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획은 재미를 충분히 고려, 전달
생각의 시작
회사에서 일에 매몰되거나 신규 인력 채용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기획 포트폴리오를 보다 보면, 좋은 기획과 그렇지 않은 기획의 실수들을 발견하고는 합니다. 매우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너무 중요한 이야기. 좋은 기획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요? 이번 글은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좋은 기획이란?
게임에서 기획을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생각하는 바는 각자가 모두 다르겠지만 기획(Design) 용어 그대로 해석하면 게임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게임은 재미를 위해 하는 것이니 그렇다면 게임 기획은 재미를 설계하는 것, 즉 게임을 하며 겪는 여러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이제 여기에 '좋은'이라는 단어를 한 번 붙어보겠습니다. 좋은 기획. 그것은 아마 재미있는 게임을 설계하는 것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기획자는 재미있는 게임을 설계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겠군요!
매몰과 목적 상실
여기까지 읽어보면 '뭐야, 너무 뻔한 이야기잖아?'라는 당연한 생각이 듭니다. 마치 요리사는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야 하는 것처럼.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일을 할 때 혹은 포트폴리오를 준비할 때 너무나 당연한 생각을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업무를 하다 보면 흔히 '일에 매몰되어 시야가 좁아졌다'는 표현이 자주 쓰이고는 합니다. 일은 언제나 일정과 성과와 현실의 싸움입니다. 시작은 좋은 기획을 만드려고 했다고 해도, 그것을 들고 실행 계획 속으로 다이빙하면 어느 새 목적과 의도는 뒷전이고 현실에 치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을 완성하고 나면 우리의 기억에 남는 것은, 그것의 원래 의도보다는 그 일 자체만 남고는 합니다.
좋은 기획과 좋지 않은 기획
업무를 할 때든 포트폴리오를 볼 때든 가장 많이 보이는 좋지 않은 예시는 대략 이런 형태인 것 같습니다.
- 내용은 장황하지만 어필하고자 하는 재미, 목적, 의도는 불분명합니다.
- 근거가 불충분하거나 개인적인 경험 기반이라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 경력도 많고 이력도 좋지만 재미나 성과 어필이 부족합니다.
- 재미, 목적보다는 지나치게 방법론에 치중되어 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재미 혹은 목적과 의도를 강조하고 그것을 이해시키려 노력하기 보다는,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이나 실행 계획에만 치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저도 제가 했던 수많은 일들을 어필하고 싶었던 과거에는 위와 같은 실수들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반면에 인상 깊게 남았던 기획이나 포트폴리오는 이런 공통점이 있는 듯 합니다.
- 내용이 길지 않아도 전하려는 의도, 목적, 목표가 명확합니다.
- 어떤 재미를 어필하고 싶은지 정확히 선언합니다.
- 방법론보다는 목적 달성을 위해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 유사 레퍼런스로 충분한 근거를 확보하고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 거시적 미래를 고려합니다.
옛말에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고, 오컴의 면도날은 변명이 길어지면 거짓일 확률이 높다고 했습니다. 좋은 기획은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방법론이나 실행 계획은 의미 없고 재미, 목적과 의도만 있으면 된다는 이분법적 이야기가 아닙니다. 구체적 실행 계획이 없이 목적만 외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좋은 기획은 먼저 목적(재미)를 명확히 하고, 그 다음에 그것의 실행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마치며
좋은 기획은 '전 이것을 위해 이제부터 이런 걸 할 겁니다'라고 설명하기 때문에, 뒤 따르는 모든 내용이 '이것을 위해 이렇게 하는구나'라고 인지됩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이런 저런 것을 할 겁니다'라는 설명은 장황하지만 그것을 왜, 무엇을 위해 하는지는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알아내기 위해 광산에서 금을 케내듯 찾아내거나, 그 과정에서 의도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설령 기획한 사람이 그것을 인지하고 썼다고 해도 읽는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기획자는 프로그래머와 아티스트의 도움이 없이는 결과물을 생산할 수 없습니다.
게임 기획하고 있는 우리는, 재미를 충분히 고려하고 있고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문서를 보는 상대방이 충분히 알 수 있게 하고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일에 매몰되어 목적을 상실하진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