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언제나 맞춰오며 발전해왔다
첫 번째 화두
인간 사회에서 사회 생활은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겪는 거의 모든 스트레스는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간관계에서 발생합니다. 사적인 생각부터 사회적 견해, 가치관, 생활 패턴, 업무 방식, 말투까지.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무엇 하나 스트레스를 유발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만 같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으로 이어집니다.
"저 사람은 왜 저럴까?"
"나와 맞는 사람끼리만 함께 할 수는 없을까?"
나와 맞는 사람?
상상만 해도 너무나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나와 맞는 사람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앞서 화두에서 나열했던 스트레스 유발 요소를 생각하면, 나에게 맞는 사람은 어느 면에서든 나와 차이가 없이 동일한 사람, 즉, 나와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 개성적인 어떤 사람 답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이 있을까요?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요인은 두 가지일 것 같습니다.
- 선천적 요인 : 유전
- 후천적 요인 : 경험
만약 우리가 나와 맞는 사람, 나와 같은 사람을 원한다면 이것들 역시 동일해야 할 것입니다. 자, 그럼 벌써 우리는 하나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일란성 쌍둥이조차 후천적 요인에 의해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세상에 나와 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위 두 요인이 정확하게 맞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나 자신일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심지어 사람은 가까운 친구, 연인 관계를 넘어서 피를 나누고 유년 시절을 함께 보낸 가족과도 부딪힙니다. 맙소사, 그럼 정답이 없는 것일까요?
두 번째 화두
우리는 사회 생활, 인간관계에 끔찍하게 지쳐 있고, 더는 저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대부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인간 사회는 이런 방식으로 벌써 수천 년을 존속해왔고, 이것은 사람 뿐만이 아니라 이성보다는 욕망에 충실한 동물 사회에서도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그렇다면 왜.
"맞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왜 함께 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람도 원래 동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제 생각에 야생 동물도 사람도 불편한데 함께 하는 이유는 같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즉시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역시 단 하나입니다.
맞지 않아도 함께 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야생 동물들은 무리를 지으면 수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상위 포식자의 위협을 방지할 수 있으며, 먹이 수색과 사냥 성공률도 올라가고, 동족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하고 자의식이 강한 인간은 심지어 다른 동물과 비교할 수 없는 결속력을 보여줍니다. 본능적으로도, 이성적으로도 그게 더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맞는 사람을 찾는 것의 숨은 심리
하지만 이득을 고려한다고 해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동물 사회에서도, 인간 사회에서도 다른 개체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 이들도 존재합니다. 이건 대체 무슨 일일까요?
사람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고 모두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합니다. 타인보다는 나의 감정, 나의 이득, 나의 상태를 더 우선으로 하며, 이것은 생존 본능일 생각하면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전제로 생각하면 나와 맞는 사람을 찾는다는 말은 꽤나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나와 맞는 사람을 찾는 것에는 내가 상대와 맞아야 한다는 전제는 보통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말하는 나와 맞는 사람을 찾겠다는 것은, 사실 나에게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을 찾겠다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리고 물론 일반적인 사회에서 그런 사람은 흔치 않으며, 이득이 없어 보이는데도 맞춰주는 사람들은 대게 나에게 맞는 사람, 착한 사람, 좋은 사람으로 인식됩니다. 왜냐면 그런 사람이 그만큼 적기 때문입니다.
불균형, 그리고 권력
상호존중 하에 상대와 내가 공정한 양의 맞춤과 이득을 교환한다면 좋겠지만, 늘 그렇듯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어느 순간 사람은 내가 상대방에게 맞추는 것보다 상대가 나에게 더 많이 맞추기를 바라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상대에게 부족하지만 나에게는 여유분이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리고 상대가 나의 것에 눈독 들이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렇게 여유가 있는 사람이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대가를 지불하고 그가 나에게 더 맞춰주기를 요구합니다. 이득을 많이 보유한 쪽은 점점 더 많은 이득을 제공하는 대신 점점 더 적게 맞추기 시작하고, 이득을 적게 보유한 쪽은 맞춤을 제공하는 대신 더 많은 이득을 취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그러다 보면 더 많이 맞추려는 사람이 소수의 이득자에게 몰리게 됩니다.
이렇게 동물 사회든 인간 사회든 상관 없이 상하관계라는 것이 탄생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득은 단순히 물질적 이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물 사회에서 그것은 강한 힘 혹은 넓은 영역이 될 것이며, 인간 세계는 그것이 그저 금전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힘들다. 하지만 사회가 그렇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쭉 들어보니 우울하고 희망이 없는 이야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러니까 그냥 받아들여라' 같은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상대에게 맞춰야 하는 것만큼, 상대 역시 우리에게 맞추고 있다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에게 불만이 있는 만큼, 상대 역시 우리에게 불만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갈등은 이 관계가 불공정 거래가 되는 순간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어느 한쪽이 욕심을 부리거나, 어느 한쪽이 서로의 이득과 맞춤의 값을 잘못 계산하면 거래가 무너집니다. 관계에서 피로함을 느끼거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 관계에 불공정한 거래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혹시 우리 혹은 상대가 이득을 잘못 계산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한층 수월해지지는 않을까요?