 찔러 넣었는데, 어찌나 깊이 찔렀는지 칼자루가 뱃가죽에 닿을 정도였습니다.

 

윽? 크, 크아아악! 으아아아아아! 그아아아아아!!

우르르릉... 화아아아악!

 

갑작스럽게 예상치 못한 고통을 느낀 글라우룽은 온몸을 뒤틀며 불을 토해냈습니다. 거대한 용이 데굴데굴 구르면서 토해내는 불길에 주변은 온통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쯤 지나자 글라우룽의 거대한 몸은 마치 거대한 산맥이 무너져내리듯 맥없이 쓰러졌습니다.

 

투린과 글라우룽 by John Howe



 

낙화

  난리 속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투린은 앙글라켈을 되찾고 철천지원수의 시체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글라우룽의 곁으로 다가갔습니다. 앙글라켈은 여전히 글라우룽의 배에 박혀 있었고 투린은 기쁜 마음에 칼자루를 움켜쥐며 검을 뽑았습니다.

 

"내게 기회를 주겠다고 했나? 고맙군, 그 덕분에 네 숨을 거둘 수 있게 됐으니 말이야!"

 

그런데 검을 뽑은 그 순간, 치명적인 독처럼 유독한 글라우룽의 피가 뿜어져 나오며 투린의 손에 떨어졌고 배에서 칼이 뽑히는 감각에 놀란 용은 천천히 다시 눈을 떴습니다. 아직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투린은 손에서 전해지는 고통과 글라우룽의 매서운 눈길에 그만 현기증이 나 그 자리에서 죽은 사람처럼 실신하고 말았습니다.


한편, 근처까지 와있었던 니니엘과 브레실 숲 사람들은 용이 엄청난 포효를 내지르며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은 상황을 알 길이 없었기 때문에 작전은 실패했으며 저 소리는 용이 생존자들을 처리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불길한 생각이 엄습한 니니엘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으며 브란디르는 그녀라도 지키기 위해 그녀를 이끌고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못 가서 정신 차린 니니엘은 브란디르를 뿌리치고 사랑하는 투린을 찾기 위해 용의 울음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내달리기 시작했고, 마지막까지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던 브란디르 역시 그녀를 따라가기 시작했지만 절름발이였던 그는 점점 뒤처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글라우룽이 누워있는 곳에 도착한 니니엘는 거대한 몸뚱이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 옆에 시체처럼 누워있는 투린을 향해 뛰어갔습니다. 그의 손에 있는 상처를 본 그녀는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손을 싸매주며 그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습니다.

 

"투람바르! 제발 눈을 떠요, 투람바르! 절 두고 가지 마세요... 제발..."

"..."

"투람바르... 정말 절 두고 떠나신 건가요? 정말..."

"오... 물론, 아직 그럴 수는 없지... 큭, 크큭..."

"용...! 아직 살아 있어...!"

 

죽어가던 글라우룽은 니니엘에게 뭐라고 말을 하며 눈짓을 하더니 이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글라우룽이 남긴 말에 충격을 받았는지 혼란해진 니니엘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투린에게 인사를 하는 듯 하더니 무언가를 결심한 듯 천천히 걸어갔고, 이내 강물이 매섭게 흐르고 있는 계곡 절벽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절벽 아래로 뛰어 내렸습니다.

 

니니엘의 절망 by Ted Nasmith

 


※ 놀도르 군주 일족 백과

[놀도르의 초대 왕]
핀웨
(사망 : 나무의 시대 끝에 모르고스의 실마릴 강탈 사건 당시)
[핀웨의 두 아내]
미리엘
(사망 : 페아노르를 낳은 뒤)
인디스
(생사 불명 : 원작에서 언급되지 않음)
[핀웨의 세 아들]
놀도르의 왕 페아노르
(사망 : 제 2전쟁 다고르누인길리아스)
놀도르의 2대 왕 핑골핀
(사망 : 제 4전쟁 다고르 브라골라크)
발리노르 놀도르의 왕 피나르핀
(발리노르에 잔류)
[페아노르의 일곱 아들] [핑골핀의 자녀] [피나르핀의 자녀]
장신의 마이드로스 놀도르의 3대 왕 핑곤
(사망 : 제 5전쟁
니르나이스 아르노이디아드)
핀로드 펠라군드
(사망 : 베렌의 임무 중 톨인가우로스)
위대한 가수 마글로르 놀도르의 4대 왕 투르곤 오로드레스
(사망 : 제 6전쟁 탈라스 디르넨 전투)
아름다운 켈레고름 백색의 아레델(딸)
(사망 : 마이글린을 낳고 얼마 뒤 창에)
앙그로드
(사망 : 제 4전쟁 다고르 브라골라크)
검은 얼굴 카란시르   아이그노르
(사망 : 제 4전쟁 다고르 브라골라크)
재주꾼 쿠루핀   갈라드리엘(딸)
쌍둥이 암로드    
쌍둥이 암라스    
 [페아노르 일가의 3세대] [핑골핀 일가 3세대] [피나르핀 일가 3세대]
 켈레브림보르 (쿠루핀의 아들)
(실종 : 제 6전쟁 탈라스 디르넨 전투)
에레이니온 (핑곤의 아들) 핀두일라스 (오로드레스의 딸)
(사망 : 나르고스론드 패망 후 이송 중)
  이드릴 켈레브린달 (투르곤의 딸)  
  마이글린 (아레델의 아들)  

※ 3대 에다인 일족 백과 

[베오르 일가] [말라크 일가] [할레스 일가]
[초대 지도자]
도르소니온 초대 왕 보로미르
(사망 : 시기 미상)
도르로민 초대 왕 하도르
(사망 : 제 4전쟁 다고르 브라골라크)
할단
(사망 : 시기 미상)
브레고르
(사망 : 시기 미상)
   
[다고르 브라골라크 1세대]
브레골라스
(사망 : 제 4전쟁 다고르 브라골라크)
갈도르
(사망 : 제 4전쟁 다고르 브라골라크)
할미르
(사망 : 자연사)
바라히르
(사망 : 다고르 브라골라크 이후 저항 중) 
군도르
(사망 : 제 4전쟁 다고르 브라골라크)
 
[다고르 브라골라크 2세대]
[바라히르의 아들] [갈도르의 두 아들]  
베렌 에르카미온
(사망 : 부활 후 톨 갈렌에서 조용히)
도르로민의 왕 후린 할디르
(사망 : 제 5전쟁
니르나이스 아르노이디아드)
  후오르
(사망: 제 5전쟁
니르나이스 아르노이디아드)
 
[다고르 브라골라크 3~4세대]
디오르 아라넬
(베렌과 루시엔의 아들)
 투린 (후린의 아들)
랄라이스 (후린의 둘째 딸. 사망 : 역병)
니에노르
 (후린의 셋째 딸)
한디르
(사망 : 탈라스 디르넨 전투 직전)
  투오르 (후오르의 아들) 할레스 일가의 우두머리 브란디르

※ 종족 대백과

요정 퀜디 목소리로 말하는 자들.
요정들이 최초에 자신들을 부른 말.
요정 엘다르 별의 민족이라는 뜻.
발라의 부름에 서녘으로 이동하기로 한 이들.
요정 바냐르 참 요정. 엘다르 무리 중 잉궤의 일족.
요정 놀도르 지식의 요정. 엘다르 무리 중 핀웨의 일족.
손재주가 매우 좋다고 한다.
요정 텔레리 바다의 요정. 팔마리. 엘다르 무리 중 엘웨와 올웨의 일족.
물과 바다를 매우 좋아한다.
요정 난도르 텔레리 중에서 렌웨를 따라 안두인 대하에서 남하한 요정.
요정 라이퀜디 녹색 요정. 벨레리안드 첫 전투 후 지어진 난도르의 또다른 이름
요정 아바리 서녘으로 떠나기를 거절한 퀜디.
요정 우마냐르 서녘으로의 여정 중 낙오되거 중간에 잔류하기로 한 이들.
요정 모리 퀜디 어둠의 요정. 아바리와 우마냐르의 통칭.
서녘 나무의 빛을 보지 못한 이들.
요정 팔라스림 팔라스의 요정들.
마이아 옷세의 설득으로 아만 대륙으로 건너가지 않은 텔레리.
요정 에글라스 버림받은 민족.
엘웨를 찾기 위해 아만 대륙에 가지 못하고 잔류한 엘웨의 친구들
요정 신다르 엘웨 싱골로(엘루 싱골, 싱골)을 따르는 벨레리안드의 요정들
팔라스림과 에글라스가 여기에 속한다.
난쟁이 나우그림 발육이 멈춘 종족. 곤히림(돌의 장인들)이라고도 불림.
아울레가 창조한 종족.
인간 힐도르 뒤에 오는 자들. 일루바타르의 두 번째 자손. 인간을 뜻한다.
인간 에다인 요정의 친구들. 엘다르를 도와 모르고스에 대적한 3대 인간 가문
인간 동부인 Easterlings. 마이드로스 산하에 있었으나 배반한 인간들

※ 벨레리안드 지도

앙그반드 모르고스의 거점. 상고로드림 아래의 지하에 있다.
상고로드림 모르고스가 세운 다섯 산봉우리
도리아스 은둔의 왕국. 신다르의 왕 싱골과 그의 아내 멜리안의 왕국.
넬도레스 숲, 레기온 숲을 감싸는 멜리안의 장막 내 왕국.
메네그로스 천의 동굴. 동굴로 이루어진 도리아스의 수도
노그로드, 벨레고스트 나우그림들의 도시
브리솜바르, 에글라레스트 팔라스림의 항구 도시들.
에이셀 시리온 에레드 웨스린에 위치한 히슬룸과 안파우글리스 사이의 협곡
마이드로스 변경 페아노르의 아들들이 구성한 앙그반드 포위선
나르고스론드 메네그로스를 본떠서 만든 핀로드 펠라군드의 동굴 궁정
곤돌린 투르곤이 티리온을 본떠서 만든 산맥 사이에 숨겨진 비밀 왕국
톨인가우로스(구 미나스 티리스) 시리온 통로에 있는 톨 시리온 섬에 세워진 감시탑
발라르 섬 투르곤이 서녘으로 배를 띄우고 있는 섬

※ 벨레리안드의 전쟁

1차 전쟁(이름 없음) 놀도르가 오기 전에 벌어진 신도르&난도르와 모르고스의 전쟁
전사자 : 난도르의 왕 데네소르
다고르누인길리아스(별빛 속의 전투) 가운데땅에 막 도착한 페아노르 일가와 모르고스와의 전쟁
전사자 : 놀도르의 왕 페아노르
다고르 아글라레브(영광의 전투) 모르고스의 기습으로 벌어진 놀도르와 모르고스의 전쟁
다고르 브라골라크(돌발화염 전투) 화산분화와 함께 시작된 놀도르&에다인과 모르고스의 전쟁
전사자 : 놀도르의 왕 핑골핀
             피나르핀의 자녀 앙그로드, 아이그노르
             에다인 일가의 브레골라스, 하도르, 갈도르, 군도르
니르나이스 아르노이디아드(한없는 눈물의 전투) 마이드로스 연합과 모르고스 군대 사이의 전쟁
전사자 : 놀도르의 왕 핑곤
             벨레고스트의 왕 아자그할
             에다인 일가의 후오르, 할디르
탈라스 디르넨 전투(파수 평원 전투) 타우르엔파로스에서 벌어진
나르고스론드와 앙그반드 군대 사이의 전투
전사자 : 나르고스론드의 왕 오로드레스
             나르고스론드의 군주 귄도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