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서재/[연대] 반지의 제왕

2-20. 퀜타 실마릴리온 : [태양 제1시대] 레이시안의 노래 - 완결

꿈러기 2023. 2. 5. 14:59
※ 알리는 글
● 본 블로그의 반지의 제왕 역사 시리즈는 읽는 재미를 위해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내용, 표현에 살을 붙이고 있습니다. 
● 베렌과 루시엔은 반지의 제왕 영화에서 아라고른이 프로도 일행을 브리에서 빼낸 뒤 습지를 지나갈 때,
     호빗 일행이 잠든 사이 아라고른이 홀로 흥얼거리고 있던 노래의 이야기입니다.

벨레리안드 가장 깊은 곳

  까악 까악! 푸드득...

 

  상고로드림 아래의 산기슭, 이곳 길 양쪽에는 스멀스멀 유독한 연기를 내뿜고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구덩이가 있었으며, 산맥인지 건물인지 구분이 안 가는 절벽을 둘러싼 성벽 위에 장식물처럼 메달린 썩은 고기를 먹고 있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곳 근처 골짜기에 늑대와 박쥐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내면에는 빛을 간직한 이들이 지금 당도했습니다. 이들은 길을 끝에 있는 거대한 존재를 위한 앙그반드 정문을 유심히 살펴봤고 거기서 문지기를 발견했습니다. 톨인가우로스에서 여지껏 많은 늑대를 봤지만, 저 거대한 문지기 늑대는 그들보다 더 강대한 힘을 숨기고 있어 보였습니다. 이 늑대의 이름은 붉은 목구멍 카르카로스로, 가운데땅에 도착한 발리노르 사냥개 후안의 울음소리를 들은 모르고스가 이 사냥개의 운명을 기억하고는 드라우글루인의 새끼 중 가장 튼튼한 녀석을 골라 직접 키운 늑대였습니다. 그는 혹시라도 후안이 앙그반드에 올 것을 대비하여 카르카로스에게 밤낮없이 정문을 지키도록 지시했던 것입니다.

 

드라우글루인과 수링웨실의 가죽으로 변장한 베렌과 루시엔은 숨죽여 정문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카르카로스는 안파우글리스의 오르크들과는 달리 이들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이들을 무척 수상하게 여겼습니다. 톨인가우로스를 잃고 도주했던 사우론이 분명 드라우글루인은 그곳에서 죽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일단 카르카로스는 변장한 베렌과 루시엔이 더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멈춰 세운 뒤 서서히 다가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변장을 벗고 전투를 해야 할까, 후안 없이 이길 수 있을까, 소리가 오르크를 불러들이지 않을까, 베렌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떠올랐고 심장은 점점 크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루시엔이 돌연 변장을 벗어던지고 당당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누구도 즉각 대응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카르카로스는 위대한 존재가 나타났다고 생각하여 섣불리 덤비지 못했습니다. 루시엔은 카르카로스에게 다가가더니 한 손을 높이 들고 잠의 주문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거대한 늑대는 맥없이 쓰러지며 깊은 잠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루시엔의 돌발행동에 너무나 놀란 베렌은 무모한 짓 하지 말라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지만, 해맑게 웃는 사랑스러운 얼굴에 긴장이 풀려 피식 웃어버렸습니다. 후안이 말했던 것처럼 그녀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둘은 다시 변장하고 서둘러 앙그반드 깊은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카르카로스 - Magdalena Katanska

 

  베렌과 루시엔은 미로처럼 이어진 층계를 내려가고 또 내려갔습니다. 얼마쯤 내려갔을까, 별안간 무수히 많은 무기가 장식물처럼 치장되어 있고 끔찍한 괴물들이 득시글 거리는 넓은 공간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있는 높은 권좌에는 여지껏 보았던 그 무엇보다도 사악하고 강대한 존재가 신성한 빛이 담긴 보석 세 개가 박힌 왕관을 쓰고 앉아 있었습니다. 마침내 모르고스의 권좌에 도달한 것입니다. 아직 이곳에 있는 이들은 둘의 변장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습니다. 베렌은 살금살금 눈에 띄지 않게 모르고스의 권좌 밑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그때, 모르고스가 뿜어내는 어둠의 힘에 의해 루시엔 변장이 벗겨지고 말았습니다. 갑작스런 침입자의 등장에 모든 괴물이 시시각각 그녀에게 다가가고 모르고스는 한치의 흔들림 없이 그녀를 노려보고 있는 상황. 그러나 루시엔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고 오히려 떳떳하게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대하시며 모두가 두려워 하는 발라 멜코르께 인사올립니다.

 저는 도리아스의 왕 엘웨 싱골로와 마이아 멜리안의 딸, 루시엔 티누비엘이라 하옵니다.

 

 발라께서는 절 손쉽게 괴물의 먹이로 내어주실 수 있으시겠지만,

 괜찮으시다면 이 미천한 자가 위대한 분을 위해 노래를 한 곡 올려도 되겠사옵니까.

 잠깐의 여흥이라 생각하여 즐겨주시옵소서."

 

모르고스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자만심이 가득찬 비열한 웃음을 지은 채 방심하며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는데, 루시엔은 질세라 몹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노래는 잠의 마법이 깃든 노래였지만 너무나 아름다워 감히 듣지 않고 저항할 수 없었으며, 노래가 앙그반드 전체로 퍼져나가자 이곳은 곧 불길조차 잠든 어둡고 고요한 굴이 되었습니다.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오로지 모르고스의 강철왕관에 박힌 3개의 실마릴만이 속에 담긴 발리노르의 두 나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모르고스는 잠에 완전히 빠지지 않고 저항하고 있었는데, 루시엔이 잠의 마법이 깃든 검은 외투를 그의 눈에 던지자 결국 깊은 잠에 빠져들었으며, 그가 거대한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몸을 숙이자 강철왕관이 머리에서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습니다. 이제 서둘러 실마릴을 빼내서 도주하면 되는 상황.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베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루시엔은 다급히 그가 향했던 곳으로 달려갔는데, 사랑하는 이의 노랫소리에 취해 그 역시 바닥에 누워 자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루시엔이 베렌을 깨우자 그는 서둘러 변장을 벗어 던지고 검으로 강철 왕관에서 실마릴 하나를 뽑아냈습니다.

 

앙그반드의 모르고스 앞에 선  루시엔 - Pete Amachree

 

  실마릴이 손에 들어오자 서둘러 밖으로 향하는 베렌과 루시엔. 그런데 갑자기 베렌이 방향을 바꿔 반대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다시 모르고스의 강철왕관으로 가더니 두 번째 실마릴을 빼내려고 했습니다. 그는 이런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자신의 사명을 넘어 실마릴을 모두 가지고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순간, 칼날이 강철왕관의 강도를 더는 버티지 못하고 부러지더니 칼날 조각이 날아가 모르고스의 뺨을 베고 말았습니다. 모르고스가 신음을 내며 일어나려하자 덩달아 앙그반드 전체가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화들짝 놀란 베렌과 루시엔은 변장도 못한 채 급히 도망쳤는데 정문을 빠져나오자 별안간 거대한 늑대가 이들을 덮쳤습니다. 잠에서 깨어나 분노로 가득찬 카르카로스가 이들을 발견하고 덤벼든 것입니다. 지금까지 너무 많은 힘을 사용한 루시엔이 피하지 못하고 기진맥진하여 쓰러지려 하자, 베렌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실마릴을 든 손으로 카르카로스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러나 카르카로스는 실마릴의 불빛을 보고도 전혀 움츠러들지 않더니, 오히려 베렌의 손목과 함께 실마릴을 집어삼켜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가 미처 몰랐던 힘이 있었으니, 과거에 이 보석은 발리에 바르다가 축성하여 악한 자에게 닿으면 그를 불태워 버리는 힘을 갖게 된 바 있었습니다. 카르카로스의 내장에 들어간 실마릴은 이 힘으로 그를 내부부터 불태우기 시작했고, 놀란 카르카로스는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앙그반드 밖으로 도망가버렸습니다. 가까스로 기운을 되찾은 루시엔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탈출하려 했으나 베렌의 상처는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카르카로스의 치명적인 독이 몸에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치료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워 도망갈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앙그반드 안쪽에서는 모르고스의 괴물들이 올라오는 괴성이 들렸습니다.

 

카르카로스 앞에 선 베렌과 루시엔 - Coliandre

 

더는 희망이 없는 것일까. 그때 필사적으로 베렌을 치료하고 있는 루시엔의 머리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날개 달린 거대한 존재가 루시엔과 베렌을 낚아채더니 빠르게 앙그반드를 벗어났습니다. 후안에게 베렌과 루시엔의 위기를 전해들은 독수리 왕 소론도르가 독수리들을 데리고 도우러 나타난 것입니다. 독소리들은 도리아스 변경까지 날아가서 그들을 내려놓고 떠났는데, 곧이어 사냥개 후안이 급히 이들을 찾아왔습니다. 이렇게 셋은 베렌이 잠든 루시엔을 후안에게 부탁하고 떠났던 그 골짜기에서 다시금 모였습니다. 후안과 루시엔은 과거에 쿠루핀에게 입은 상처를 치료할 때처럼 베렌을 돌봤고 그는 다행히 기적적으로 깨어났습니다.

 

탈출하는 베렌과 루시엔 - Ted Nasmith

 

외손잡이 에르카미온

  한편, 도리아스 왕국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왕국의 모든 이들이 사랑했던 아름다운 루시엔이 실종된 후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그녀를 찾아도 보이질 않더니 나르고스론드로부터 루시엔을 붙잡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얼마 안되서 이번엔 또 켈레고름과 쿠루핀이 나르고스론드에서 쫓겨났으며 그녀가 탈출했다는 보고가 올라온 것입니다. 이후로는 도무지 딸의 행방을 알아낼 수가 없자 싱골 왕조차도 안절부절 못했고 다급해진 그는 아내 멜리안에게 조언을 요청했지만, 그녀는 베렌에게 임무를 부여했을 때 경고했던 것처럼 이 역시 싱골이 스스로가 초래한 일이자 운명이라며 조언을 거절했습니다. 결국 싱골 왕은 자존심을 굽혀서라도 힘링에 있는 페아노르의 아들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 전령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전령이 힘링에 당도하지도 못하고 정체불명의 늑대에게 습격당해서 왕의 수석 부관 마블룽을 제외하곤 모두 살해당한 것입니다. 거대한 몸집에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북쪽으로부터 내려와 온갖 생명체를 죽이고 다니는 이 늑대는 바로 베렌의 손과 실마릴을 삼켰던 카르카로스였습니다. 최후의 수단마저 수포로 돌아간 절망적인 순간 시종이 급하게 싱골 왕에게 달려왔습니다. 도대체 이번엔 또 무슨 일이 생겼단 말인가, 발라께서는 어찌 나에게 이런 시련을 내리시는 것인가, 이마를 감싸며 고통스러워하는 그에게 시종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익숙한 두 실루엣이 권좌 앞으로 걸어와 말을 걸었습니다.

 

"아버지!"

 

싱골 왕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앞을 봤고, 거기에는 너무나 그리웠던 딸과 당당히 임무를 선언하고 떠났던 에다인이 함께 서있었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둘은 베렌이 회복하자 모든 것을 잊은 채 숲속을 거닐었는데, 왕국과 맹세를 잊고 단둘이 살아가길 원했던 루시엔과 달리, 베렌은 자신의 맹세를 미룰 순 없다고 생각했으며 그녀가 아버지와 떨어져 있는 것도, 험난한 방랑 생활을 하게 하는 것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녀를 설득하여 함께 도리아스 왕국으로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싱골 왕은 죽은 줄만 알았던 이들이 함께 돌아오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베렌으로 인해 루시엔이 했던 고생을 생각하며 그를 달가워하진 않았습니다. 베렌이 싱골 왕 앞에 무릎을 꿇자 왕이 말했습니다.

 

"바라히르의 아들, 베렌. 정말 짐이 널 보는 것이 마지막이 아니었구나."

"왕시이여, 약속드린대로 실마리 하나를 가져왔습니다. 이제 따님을 제게 내어주셨으면 합니다."

"그래서 그 실마릴은 어디에 있느냐?"

"여기 제 손에..."

 

베렌은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내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엔 손도, 실마릴도 없었습니다. 베렌의 표정은 굳어졌습니다. 그는 호언장담했지만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으며 아버지의 이름과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핀로드 펠라군드의 이름을 먹칠했습니다. 그는 입이 열 개라도 싱골 왕에게 할 말이 없었고 사랑하는 루시엔에게는 그저 미안한 마음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왕의 대답은 전혀 의외의 것이었습니다.

 

"베렌과 루시엔은 왕좌 곁으로 오너라. 너희가 겪은 일들에 대해 듣고 싶구나."

 

싱골 왕은 진지하게 베렌과 루시엔의 모험담을 들었습니다. 그는 빈 손을 내민 베렌의 표정에서 그가 겪었던 무수한 고통을 느껴 연민의 감정이 일어났고, 평범한 이들은 감히 실행에 옮길 수 없었을 모험담을 듣고나자 이제 베렌이 흔한 에다인이 아니라 거대한 운명을 지닌 아르다의 위대한 인물 중 하나이며, 그를 향한 루시엔의 사랑 역시 진실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싱골 왕은 마침내 자신의 뜻을 굽히고 둘의 결혼을 승낙했으며 베렌은 이후 외손잡이라는 뜻으로 베렌 에르카미온이라고 불렸습니다.

 

 

늑대 사냥

  결혼 승낙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도리아스는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으니 여전히 광기에 사로잡힌 카르카로스가 온 벨레리안드를 휘젓고 다니며 모든 생명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베렌은 아직 자신의 임무가 완수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늑대 사냥을 준비했는데, 이 사냥은 먼 후대까지 전해지는 모든 사냥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것으로 기억됐습니다. 이 임무에는 최고의 사냥꾼들이 참가했는데, 베렌 에르카미온과 발리노르의 사냥개 후안이 동행했으며, 도리아스의 신다르에서는 묵직한 손 마블룽, 센활 벨레그와 도리아스의 왕 엘웨 싱골로까지 나섰습니다. 사냥꾼들이 모여 메네그로스를 출발하는 길은 루시엔이 배웅했는데 그녀는 이날 왠지 세상이 어두컴컴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카르카로스의 흔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창자부터 타들어가는 느낌은 늑대가 추격자를 신경쓰지 않게 만들었으며, 온갖 동물들을 찢어발기고 나무를 뿌리째 뽑아낸 덕분에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냥꾼들은 비명과 포효가 뒤섞인듯한 끔찍한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벨레리안드의 그 어느 동물도 내지 못하는 소리로 분명 카르카로스가 틀림없었습니다. 서둘러 소리가 난 방향으로 이동한 사냥꾼들은 폭포가 쏟아지는 어두운 골짜기 근처에 당도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도 카르카로스는 보이지 않았으며 이전까지과는 다르게 숲은 너무나도 고요했습니다. 후안은 영악한 늑대가 기습하려 숨어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혼자서 먼저 그를 찾으려 일행에서 이탈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작스럽게 카르카로스가 숲속에서 뛰쳐나왔습니다.

 

"아니? 노, 놈이다!"

"싱골 폐하, 위험합니다!"

 

쨍그랑! 크아아아!

 

"으, 으아악!!"

"베렌! 안돼!"

 

후안의 도약 - Ted Nasmith

 

영악한 카르카로스는 후안이 빈틈을 보이자마자 싱골 왕을 노렸고, 그의 옆에 있던 베렌이 왕을 구하기 위해 급히 창을 들고 막아섰지만, 거대한 늑대는 손쉽게 창을 부러뜨리고 그대로 베렌의 가슴을 물어 뜯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크르릉... 컹컹! 크르릉... 크아아!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후안이 급히 카르카로스를 덮쳤고 발리노르에 온 가장 강력한 사냥개와 앙그반드에서 온 가장 힘 센 늑대의 대결이 시작됐습니다. 둘의 포효에 바위가 갈라져 무너져 내렸으며 폭포는 형태를 잃고 강물이 숲을 가득 메웠습니다. 위대한 존재들이 키운 무시무시한 짐승들의 싸움에 다른 사냥꾼들은 감히 끼어들 수 없었습니다. 숲이 넘어지고 산이 갈라지는듯한 처참한 혈투가 지난 끝에 마침내 사냥개 후안이 카르카로스의 목숨을 빼앗는데 성공했지만, 후안 역시 회복할 수 없는 치명상을 입었으며 몸속에 들어온 카르카로스의 독은 치열한 전투 중에 이미 전신으로 퍼져서 위태로운 상태였습니다. 후안은 죽기 전에 가까스로 베렌의 곁에 다가와서 쓰러진 후 자신에게 허락된 마지막 세 번째 말을 꺼냈습니다.

 

"베렌, 사랑하는 친구여... 아무래도 나는 그대들의 행복한 미래를 보지 못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운명이 그대들을 위한 것이어서 미련없이 떠날 수 있겠습니다.

 그동안 그대와 루시엔을 지킬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싱골의 품에 누워있는 베렌은 비록 말은 할 수 없었지만 유일하게 남은 한 손으로 그저 조용히 친구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그와 작별을 고했습니다. 마블룽과 벨레그는 뒤늦게 달려왔으나 상황을 파악하고는 창을 내던지고 구슬프게 울었습니다. 마블룽은 칼을 가져와 카르카로스의 배를 갈랐는데 늑대의 뱃속은 숯더미처럼 까맣게 불에 타있었으나, 눈부신 실마릴은 손상 하나 없이 멀쩡했습니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그 난리통에도 베렌의 손은 어떻게든 실마릴을 지키려는 듯 잘려나가기 전처럼 힘있는 그대로 실마릴을 쥐고 있었는데, 마블룽이 실마릴을 꺼내려 손을 대자 그제서야 먼지처럼 사라졌습니다. 마블룽이 베렌에게 실마릴을 건내주자 그는 그것을 높이 들어 싱골 왕에게 바치고는 이것으로 자신의 모험은 완수되었고 운명도 종료되었다며 말했으며 그 뒤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일행이 나뭇가지로 엮은 관에 베렌과 후안을 데리고 다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진 뒤였습니다. 사냥꾼들이 돌아올 때까지 한시도 쉬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루시엔은 돌아오는 일행이 보이자마자 뛰쳐나갔으며, 이미 싸들하게 식어버린 친구와 가운데땅을 떠나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려 하는 베렌을 보고는 왈칵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리곤 베렌을 힘껏 껴안고 입을 맞추면서 반드시 만나러 갈 테니 바다 너머 서녘 땅에서 자신을 기다려주기를 당부했고, 베렌은 사랑하는 이를 보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텼었는지 루시엔의 말을 듣자마자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루시엔을 바라보며 대답을 대신한 뒤 숨을 거뒀습니다.

 

 

재회

  아르다에서 숨을 거둔 일루바타르의 자식들의 영은 모두 서녘 아만 대륙의 만도스의 궁정에 모이게 되어 있으며, 첫째 자손인 요정은 이곳에서 계속 살아가고 둘째 자손인 인간은 발라조차 모르는 곳으로 떠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도 사랑한 이와의 약속 때문일까, 인간의 영인데도 불구하고 아르다를 떠나지 못하고 만도스의 궁정에 머물러 있는 자가 있었으니, 베렌은 루시엔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지껏 궁정을 배회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베렌을 떠나보낸 루시엔은 깊은 슬픔에 하루하루 몸이 쇠약해지더니 얼마 못가서 꽃잎이 떨어지는 듯 숨을 거두고 말았으며, 도리아스와 싱골 왕은 겨울이 온 듯한 차가운 슬픔에 잠겼습니다. 루시엔의 영은 여느 요정처럼 서녘의 만도스의 궁정에 들었습니다. 그 어떤 영혼보다도 아름답고 또 깊은 슬픔을 간직한 루시엔의 영혼은 영의 주재자 발라 만도스의 앞에 무릎을 꿇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오 위대하신 만도스 높으신 발라시여

슬픔과 부서진 가슴을 안고 당신을 알현합니다

 

긴 여정은 절 이 궁정까지 데려왔지만

이제 제 영혼은 무릎을 꿇고 슬픔을 노래합니다

 

전 베렌이라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는 여기서 기다리겠다며 약속했고

저 역시 그를 찾겠다며 약속했습니다

 

저를 위해 그는 삶을 바쳤지만

제 영혼은 그리움에 바스라졌고

끝내 부서져 내려 자유로워졌습니다

 

자유로워진 저는 급한 바람을 타고

제 고통을 달래줄 유일한 것이 있는

이곳으로 여행했습니다

 

오 제발 늦지 않았다고 말해주세요

제 사랑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고 해주세요

제겐 너무나 잔인한 운명입니다

그가 되돌아오기를 소망합니다

 

시간이 조금 걸릴지도 모르겠어요

마지막 작별을 고하려면

누구도 억누를 수 없는

넘치는 기쁨으로 가득찬

우리가 나눈 모든 것을 기억하려면

 

우리 가슴속 사랑보다 더 위대한 것은 절대 없어요.

죽음이 우릴 갈라놓더라도

우리는 이미 피어난 사랑에 영원히 묶여 있어요.

 

- Luthiens Lament by Eurelle

 

 

노래하는 루시엔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만도스의 발 위에 이슬처럼 맺혔습니다. 그러자 발라 만도스의 마음에 연민의 정이 일기 시작했는데, 영의 주재자이자 발라 심판관이기도 한 그가 연민을 느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베렌의 영혼을 불렀고 마침내 연인은 약속했던 것처럼 서녘에서 재회했습니다. 그러나, 베렌의 영혼을 붙잡아 두는 것은 발라 만도스조차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들의 운명은 유일자 일루바타르가 직접 정한 것이므로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능력 밖의 일이었습니다. 결국 만도스는 아르다의 왕 발라 만웨를 찾아가서 베렌과 루시엔의 건으로 일루바타르의 조언을 구하기를 청했습니다. 만웨 역시 그들의 사랑에 깊은 감명을 받아 기꺼이 조언을 청했고, 자녀들의 아름다운 사랑은 일루바타르조차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어떤 조언을 주었는데 만웨는 그것을 듣자 루시엔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루시엔이여. 그대 앞에는 두 가지 길이 놓여있느니라.

 

  그대는 여느 엘다르처럼 아름다운 아만 대륙을 거닐며 아르다의 끝이 올 때까지 살아갈 수 있느니라.

  투나 언덕 위에 지어진 엘다르의 백색 도시 티리온과

  텔레리의 백조 항구 알쿠알론데를 거닐며 여지껏 누려보지 못한 행복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사랑, 베렌은 일루바타르께서 정하신 운명을 따라 아르다를 떠나야만 한다.

 

  하지만 그대가 엘다르에게 주어진 축복을 포기한다면,

  앞으로 그대를 기다리는게 기대하고 있던 행복일지 새로운 고난일지 알 수 없더라도

  기꺼이 두 번째 죽음이 찾아와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날 유한한 생명을 선택한다면, 

  베렌을 데리고 가운데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겠노라.  

 

  어떻게 하겠느냐? 루시엔이여."

 

질문을 마친 아르다의 왕 만웨는 루시엔의 얼굴을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예상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의미없는 제안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얼마 뒤, 도리아스 왕국은 난리가 났습니다. 죽은줄로만 알았던, 아니 정확히는 명백히 죽었던 베렌과 루시엔이 멀쩡히 살아서 돌아온 것입니다. 많은 백성이 그들과의 재회를 기뻐했지만 어떤 미지의 힘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어서 한편으로는 두려워하기도 했습니다. 돌아온 루시엔은 메네그로스 궁정으로 들어가 싱골 왕의 슬픔을 달래주었지만, 그녀의 어머니 멜리안은 그녀의 눈을 보고 머지 않은 미래에 영원히 사랑하는 딸과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용히 고개를 돌렸습니다. 멜리안이 이때 느낀 슬픔은 지금까지 혹은 이후 겪을 그 어떤 슬픔보다도 큰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이후 베렌과 루시엔은 남몰래 조용히 옷시리안드로 떠난 뒤 초록섬 톨 갈렌에서 단둘이 살았으며, 얼마 안가서 둘 사이에서는 싱골의 후계자 디오르 아라넬이라고 불리게 될 사내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베렌과 루시엔이 톨 갈렌에 들어간 후 그 어떤 인간도 베렌과 이야기를 나눈 자는 없었으며, 그들이 세상을 떠난 것은 물론 묻힌 곳조차 아는 자가 아무도 없이, 그렇게 가운데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나눴던 이들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하여 함께 아르다를 영원히 떠났다고 합니다.

 

루시엔과 베렌 이야기 - Breathing


※ 놀도르 군주 일족 백과

[놀도르의 초대 왕]
핀웨
(사망 : 나무의 시대 끝에 모르고스의 실마릴 강탈 사건 당시)
[핀웨의 두 아내]
미리엘
(사망 : 페아노르를 낳은 뒤)
인디스
(생사 불명 : 원작에서 언급되지 않음)
[핀웨의 세 아들]
놀도르의 왕 페아노르
(사망 : 제 2전쟁 다고르누인길리아스)
놀도르의 2대 왕 핑골핀
(사망 : 제 4전쟁 다고르 브라골라크)
발리노르 놀도르의 왕 피나르핀
(발리노르에 잔류)
[페아노르의 일곱 아들] [핑골핀의 자녀] [피나르핀의 자녀]
장신의 마이드로스 놀도르의 3대 왕 핑곤 핀로드 펠라군드
(사망 : 베렌의 임무 중 톨인가우로스)
위대한 가수 마글로르 투르곤 오로드레스
아름다운 켈레고름 백색의 아레델(딸)
(사망 : 마이글린을 낳고 얼마 뒤 창에)
앙그로드
(사망 : 제 4전쟁 다고르 브라골라크)
검은 얼굴 카란시르   아이그노르
(사망 : 제 4전쟁 다고르 브라골라크)
재주꾼 쿠루핀   갈라드리엘(딸)
쌍둥이 암로드    
쌍둥이 암라스    
 [페아노르 일가의 3세대] [핑골핀 일가 3세대]  
 켈레브림보르
(쿠루핀의 아들)
에레이니온
(핑곤의 아들)
 
  이드릴 켈레브린달
(투르곤의 딸)
 
  마이글린
(아레델의 아들)
 

※ 3대 에다인 일족 백과 

[베오르 일가] [말라크 일가] [할레스 일가]
[초대 지도자]
도르소니온 초대 왕 보로미르
(사망 : 시기 미상)
도르로민 초대 왕 하도르
(사망 : 제 4전쟁 다고르 브라골라크)
할단
(사망 : 시기 미상)
브레고르
(사망 : 시기 미상)
   
[다고르 브라골라크 1세대]
브레골라스
(사망 : 제 4전쟁 다고르 브라골라크)
갈도르
(사망 : 제 4전쟁 다고르 브라골라크)
할미르
바라히르
(사망 : 다고르 브라골라크 이후 저항 중) 
군도르
(사망 : 제 4전쟁 다고르 브라골라크)
 
[다고르 브라골라크 2세대]
[바라히르의 아들] [갈도르의 두 아들]  
베렌 에르카미온
(사망 : 부활 후 톨 갈렌에서 조용히)
도르로민의 왕 후린  
  후오르  
[다고르 브라골라크 3세대]
디오르 아라넬
(베렌과 루시엔의 아들)
   

※ 종족 대백과

요정 퀜디 목소리로 말하는 자들.
요정들이 최초에 자신들을 부른 말.
요정 엘다르 별의 민족이라는 뜻.
발라의 부름에 서녘으로 이동하기로 한 이들.
요정 바냐르 참 요정. 엘다르 무리 중 잉궤의 일족.
요정 놀도르 지식의 요정. 엘다르 무리 중 핀웨의 일족.
손재주가 매우 좋다고 한다.
요정 텔레리 바다의 요정. 팔마리. 엘다르 무리 중 엘웨와 올웨의 일족.
물과 바다를 매우 좋아한다.
요정 난도르 텔레리 중에서 렌웨를 따라 안두인 대하에서 남하한 요정.
요정 라이퀜디 녹색 요정. 벨레리안드 첫 전투 후 지어진 난도르의 또다른 이름
요정 아바리 서녘으로 떠나기를 거절한 퀜디.
요정 우마냐르 서녘으로의 여정 중 낙오되거 중간에 잔류하기로 한 이들.
요정 모리 퀜디 어둠의 요정. 아바리와 우마냐르의 통칭.
서녘 나무의 빛을 보지 못한 이들.
요정 팔라스림 팔라스의 요정들.
마이아 옷세의 설득으로 아만 대륙으로 건너가지 않은 텔레리.
요정 에글라스 버림받은 민족.
엘웨를 찾기 위해 아만 대륙에 가지 못하고 잔류한 엘웨의 친구들
요정 신다르 엘웨 싱골로(엘루 싱골, 싱골)을 따르는 벨레리안드의 요정들
팔라스림과 에글라스가 여기에 속한다.
난쟁이 나우그림 발육이 멈춘 종족. 곤히림(돌의 장인들)이라고도 불림.
아울레가 창조한 종족.
인간 힐도르 뒤에 오는 자들. 일루바타르의 두 번째 자손. 인간을 뜻한다.
인간 에다인 요정의 친구들. 엘다르를 도와 모르고스에 대적한 3대 인간 가문

※ 벨레리안드 지도

앙그반드 모르고스의 거점. 상고로드림 아래의 지하에 있다.
상고로드림 모르고스가 세운 다섯 산봉우리
도리아스 은둔의 왕국. 신다르의 왕 싱골과 그의 아내 멜리안의 왕국.
넬도레스 숲, 레기온 숲을 감싸는 멜리안의 장막 내 왕국.
메네그로스 천의 동굴. 동굴로 이루어진 도리아스의 수도
노그로드, 벨레고스트 나우그림들의 도시
브리솜바르, 에글라레스트 팔라스림의 항구 도시들.
에이셀 시리온 에레드 웨스린에 위치한 히슬룸과 안파우글리스 사이의 협곡
마이드로스 변경 페아노르의 아들들이 구성한 앙그반드 포위선
나르고스론드 메네그로스를 본떠서 만든 핀로드 펠라군드의 동굴 궁정
곤돌린 투르곤이 티리온을 본떠서 만든 산맥 사이에 숨겨진 비밀 왕국
톨인가우로스(구 미나스 티리스) 시리온 통로에 있는 톨 시리온 섬에 세워진 감시탑
발라르 섬 투르곤이 서녘으로 배를 띄우고 있는 섬

※ 벨레리안드의 전쟁

1차 전쟁(이름 없음) 놀도르가 오기 전에 벌어진 신도르&난도르와 모르고스의 전쟁
전사자 : 난도르의 왕 데네소르
다고르누인길리아스(별빛 속의 전투) 가운데땅에 막 도착한 페아노르 일가와 모르고스와의 전쟁
전사자 : 놀도르의 왕 페아노르
다고르 아글라레브(영광의 전투) 모르고스의 기습으로 벌어진 놀도르와 모르고스의 전쟁
다고르 브라골라크(돌발화염 전투) 화산분화와 함께 시작된 놀도르&에다인과 모르고스의 전쟁
전사자 : 놀도르의 왕 핑골핀
             피나르핀의 자녀 앙그로드, 아이그노르
             에다인 일가의 브레골라스, 하도르, 갈도르, 군도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